<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조금 삐딱하게 바라보기.

드라마는 드라마로 봐야 하는데 그래도...

by Erebus


최근 그야말로 신드롬이라 부를 수 있는 드라마가 나타났다. 그렇다. 이 부분만 봐도 어떤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지 감이 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ENA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다.


드라마 시작부터 온갖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한국 드라마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중인 바로 그 드라마. 장애를 전면에 내세운 몇 안 되는 드라마! 그것도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지적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나오는.


일단 현재까지의 상황을 보자면...나중 결말도 어느 정도 예상이 되는 바이지만. 아주 잘 만든 드라마였다. 디테일한 요소들만 봐도 우영우를 맡은 박은빈 배우의 찰떡같은 연기 하며, 주 조연 배우 중에 특별히 악역을 찾아볼 수 없는 무해하고 청정한 힐링 드라마. 막장이라고는 1도 끼어들 틈이 없는 힘듦과 피곤함에 지친 시청자들을 단숨에 사로잡을만한 요소가 곳곳에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아이러니함 또한 느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주된 이유라고도 볼 수 있다. 우선 짚어야 할 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설정상 판타지에 가까운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자폐라 함은 지적장애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지적장애가 있다 함은 곧 지능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극 중 우영우는 서울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에서 1500점을 받은 그야말로 엄친딸의 정석을 보여주는 캐릭터이다. 심지어 직업도 변호사. 우영우가 비장애인이라 해도 설정이 과하다는 소리가 나올 법한데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장애인이다.


이런 경우는 현실 케이스에선 빌 게이츠가 가진 재산을 다 잃고 길거리에 나앉게 되는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한 마디로 일어날 일이 택도 없는 수준이라는 것.


장애인도 사회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고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영우를 칭찬할 만 하지만 이건 과해도 너무 과하고 드라마를 드라마로 보기에도 무리수가 아닌가 싶다.


이러한 괴리가 발생하는 이유는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현실에서 저 정도 수준의 자폐인이 있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자폐인이라고 부르기 힘들 것이다. 물론 겉모습으로 보아 비장애인과 다르다는 사실은 충분히 알 수 있지만 현실 자폐인들에게 우영우 정도면 탈자폐인이나 다름없다. 거기다 온갖 논리적인 판단과 이성으로 무장해야 하는 직업인 변호사인데 그게 또 자폐를 가진 변호사라니 그야말로 판타지라 볼 수밖에 없다.


일전에 리뷰한 <퍼펙트 월드>나 비교적 최근에 접했던 <양키 군과 흰 지팡이 걸>의 경우, 각각 척수마비로 인해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건축사 주인공과 시각장애를 앓고 있지만 알바도 하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주인공이 나온다.


이들과 우영우의 다른 점은 <평범성>에 있다. 우영우가 초 오버 밸런스의 하이스펙을 지닌 캐릭터라면 위의 두 캐릭터는 오히려 현실에 있을 법한 일반 시민적인 삶을 살아가는 캐릭터들이다. 살아간다는 관점에서 너무 적이지도 않고 너무 무겁지도 않게 장애라는 요소를 다루었다. 그래서 더 마음에 스며든 느낌도 있다. 장애가 이상한 것도 아니고 잘못된 것도 아니라는 것 평범하게 잘 보여줬기 때문이다.


내가 우영우에 아쉬운 점은 이런 것이었다. 사람들의 열광하는 우영우의 모습에는 자폐 스펙트럼을 앓고 있지만 어려움을 극복하고 앞으로 성장하는 한 변호인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장애인들에겐 결코 그런 현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전에도 말했듯이 미디어라는 것은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장애인 관련으로 인.간.승.리. 와 같은 자막이나 대사를 넣는다. 하지만 장애는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장애인에게 장애는 같이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장애가 극복이 된다면 세상에 장애인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영우의 장애 유형인 자폐 스펙트럼은 다분히 장애라는 것을 상업적으로 이용한 듯한 느낌을 준다.

자폐 스펙트럼에 담기 쉬운 동정과 감동을 극 중에서 요리조리 이렇게 저렇게 이용하는 느낌. 결국 장애를 기존 미디어에서 자주 쓰는 방식으로 소비하는 그 느낌. 그런 한계도 동시에 보였다.


쉽게 이야기하면, 테니스로 코트를 부수고 다니는 모 만화처럼 테니스(장애)라는 요소를 취했으나 내용 전개는 전혀 현실의 모습이 아닌 것.


저 정도의 오버 스펙이 아니어도 충분히 장애인의 삶을 담담하고 감동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 <조제 호랑이와 물고기들>처럼 말이다. 장애를 장애답게 다루지 못한 데서 오는 아쉬움 진하게 느껴졌다.


래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시작으로 더 좋은 다양한 장애를 다룬 드라마가 많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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