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by Erebus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또 다른 자아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이면서 내가 아닌 느낌. 그 묘한 이질감이 기분 나쁜 것이라고. 미술관을 빠져나오며 멍하니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었다. 고개를 숙여 신발을 쳐다봤다. 얗던 신발은 어느새 거뭇거뭇 때가 타 있었다. 발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했다.


움직인 만큼의 정직함을 품고 있는 것. 신발이란 사실 그런 물건이었다. 그렇게 또다시 한참을 서 있다가 등 뒤로 비추는 햇살을 느꼈다. 유리에 비친 나의 모습을 밝게 비추는 빛. 그것은 나이거나 내가 아닌 자아이거나 상관이 한결같이 비추어 주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불었음에도 등 뒤로 느껴지는 따스함은 묘한 안도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약간의 기분 나쁨마저 무시하고 넘길 수 있을 만큼의 적당한 온기는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한동안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냥 그 기분을 계속 간직하고 싶어서, 그 순간의 느낌을 잊고 싶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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