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케터 아델 Dec 30. 2020

말라가에서 또 뭐 먹었지?

스페인 여행: 말라가, 말라가 전통시장, 추로스 ,엘삠삐, 삔초

맛있는 기회



스페인 문화, 아랍 양식의 건물들, 해변, 타파스 등등 백 일 여행의 시작점이었던 말라가에서는 경험했던 대부분의 것들이 생소했다. 덕분에 말라가에서의 시간들은 다른 여행지들 보다 더욱 선명하게 남아있는데 그중 하나가 음식이다.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 며칠 더 말라가에 머물면서 더욱 여유롭게 시간을 보낸 덕분에 친구들이 추천해 주었던 맛집을 우연히 발견하거나 말라가에서 만난 사람들과 음식과 와인을 함께 맛보는 맛있는 기회들이 많이 생겼다.






말라가 시장 과일과 야채



말라가에서 지낸지 일주일이 다 되어갈 무렵 목적지 없이 걷다가 큰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아따라사나스 시장 Mercado Central de Atarazanas이었는데 시에스타 시간이 되기 전 장을 보는 사람들로 시장 안이 붐볐다. 14세기 무어인들의 조선소였던 이곳은 레콩키스타 이후에는 창고, 무기고, 군 병원으로도 사용되었던 이곳은 19세기 호아킨 루코바 Joaquín Rucoba의 제안에 따라 식재료를 파는 시장으로 다시 세워졌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말라가의 미술학 교이 산 텔모 아카데미는 14세기부터 사용되었던 아랍식 입구를 그대로 살려 시장의 정문으로 만들었다.



철제 골격과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시장은 아주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가게마다 신선한 야채와 알록달록 과일들이 예쁘게 진열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팩에 만 원은 줘야 하는 비싼 체리가 이곳에서는 500g에 1유로였고 서너 개에 만 원 하는 아보카도는 1kg에 2.50유로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아주 신선해 보이는 야채와 과일이 저렴하기까지 해서 이것저것 골라 담았다.


과카몰레를 만들어 먹기 위해 아보카도, 토마토, 양파와 레몬을 샀다. 딱 알맞게 익은 아보카도는 크기도 엄청 커서 아보카도 하나로 혼자 먹을 과카몰레를 충분히 만들 수 있었다. 과카몰레에 넣기 위해 산 토마토는 아주 달고 상큼해서 뭉텅뭉텅 썰어 올리브유랑 레몬즙만 뿌려 샐러드로 먹었다. 종이봉투에 따로 담은 체리 500g은 숙소까지 걸어가는 길에 다 먹어치웠다.


이 날 이후로 매일 시장에서 조금씩 장을 봐서 간단한 샐러드를 해먹었는데 3~5유로 정도 사면 숙소의 친구들 4~5명과 함께 나눠먹을 샐러드를 만들 수 있었다. 말라가 시장의 아저씨가 맛보라고 건네주었던 신선한 토마토의 맛은 아직도 생생하다.






스페인식 아침 데사유노



스페인에 가기 전 우연히 말라가에서 어학연수를 했던 후배들을 만났는데 추로스를 아침으로 꼭 먹으라며 카페 센트랄 Café Central을 소개해 주었다. 말라가에서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 한 날 그 친구와 대화했던 게 생각나 그곳으로 향했다. 아침 9시쯤 숙소를 나왔는데 10시나 10시 30분은 되어야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말라가의 아침은 아주 고요해 혼자 조용히 산책하기에 좋았다.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슬렁슬렁 걸어 카페에 도착했다. 추로스와 초콜라떼 그리고 오렌지 주스를 주문했다. 입으로 베어 물 때마다 바삭바삭 소리가 나는 갓 튀겨낸 추로스를 데워진 초콜릿에 듬뿍 찍어 입에 넣었다. 한여름 아침에 뜨끈한 초콜릿에 찍어 먹는 추로스는 겨울 스키장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먹었던 내 기억 속 설탕이 가득 뿌려진 추로스와는 모든 게 달랐다.


너무 맛있었지만 기름에 튀긴 추로스를 아침부터 먹는 건 쉽지 않았고 단 음식을 잘 못 먹는 내 입맛에 초콜릿은 금방 물렸다. 추로스는 반도 다 먹지 못하고 카페꼰레체를 주문해 단맛을 달래주었다. 카페 센트랄에서 초콜릿과 추로스를 먹는 스페인식 아침은 더 이상 먹지 않았지만 카페에서 해가 서서히 들어오는 콘스티투시온 광장 Plaza de la Constitución의 모습을 바라보는 게 좋아 카페에 몇 번 더 가서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했다.






엘 삠삐 El Pimpi



다른 후배가 소개해 준 곳은 엘 삠삐 El Pimpi였다. 식당 이름에 보데가 Bodega가 붙은 만큼 말라가 지역의 와인들부터 다양 스페인 지방의 와인들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와인 리스트를 한참 바라봐도 선택을 할 수 없어 웨이터에게 추천을 부탁했고 그는 말라가 비르헨 Málaga Virgen 한 잔을 내주었다. 일반 레드 와인 잔 보다 훨씬 작은 잔에 따라주는데 많이 스위트 와인이라 식사에 곁들여 먹기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더운 날 태양을 쬐면서 먹기에는 더욱 부담스러웠다.


와인을 주문하고 메뉴 공부를 시작했다. 그때는 이름들이 익숙하지 않아 어떤 음식인지를 확인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웨이터 아저씨가 영어로 설명을 해주셔도 영어로도 그 새우가 어떤 새우인지 정확히 몰라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아저씨 눈치가 보여 일단 주문을 했는데 정말 상상도 못한 메뉴가 나왔다. 배가 많이 고팠던 나는 커다란 새우튀김이 먹고 싶었는데 나온 음식은 정말 플랑크톤만큼 자잘한 새우튀김이었다. 새우깡 맛이 나서 맛있었지만 넣고 또 넣어도 배가 채워지지 않았다. 시원한 생맥주를 두 잔 마시고 나서야 배도 좀 부르고 답답했던 마음도 조금 달랠 수 있었다.


그제서야 엘 삠삐 앞 로마극장과 알카사바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로마 극장과 알카사바를 둘러싼 거친 돌과 자갈은 광장에 깔려있는 반짝이는 대리석과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멋진 유적지를 바라보면서 마시는 맥주 맛은 아주 좋았다. 그렇게 엘 삠삐에서 로마극장과 알카사바를 바라보며 해가 질 때까지 맥주를 마셨다.






삔초바 Pinxo



에어비엔비 숙소에서 만난 독일 언니와 친해져 식사도 여러 번 같이했는데 언니가 꼭 같이 가고 싶다며 데려가 준 삔초바는 그중 가장 맛있는 곳이었다. 빵 위에 각각 다양한 재료들을 올려놓고 이쑤시개 같은 삔초로 고정시켜놓은 삔초스는 바스크 지방의 음식이다. 접시를 하나 나눠주고 각자 먹고 싶은 삔초를 바에서 골라오면 된다. 차가운 삔초는 바에 있지만 불에 요리된 삔초는 새로 나올 때마다 웨이터들이 들고 나와 손님들에게 보여준다. 먹고 싶은 삔초가 나오면 손을 들어 받으면 된다.


처음 간 삔초바에서 이렇게 주문해 먹는 게 너무 재밌었고 자꾸 새로 나오는 삔초들을 맛보고 싶었다. 하루 종일 물놀이를 하고 나서 배가 너무 고픈 상태였고 한 조각씩 먹으려니 배가 채워지지 않아서 계속 손을 들어 먹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먹다가 혼자 25유로가 나왔는데 적어도 15개 정도는 먹은 것 같다. 음식값이 아주 저렴한 말라가에서 이렇게 먹는 건 엄청난 일이었다.


너무 맛있었었어 혼자 한 번 더 갔는데 배부를 때까지 먹기에는 10개 이상은 먹어야 했다. 가장 단순한 삔초는 하나에 1유로 정도지만 맛있는 재료가 올라가 있으면 2유로에서 3유로 정도가 된다. 웨이터들이 삔초를 들고 나오면 빨리 얘기해서 먹어야 될 거 같아 계속 손을 들게 되고 가격은 제대로 볼 시간도 없이 먹게 되면 20유로 이상 혼자 먹는 건 금방이었다. 삔초는 본격적인 식사를 하기 전에 혹은 간식으로 살짝 먹어줘야 한다.






이탈리안 셰프



내가 지냈던 에어비엔비 숙소는 4층이나 되는 큰 집이었는데 내가 머문 열흘 동안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지만 이야기할 기회가 많지 않다. 하지만 대학에서 공부 중인 친구들끼리 여행 온 이탈리아 애들이랑은 거의 매일 마주친 데다가 모두 친절하고 수다스러워 금방 친해졌다.


매 끼니마다 숙소에서 직접 요리를 해먹는 게 신기해서 물어보다가 요리한 파스타를 맛보게 되었는데 애들이 얘기한 데로 식당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숙소의 파티오에 한 상 가득 요리해두고 사람들을 항상 초대해 주었는데 나는 그 파스타를 맛본 다음부터 시간이 맛을 때마다 와인을 두 세병 사들고 가서 애들과 얘기하며 같이 식사를 했다.


바질 페스토를 바른 빵에 토마토와 모차렐라 치즈를 넣은 샌드위치, 마늘, 양파, 토마토만 넣고 올리브유에 살짝 볶은 파스타, 하루 종일 숙소에서 요리한 리소토까지 숙소의 이탈리안 셰프들 덕분에 맛도 기분도 좋은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말라가에서 먹은 맛있는 음식들은 멋진 장소와 음식을 나눈 사람들과 함께 기억된다.
















스페인 여행일기


스페인행 비행기 표를 먼저 산 후 한국에서의 회사 생활을 정리했다. 스페인 말라가를 시작으로 모로코와 포르투갈을 거쳐 이베리아반도를 100일 동안 여행하면서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만났다. 낯선 곳에서 홀로 보낸 시간은 나 자신을 조금 더 알아가는 기회가 되었고 처음으로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해주었다. 내 인생에서 다시는 없을 최고의 여행이었다.


스페인 여행일기에서 그 여행의 추억을 정리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말라가에서 처음 만난 타파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