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모습과 완벽한 세계 사이의 관계.
완벽함의 공식.
봄은 간질간질한 계절이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 하며 영화관에도 봄바람이 부는 듯한 싱그런 작품들이 하나, 둘 쯤은 걸린다.
우리들의 완벽한 세계는 만화가 아루가 리에의 '퍼펙트 월드'를 원작으로 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을 다룬 영화이다. 밝고 화사한 순정물의 법칙을 고스란히 따라가는 정석을 보여주지만 이 영화는 다른 순정물과 사뭇 다르다.
고등학교 시절 선배인 아유카와 이츠키를 짝사랑하던 여자 주인공 카와나 츠구미는 끝내 짝사랑을 고백하지 못한 채 그와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인테리어 회사에 다니던 카와나는 우연히 거래처와 회식 모임을 가지고, 그 자리에서 선배인 이츠키가 거래처의 직원인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짝사랑 선배와 다시 만나게 됐다. 그러나 만남의 기쁨도 잠시. 카와나는 이츠키의 몸상태를 보고 당혹감을 느낀다. 고교시절 농구도 잘하고 모두에게 인기 많던 선배가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건축사가 되는 꿈을 가진 남자 주인공 이츠키는 후천적 장애인이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차에 치였고 그 사고로 척수 마비를 갖게 된다. 그러나 열심히 노력한 결과 자신의 꿈을 이루는 데 성공하였다.
장애인들도 분류를 하자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선천적 장애, 그러니까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경우와 후천적 장애, 태어날 때는 비장애인으로 태어났으나 사고나 질병 등으로 인하여 장애를 가지게 된 경우를 후천적 장애라고 한다. 당연하게도 세상에는 전자의 경우보다 후자의 경우가 훨씬 많다. 통계적으로도 그렇고 잘 생각해봐도 태어나는 인구 중에 비장애인의 수가 장애인의 수보다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거래처와 일을 같이 하게 되면서 친해지게 된 두 사람. 두 사람은 밥을 먹고 카페도 가고 휴일을 같이 보내기도 하며 친하게 지내지만 이츠키는 카와나에게 거리를 둔다. 그건 자기 자신이 만들어낸 일종의 벽이었다. 장애인인 자신과 엮이면 주변이 피곤하고 불행해진다고 느낀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을 제외한 모두에게 일정한 거리를 두고 상대하게 되었다.
사실 비장애인이었다가 장애인이 되었으니 그가 마음의 벽을 닫아버린 것도 이해된다. 어느 날 멀쩡히 잘 쓰던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었는데 아무렇지 않다는 듯 산다는 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당장 눈을 감고 집안을 움직여 보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다 알고 있음에도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는데 일시적도 아닌 영구적인 장애를 가지게 된 그의 마음은 어땠을지.
자신에게 장애가 있음을,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납득해야 한다는 것. 선천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원래부터 그랬기에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지만 후천적 장애인들은 다르다. 그래서 더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꾹꾹 참아가며 자신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살았다. 누군가에게 기대게 된다면 스스로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 그는 그런 것들을 혼자 견뎌내고 있었다. 이츠키에게 연애는 사치였다.
물론 카와나는 고교 시절 동경했던 선배에게 긍정적이기도 하고 그가 장애를 가졌다는 것에 대해서 일말의 회의감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그에게 어떻게 하면 힘이 될까를 고민하면 고민했지. 무한 긍정의 여주인공이다.
반면 이츠키는 장애를 가지게 된 후, 그전에 사귀고 있던 여자 친구에게도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하고, 연애를 하지 않고 혼자 살아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리고 카나와에게 혹여나 자신에게 마음이 있거든 포기하라고 말한다.
제아무리 멀쩡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쳐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상에서 가장 이해를 해줄 수 있는 가족들과도 갈등과 마찰을 빚는데, 여자 친구라고 안 그럴까. 이츠키는 그 점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가족들의 반대. 아마 현실의 장애인 커플들도 한 번쯤은 겪어보았을 그런 이야기들.
그러나 이런 장르의 전개가 그렇듯, 두 사람은 비 오는 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마침내 정식으로 사귀는 사이가 된다. 평범한 여느 커플들처럼 둘 만의 시간들을 보낸다.
비장애인 커플보다 장애인 커플은 어느 한쪽이 훨씬 많은 희생과 노력을 요구한다. 그래서 늘 드는 생각이 대단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물론 장애인이라고 사랑하지 말라는 법 따위는 없지만 현실은 동화가 아니기에 훨씬 아프고 어렵고 잔인하기 때문이다.
이츠키를 위해 무리하던 카와나는 결국 과로로 쓰러지게 되는데, 이 과정이 너무 극적이라 놀랐다.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던 두 사람. 카와나가 역무원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가는 와중에 다른 사람과 어깨를 부딪힌 카나와는 그대로 선로에 떨어지게 되고 이츠키는 떨어지는 카와나를 붙잡지 못한다. 결국 이츠키는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게 된다. 다리만 멀쩡했더라면 벌어지지 않았을 그런 상황. 누군가 도와달라는 말 외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병원으로 찾아온 카와나의 아버지에게 그만 헤어져 달라는 부탁을 받는 이츠키. 자신의 딸아이가 고생하는 그런 건 겪게 하고 싶지 않다는 지극히 이해 가는 아버지의 부탁. 장애가 있다고 무시한 것이 아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 당연한 이야기를 한 것뿐이다. 그 어느 부모도 자기 자식이 뻔히 고생하는 길을 좋게 볼 부모는 없다.
카와나가 퇴원한 후, 둘은 놀이동산으로 데이트를 간다. 그리고 이츠키는 속마음을 고백한다.
화가 나.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너무 없어서 괴로워.
역에서 떨어졌을 때도 일어설 수 있었다면 잡았을 거야. 난 너한테 상처만 주고 점점 더 불행하게 만들어. 그러니까 오늘로 끝내자.
네 인생을 소중하게 살도록 해.
그러니까... 헤어지자.
중간중간 이렇게 치고 들어오는 현실의 예리함은 이 영화가 아름답고 발랄하기만 한 순정물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이츠키를 보살펴주던 헬퍼 나가사와의 현실적인 조언도 그 의미를 더했다. 그와 사귀려면 각오가 필요하다는 것. 사랑 뒤에 따라올 책임들을 감당할 수 있느냐는 의미.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동시에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또다시 놓아주느냐, 아니면 그 모든 것을 감싸 안고 헤쳐나가느냐. 화면에는 분명히 밝은 장면과 봄에 맞는 싱그러운 화면들이 가득했지만, 안타까울 수밖에 없는 장면들에 마음이 아팠다. 누구는 이해되고 누구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 아니라 두 마음의 모두 이해가 가고 그래서 더 마음이 동했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그런 이분법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편하게 보기에는 중간중간 묵직하게 들어오는 것들이 있어서 마냥 가벼운 영화는 아니었다. 그러나 두 주연 배우의 장르에 충실한 연기와 아름다운 배경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연애라는 그리 흔하지 않은 소재의 영화를 보아서,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주어서, 극히 일부의 상영관에서 상영했음에도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수많은 문제들을 차치하더라도. 두 사람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완벽한 세계는 바로 너와 내가 함께 있는 지금 이 순간의 세계라는 것을, 사랑 앞에 장애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알려준 영화였다. 사랑은 그 무엇보다 위대하다.
다시 만나 첫사랑은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고백할 용기도 못 내고 끝나버린 첫사랑.
전하지 못한 말들이 넘치고 있었다.
(중략)
우리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그러나 선배와 함께라면 헤쳐나갈 수 있다.
웃을 수 있다.
사람은 혼자가 아니에요.
둘이 함께라면, 그것만으로 세계는 완벽할 거야.
(2019년에 후지 tv에서 드라마로도 제작이 되었습니다. 현재는 8부 방영중이고 주인공들은 다릅니다만 영화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네요.)
p.s 원작 만화를 보고 있는데 원작의 설정은 동급 학생이라는 설정이네요 선후배 관계는 영화적 각색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