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바르셀로나
가장 기다려지는 축제
8월 중순 그라시아 지구의 축제가 끝나고 나면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9월의 메르세를 기다린다. 매년 9월 24일을 기준으로 5일 동안 진행되는 라 메르세는 바르셀로나에서 끊이지 않는 축제들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로 열린다.
2020년 올해에는 23일부터 27일까지 열렸다.
작은 지구 혹은 동네마다 기념하는 일반적인 축제들과 다르게 라 메르세는 바르셀로나 도시에 속하는 10개 모든 구역에서 개최된다.
메르세 축제가 열리는 동안 바르셀로나의 모두가 들떠있다. 관광객들은 카탈루냐의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현지인들은 가족 혹은 친구들과 여러 행사에 참여한다. 어린아이부터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까지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축제이다.
도시의 구역마다 다르게 진행되는 이벤트를 보기 위해 프로그램을 따라다니다 보면 도시 전체를 누비게 된다. 평소에는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는 장소들을 오픈하는 경우도 있는데 덕분에 그동안 몰랐거나 가보지 못했던 곳까지도 발견하게 된다.
라 메르세는 도시와 사람이 온전히 섞여 즐길 수 있는 축제이다.
La Mercè
'자비'라는 뜻의 메르세는 카탈루냐 사람들이 성모 마리아를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축제 포스터의 주인공은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여성으로 그려진다.
17세기 메뚜기 떼의 공격을 받은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성모 마리아의 자비를 얻기 위해 자비로운 신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를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공표했고 1218년 카탈루냐를 가장 부흥하게 했던 자우메 1세 왕과 다른 성인들에게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가톨릭 규율을 설립할 것을 명령한 그 날인 9월 24일을 그녀를 위한 날로 정했다.
올해의 포스터 속 소녀는 마스크를 쓰고 메뚜기를 손에 얹고 있는데 코로나 19로 큰 고통을 겪고 있는 모두에게 성모 마리아의 자비를 구하는 마음으로 그렸을 거라 생각된다.
1902년에 바르셀로나 시청에서 전통행사를 기반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 발전해 지금 축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24시간 축제
9월 중순 바르셀로나의 날씨는 밤을 새워 24시간 동안 축제를 즐기기에 완벽하다. 한여름의 타오르는 더위는 지나갔지만 여전히 낮의 태양은 뜨겁고 밤에는 시원한 바람이 살짝 불어준다.
아침 10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지는 축제의 행사들을 좋은 날씨와 함께 만끽할 수 있다.
거의 24시간을 다 채울 정도로 수많은 행사들이 바르셀로나 전역에서 끊임없이 진행된다. 상당한 퀄리티와 규모의 행사들은 모두 무료이다. 바르셀로나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제한 없이 즐길 수 있다.
아침에는 주로 카탈루냐의 전통 행사들을 볼 수 있다. 아이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어 가족들이 함께 즐기기에 좋은 이벤트가 많다.
오후가 되면 문화예술 행사들이 열린다. 연극, 무용, 서커스 등등 여러 나라의 예술가들이 바르셀로나에 모여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쳐낸다.
어두운 밤에는 도시 전체가 콘서트 장이 된다. 넓은 거리, 광장, 해변에 설치된 무대에서 다양한 국적과 장르의 음악들이 울려 퍼진다. 이렇게 무료로 들어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참여하는 뮤지션들의 수준은 월드 클래스다.
축제에 빠지지 않는
카탈루냐 전통 행사들
메르세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인간 탑 쌓기가 시청 앞 자우메 광장에서 가장 크게 한다.
동네의 팀마다 경쟁을 하는 구도로 진행되는데 탑을 쌓는 모양도 조금씩 다르고 즉석에서 함께 연주하는 음악도 다르다. 눈앞에서 10 미터 정도 되는 높이까지 탑이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무너지지 않을까 무서워서 마음이 두근두근하는데 가장 작은 아이가 꼭대기에 올라 탑을 완성했다는 제스처로 손을 들어 올리면 그 순간이 정말 짜릿하다.
카탈루냐의 거인들이 모두 나와 춤을 추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축제가 되면 카탈루냐를 상징하는 성인, 용, 사자와 같은 모습을 한 거인 인형들이 퍼레이드를 한다. 메르세는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큰 축제이기 때문에 바르셀로나의 모든 동네의 거인 인형들이 총출동한다.
꼬레폭스는 해가지고 하는 전통행사이다. 꼬레 Corre = 달리다, 폭스 Focs = 불을 의미한다. 구시가지의 고딕 지구와 보른 지구를 가르는 비아 라에따나 Via Laetana를 따라 이어진다. 작고 귀여운 불장난이 아니다.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큰 대로를 울릴 정도로 엄청난 불꽃을 뿜어낸다.
가까이 가고 싶다면 불꽃에 옷이 탈 수도 있기 때문에 낡은 옷을 준비해야 하고 연기에 대비해서 손수건 정도를 챙겨야 한다. 동네의 작은 꼬레폭스는 자주 따라가 보기도 했지만 메르세의 꼬레폭스는 큰 규모에 겁이 나서 매번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었다.
축제의 하이라이트
하지만 수많은 이벤트 중에서도 가장 하이라이트는 매일 밤 열리는 음악 콘서트이다. B.A.M이라는 이름의 이 콘서트에는 재즈, 레게, 락, 일렉트로닉 등등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이 전 세계에서 참여한다.
매일 밤 도시의 곳곳에서 콘서트가 열리기 때문에 며칠 전부터 프로그램을 보고 뮤지션들의 음악도 조금씩 들어보고 계획을 세워 놓는다. 바르셀로나에서 지내는 5년 동안 가장 열심히 챙겼던 이벤트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콘서트는 2017년에 왔던 우리나라 뮤지션인 이디오테잎 IDIOTAPE과 2018년 마세고 MASEGO의 콘서트이다.
대학시절 종종 들었던 우리나라 뮤지션의 음악을 바르셀로나에서 라이브로 듣게 될 줄이야. 신나는 공연이 끝난 후에 카탈루냐 아이들이 이디오테잎 멤버들을 한국말로 부르고 싶다고 부탁해서 '오빠'를 가르쳐줬던 기억도 이디오테잎과 함께 바르셀로나의 추억이 되었다.
마세고 MASEGO는 2017년부터 한참 빠져있던 뮤지션이었다. 거의 매일 듣고 있던 어느 날 B.A.M 공연 리스트에서 마세고의 이름을 보자마자 공연하는 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MACBA 앞 광장에서 열린 공연은 정말 대단했다.
엄청난 뮤지션들의 공연을 봤던 기억은 잊을 수 없는 메르세의 순간들 중 하나이다.
축제의 마무리
5일 동안 도시를 들썩이게 했던 메르세 축제는 시작했을 때처럼 불꽃놀이로 마무리된다.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불꽃놀이는 바르셀로네타 해변에서 한다. 해변을 걷다가 바다 위에서 빛나는 불꽃을 보는 건 정말 낭만적이다.
메르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불꽃놀이는 몬주익의 카탈루냐 미술관 앞에서 하는데 새해의 불꽃놀이만큼 규모도 크고 화려하다.
설레는 마음으로 바르셀로나 거리를 누비며 공연을 보고 친구들과 맥주 한잔하던 자유롭던 그 시간들이 너무 그립다.
나, 아델
한국 회사 생활을 정리한 후 3개월 동안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났다. 한 달을 보낸 바르셀로나는 꼭 살아보고 싶은 도시가 되었고 한국에 돌아온 지 6개월 만에 다시 떠나 5년이라는 시간을 바르셀로나에서 보냈다. 바르셀로나에서 카탈루냐 사람들은 나의 또 다른 가족이 되었고 다양한 국적의 유럽 사람들은 내 회사 동료 혹은 친구가 되었다. 바르셀로나 도시 자체를 너무 사랑했지만 이방인으로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그 도시를 사랑하는 마음만큼 미워하는 마음도 크기를 같이 하고 있다.
'나의 바르셀로나'는 이런 기억들을 조금씩 적어보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