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드 <퍼펙트 월드> 리뷰.

언젠가 이 사랑이 보편적인 사랑이 되기를.

by Erebus


우연히 본 일드 목록에 퍼펙트 월드가 있어서 어 내가 아는 그 퍼펙트 월드가 맞는 건가 싶었는데 내가 아는 그 작품이 맞았다. 이 작품은 원래는 만화가 원작인데 아직 만화는 보지 못하였고, 전에 개봉한 영화로 먼저 본 작품이다. 영화가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던 터라 기대감을 가지고 시청했다.


물론 리뷰에 앞서, 원작인 만화를 보지 못했기에. 영화와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일련의 사건들이 어디까지가 원작이고 각색된 부분인지 알 수 없었지만 큼직큼직한 사건들은 다르지 않았다.


먼저, 이 드라마가 영화보다 좋았던 점은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확실히 영화는 이츠키와 츠구미 두 사람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느낌이 드는 반면, 드라마의 경우 기본적인 큰 틀은 이츠키와 츠구미의 이야기면서 조연들의 이야기 또한 가지를 치고 나가 더욱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소꿉친구로 나오는 히로타카가 원작에서도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이츠키만큼이나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또 캐릭터의 싱크로율을 따지자면 드라마판이 영화보다 더 잘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물론 영화는 이츠키가 선배라는 설정이고 드라마는 동갑내기 친구라는 설정이다. 오직 비주얼적인 면으로만 보자면 드라마판이 원작 만화에 더 가까웠다.


이츠키의 첫사랑이 결혼하는 장소에 츠구미가 데려가 주거나 이츠키를 위해 무리하던 츠구미가 선로에서 떨어지는 것이 둘 다 나오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이건 원작에도 있는 이야기인 듯싶었다. 그리고 츠구미가 이츠키를 생각하며 그렸다던 체육관 그림도.


애절하고 안타까운 것은 영화나 드라마나 마찬가지였다. 츠구미의 아버지 역할은 <고독한 미식가>의 일명 고로상으로 널리 알려진 배우, 마츠시게 유타카가 연기했는데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딸을 둔 아비의 마음과 딸과 장애인 남자 친구의 마음이라는 그 두 마음의 충돌에는 차마 어느 편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절절했다. 결국엔 이루어질 것을 알면서도 왜 이리 마음이 아린 것인지. 그리고 우리의 의리남 히로타카... 정말 그런 사람 또 없을 정도로 멋진 사람이었다. 츠구미의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지 알면서도 끝까지 츠구미와의 우정(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멋진 남자의 표본. 실제로 일본 웹사이트에서는 이츠키파와 히로타카파가 나뉘었다고 한다. 물론 히로타카의 본인의 말대로 츠구미가 그를 선택했더라도 충분히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을 사람이다. (영화에서는 비중이 크지 않은 캐릭터이다.)


그 외에도 이츠키의 직장동료로 나오는 하루토. 이츠키와는 다르게 걸을 수 있지만 한쪽 다리를 의족으로 하고 있는 장애인인데 사실 많은 사람들이 휠체어를 타고 움직여야만(눈에 장애가 직접적으로 보여야만) 장애인이라고 인식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의외로 우리 주변에는 사지 멀쩡하고 잘만 걸어 다니는 장애인들이 많다. 말인즉슨, 겉으로만 봤을 때 이 사람이 장애인인지 그냥 일시적으로 다친 환자인지 쉽게 구별하기 힘든 사람들이 많다는 소리다. 물론 휠체어를 탄 장애인보다 거동이 더 나을 수는 있겠지만 경증의 장애인일지라도 장애인은 장애인이다. 작중 이런 대사가 나온다.


비장애인에 대한 콤플렉스는 평생 버릴 수 없어. 하지만 장애인이니까 할 수 있다는 걸 (중략) 장애를 받아들이는 건 평생 못 해도 돼. 다만 뭔가 하나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매일 낙심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중증이든 경증이든 장애인들에게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수많은 미디어에서 성공한 장애인들을 인간승리의 아이콘으로 만들곤 한다. 그러나 실제 장애인들에게 장애란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원론적으로 장애는 극복할 수 없다. 아무리 장애인이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100%의 비장애인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의 부족함을 가진 98%의 사람으로 살아간다. 실질적으로 장애인들에게 장애는 극복해야 할 시련의 대상이 아니라 평생을 함께 가야 할 친구 같은 존재다. 완벽하게 나을 수 있다면 애초부터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은 없었을 테니까.


그 스스로가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해서 할 수 없는 것은 확실하게 인정하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에서 도움을 받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드라마가 영화보다 확실하게 잘 보여주고 연출한 장면이기도 했다. 무심코 생각했던 장애에 대한 편견을 날려주는 계기가 되었다. 휠체어를 탄 사람에게 일어나 걸으라고 할 순 없지만 그 사람도 분명히 스스로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이츠키는 자신의 한계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다. 분명 자신이 츠구미에게 살면서 많은 도움을 받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자신이 츠구미에게 해줄 수 있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츠구미에게는 히로타카의 다정함도 좋지만 자신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이츠키였다. 그 사람이 장애를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걱정도 잊게 만드는 사람, 그리고 그런 마음. 중요한 것은 그것이었다.


일본에서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노리고 만든 드라마라는 감도 있지만(일본 내의 장애인 시설이나, 인식 같은 것을 노리고) 하필 이 시국에, 민감한 일본 콘텐츠임을 감안하더라도 소재 자체는 국적과 인종을 가리지 않을 훌륭한 소재였다. 포스터에도 나와있듯이, 언젠가 이 드라마가 그저 흔한 러브스토리가 될 수 있기를.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이런 드라마가 한 편쯤은 나와주기를 바라본다.


(p.s. 카와나 츠구미 역의 야마모토 미즈키와 코레에다 히로타카 역의 세토 코지는 후에 실제로 결혼을 했다고 한다. 드라마상에서도 좋은 소꿉친구로 나왔는데! 실제로 부부라니 기분이 묘하다. 응팔이 생각나는 결말이기도! 두 사람이 부디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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