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지난 주말 방 청소를 하다가 어느 한 곳에 치워두었던 가방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 가방은 내 고등학교 생활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만한 것인데, 바로 입시 미술을 할 때 썼던 물건들을 모아둔 가방이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미술학원에 나가 그림을 그려도 될 정도로 완벽한, 쓰다만 4b 연필, 다 닳아 없어진 2b 연필, 사선으로 반쯤 잘린 미술용 지우개 등등. 정말 모든 게 딱 그 시절에 머물러 있는 가방.
그러다 문득 고3 때 그린 그림들이 보고 싶어 찾아보았다. 나에게도 이런 가슴 뛰는 일이 있었지 하고 웃으며 어쩐지 조금 서글퍼지기도 했다. 언젠가 예전의 글에서도 밝혔듯이, 난 미대 진학에 실패한 입시미술생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술이라는 것 자체를 좋아하긴 했지만, 객관적으로나 스스로나 그림을 잘 그리는 그런 학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확실히 입시미술 쪽보다는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는 과정을 더 즐거워했다.) 10년이 더 넘은 그 일이 여전히 내 가슴에 남아있고 기억되는 것은 아마도 특별했기 때문일 것이다.
함께 그림을 그리던 친구들, 서로의 그림을 보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사뭇 진지했던 시간들, 방학 기간에 점심을 먹으며 웃고 떠들었던 기억들. 아마 지금 유리지갑의 직장인 A가 된 지금도. 난 그때의 좋은 추억들을 안고 있기에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근 3년은 코로나 때문에 자주 다니지 못했지만, 이제는 슬슬 문화생활을 재개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하고, 가 볼 만한 전시들을 물색 중이다.
다시 가슴이 뛸 시간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