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대 입시 실패기.
그렇지만 지금도 좋아하는 것. 그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실패한 경험이 있다면 아마 미대 입시 실패기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대학 입시, 누구에게나 있는 인생 첫 최대의 시험. 나는 미대 입시생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미술관 가는 것을 좋아하던 나는 자연스럽게 그림이란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로코코 시대의 섬세한 그림들에 감탄하면서 어떻게 사람 손으로 저런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그 호기심의 시작이었다. 섬세한 옷의 표현하며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듯한 인물들(묘사) 앞에서 나는 인생 처음으로 강렬한 희열을 느꼈던 것이다.
그리하여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시작하게 된 입시 미술생의 생활. 그림이라곤 초등학교 때 으레 다니던 미술학원 정도만 다녔던 내게 본격적인 입시 미술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물을 볼 때 덩어리감(입체감)을 보지 못해 애먹었고, 명암(그림자)을 나누는 것도 어려웠다. 하고 싶어서 시작한 것이었지만 나보다 더 어렸을 때부터 그림 하나만을 배운 아이들의 그림을 보며 속으로 알게 모르게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 아이들에겐 숨 쉬듯이 자연스러운 것들이 나에게는 한없는 시련과 도전이나 다름없었다. 이미 머릿속의 구상은 완벽한데 내 손은 그 구성의 백분의 일도 따라잡질 못했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어찌어찌해 나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입시 미술이란 것은 하나의 테크닉으로 정의할 수 있는데, 미대 교수의 입장에서는 학생들의 실력 평가를 하기에 테크닉만큼 확실한 것이 없을 것이다. 마치 우리가 경연 프로에 나온 가수의 노래를 들을 때 가수가 지르는 최고음 한 번으로 그 가수의 실력을 평가하듯이. 그리고 테크닉이란 것은 어렸을 때부터 갈고닦은 사람에게 더 유리한 것이었다.
당연히 테크닉이 부족했지만 그런 나에게도 한 가지 장점을 꼽으라면 그건 '포트폴리오'였다. 흔히 줄여 '포폴'이라고도 하는데 내가 누구인지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것이었다. 테크닉이 아닌 나만의 '개성'으로 승부하는 것. 바로 나 자신의 아이덴티티. 실제로 미술 학원 선생님들의 평가도 포트폴리오가 더 좋았다. 어렸을 때부터 입시를 배운 사람의 스타일이 아니라서 조금 특이하게 보이는 지점들이 있었나 보다. 그 점을 좋게 봐주셨다. 나도 학원에서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 포트폴리오 작업을 하는 시간이었고.
그렇지만 이 글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보기 좋게 미대 입시에 실패했고 당시 혹시나 해서 흔히 말하는 안전빵으로 넣은 차순위로 좋아하는 학과가 있는 대학교에 붙어서 재수를 안 하고 그 학과를 졸업했다.
그때의 나는 입시 미술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 그것을 1년간 더 한다고 해서 붙을 거란 희망도 없었고 뭣보다 입시 스트레스가 매우 크게 다가왔다. 내가 진정 좋아한 것은 그림이었지. 입시 미술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지금도 여전히 전시회를 찾아다니며 감상하고 내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생각하게 된 것 또한 내 스스로가 직접 그림을 그리며 배웠던 입시생 때의 경험과 기억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확고한 사실이다.
지금은 그저 취미로만 그리는 그림이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림을 좋아한다. 가끔 내가 끝까지 해서 미대에 붙었으면 어땠었을까 하는 생각을 지금도 하긴 하지만, 누구에게나 못 가본 길은 있는 법이니 예전만큼 속상하진 않다. 나는 여전히 그림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미술인이니까. 보는 것도 좋고 그리는 것도 좋지만 혼자만 간직하는 나만의 작은 비밀이 되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