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
바르셀로나를 떠나고 싶어
여행으로 만난 바르셀로나와 생활하는 바르셀로나는 분명 달랐다. 기대했던 것과 달라고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졌다. 초반에는 내가 바르셀로나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든 것이 위로되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견디기 어려웠다. 극도로 개인적인 팀 분위기와 아시안으로서 은근하게 혹은 직접적으로 받는 인종차별이 상처가 되었다.
바르셀로나에서 하루도 견딜 수 없었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여행을 떠나야 했다. 바르셀로나에 온 이후로 온전히 혼자 여행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낯선 곳에서 온전히 혼자였던 그 시간들이 너무 그리워졌다.
스카이스캐너에서 목적지를 Everywhere로 설정하고 비행기 값이 가장 저렴한 니스를 목적지로 정했다. 니스 항구와 가까운 작고 낡은 플랫을 에어비엔비에서 예약했다.
처음 만난 니스, 반가워!
새벽 5시에 집에서 출발해 아침 7시 30분 비행기를 타고 아침 9시 니스에 도착했다. 아침 공기가 조금 쌀쌀했지만 맑은 하늘에 태양은 뜨거웠다. 공항에서 98번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버스 티켓은 6유로이다. 버스에서 프랑스어로 수다 떠는 할머니의 목소리와 창밖 너머로 길게 뻗어있는 해변의 모습이 내가 프랑스 니스에 왔음을 명확히 해주었다.
버스에서 내려 가리발디 광장에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르셀로나에 비하면 니스는 아주 고요했다. 처음 만난 니스가 너무 반가웠다.
체크인 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도착했지만 집주인은 흔쾌히 먼저 열쇠를 건네주었다. 건물 5층에 있는 작은 플랫은 사진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많이 낡아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실망했지만 하루 종일 해변에 누워있기로 한 여행이라 괜찮았다.
성당 앞 레스토랑, 푸짐한 점심
드디어 낯선 이곳을 혼자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비키니를 입고 비치타월과 책을 한 권 챙겨 나왔다. 사람들을 따라 골목을 걷다가 괜찮아 보이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해변으로 가서 낮잠도 자고 책도 읽어보기로 했다.
구시가지 중심으로 들어가니 아주 좁을 골목을 따라 수많은 레스토랑들이 늘어서 있었다. 여름의 태양이 남아있는 9월 중순 여전히 니스를 찾는 관광객들이 많았고 덕분에 좁은 골목은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사람들이 걷는 대로 따라 걷다가 멀리 성당의 탑이 보였고 시끌시끌한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성당 앞 광장은 주변 카페와 레스토랑의 테이블로 채워져 있었고 식사를 하거나 주변을 지나는 관광객들의 소리가 웅성거렸다.
그나마 덜 붐비는 성당 정문 옆 레스토랑에 앉아 15.90 유로 메뉴를 주문했다. 베이컨, 양파, 크림소스 크레페, 볶음밥이 곁들여진 대구요리 그리고 사과 타르트를 디저트로 주문했다. 샤르도네도 한 잔. 주변은 북적였지만 음식을 즐기고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나만의 시간을 즐겼다. 이미 첫 번째 요리부터 배가 좀 찾지만 디저트까지 야무지게 마무리했다.
프롬나드 데 장글레, 영국인 산책로
구시가지의 좁은 골목을 벗어나자 드넓은 지중해가 나타났다. 작은 해변들이 산과 바위 사이에 숨어있는 카탈루냐의 코스타 브라바 해변들과 달리 니스의 해변은 아주 크게 트여있었다. 이 해변의 거리는 서쪽 공항에서부터 동쪽 항구까지 무려 7km나 된다.
18세기 후반부터 영국인들은 니스의 해변을 즐기며 겨울을 보냈다고 한다. 1820년 유럽 북부의 한파로 인해 니스로 몰려드는 걸인들이 몰려들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인 몇 명이 산책로를 건설할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영국의 사업가였던 루이스 웨이가 자금을 조달했고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던 니스 시는 산책로 길이를 대폭 늘려 산책로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혼자만의 시간 즐기기
해변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니스 해변은 꽤 큰 자갈로 이루어진 해변이다. 처음에는 발에 모래가 묻을 일이 없어서 좋겠다 생각했는데 자갈 때문에 모든 자세가 불편했다. 최대한 자갈들을 평평하게 펴고 누워서 햇볕을 쬐다 보니 적응이 되기는 했지만 더 편하게 시간을 보내려면 단단한 깔게 가 필요할 것 같았다.
오후 4시쯤이었는데 서서히 지는 태양도 여전히 뜨거웠다. 낮잠을 자다가 꽤 더워져서 바다에 들어갔다. 시원한 바다에 동동 떠보기도 하고 어설픈 헤엄을 쳐보기도 했다. 조금만 들어가도 수면이 꽤 깊어져 겁이 좀 나기도 했다. 몇 번 더 들어가고 싶었지만 포기하고 책에 집중했다.
입었던 셔츠를 벗어 바닥에 깔고 그 위에 누워 한참을 통하 하던 프랑스 아저씨, 아장아장 걷는 예쁜 아기랑 여행 온 스페인 부부, 바다수영을 아주 잘하는 독일 커플, 두 자매와 함께 온 영국 엄마와 같은 다양한 사람들이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면 눈에 들어왔다. 무슨 말들을 하는지 제대로 들리지도 알아들을 수도 없었지만 모두들 지중해와 함께 행복해 보였다.
한참을 누워있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 영국인 산책로를 따라 항구 방향으로 걸었다. 항구를 따라 정박되어 있는 작은 배들과 그 뒤로 보이는 낡은 건물들이 예뻤다. 조그맣게 자리 잡은 식당들도 예뻤다.
니스에서의 첫째 날 마무리
카르푸에서 물을 사면서 토마토, 귀여운 치즈와 함께 350ml 레드와인도 한 병 샀다. 장을 보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이렇게 장을 보니 마치 이곳에 사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기회가 된다면 5일이 아닌 한 달 정도 지내보고 싶었다.
스페인에 있는 친구와 영상통화를 하며 와인을 마셨다. 치즈도 와인도 모두 맛있었다. 작은 병 하나만 사 오기를 아주 잘했다.
이렇게 니스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했다.
유럽 여행
바르셀로나에서 지내는 5년 동안 유럽의 다른 도시들을 여행하는 건 여러 면에서 훨씬 수월해졌다. 기대했던 것만큼 많이 여행하지는 못했지만 여유가 더해진 만큼 분명 나만의 방법으로 온전히 그곳을 즐길 수 있었다. 친구와 함께 혹은 혼자 유럽의 도시들을 여행하면서 내 마음은 더욱 풍성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