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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케터 아델 Jan 07. 2021

말라가 모두가 모이는 파티오

스페인 여행: 말라가, 에어비엔비 숙소, 스페인 파티오

파티오



말라가에서 지낸 에어비엔비 숙소는 면적이 넓지는 않았지만 5층이나 되는 층이 많은 집이라 크기가 다른 여러 방을 비롯해 다양한 공간들이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이층으로 올라가면 바로 거실과 부엌이 있었는데 그 옆으로 천장이 없는 파티오가 있었다. 스페인어로 파티오는 건물 한가운데를 뚫어 놓은 중정 혹은 건물 안에 있는 천장이 없는 안뜰을 의미한다. 이 집에는 천장이 없는 집 안 베란다와 같은 공간이 있었다.


이층의 공공장소를 제외한 나머지 세 개 층에는 방과 화장실이 있었는데 크고 작은방이 여덟 개나 있다 보니 가족, 커플, 친구 혹은 나처럼 혼자 여행하는 사람 등등 많은 사람들이 여러 조합으로 숙소에서 지냈다. 한 숙소에서 열흘을 지내다 보니 독일, 미국,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등등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공공장소인 거실과 부엌 옆에 있는 파티오는 숙소를 오가면서 접근하기 좋았고 뜨겁게 햇볕이 내리쬐는 루프탑과 달리 시원한 그늘이 있으면서도 중정을 통해 신선한 공기와 적당한 햇빛이 들어와 시간을 보내기에 완벽했다. 식사시간, 커피 한잔할 때 그리고 술 한잔할 때 숙소 대부분의 사람들이 파티오에 모였고 자연스럽게 말을 섞게 되었다.






올라, 아임 아델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은 내 한국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라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다른 이름을 사용해왔다. 하지만 내가 직접 선택한 이름으로 나 자신을 소개할 때면 엄마 아빠가 지어주신 진짜 내 이름이 무엇인지 사람들은 나에게 되물었다.


대학에서 처음 스페인어 수업을 들었을 때 교수님은 우리에게 스페인어 이름을 하나씩 고르라고 하셨다. 그때쯤 세례를 받은 친구의 세례명이었던 애들레이드 Adelaide를 처음 듣고 예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교수님이 칠판에 적으신 여러 이름들 중 비슷한 아델리나 Adelina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다. 스페인어 이름을 부르는 과 특성 때문에 대학시절 내내 아델리나였고 외국에 나가면 내 이름을 어려워하는 다른 나라 친구들을 위해 미국에서나 호주에서도 아델리나 라는 이름을 썼다.


그렇게 십 년 가까이 쓰던 이름을 스페인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바꿨는데 나와 스페인어를 연습해 주었던 곤살레스가 아델리나 라는 이름이 너무 길고 오래된 느낌이라며 간편하게 아델 Adele로 부르는 걸 제안했기 때문이다. 스페인 여행을 시작하면서 아델이라는 이름을 사용했고 바르셀로나에서 지낸 5년 동안 이 이름을 사용한 덕분에 지금은 다른 이름인 아델로 더 많이 불리고 있다.






나는 대한민국 사람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만나는 사람들 모두가 대한민국이 어디에 있는지 알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나를 북한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건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나에게는 코리아가 곧 대한민국이었는데 그들에게는 남과 북으로 나눠져 있었다.


누구와 대화하든 이 주제는 거의 같은 방향으로 흘러갔는데 내가 남한에서 온 게 명확해지면 그다음엔 북한에 대해 물어왔다. 남한은 민주주의 국가이며 북한의 공산주의로 인한 인권문제를 비롯해 남한이 왜 공산주의를 용납할 수 없는지 등등 이념까지 설명해 주어야 했다.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받다 보니 전에 했던 말을 그대로 설명해 주었고 가끔은 같은 자리에 있던 친구들이 나를 대신해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다. 유럽의 여러 친구들과 민주주의를 왜 지켜야 하는지와 같은 주제들로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시아에 아주 조금만 더 관심이 있다면 내가 북한 사람인지 남한 사람인지를 묻지 않았겠다 생각했지만 유럽 사람들 중에서 그런 사람들은 극 소수였다. 일본과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는 그들에게 미지의 세계였다.


매일 대한민국과 북한에 대해 설명해야 했던 어느 날 미국에서 온 여자애들 두 명이 숙소에 새로 들어왔다. 캘리포니아에서 온 아이들은 한국 친구들이 많다며 나를 너무 반가워해주었고 그런 아이들이 나도 너무 반가웠다. 한국 친구들과 한식당도 자주 가는데 매운 음식들을 좋아한다며 나에게 자랑처럼 한국 음식 이름을 늘어놓고 휴대폰 플레이 리스트에 있는 한국 노래들을 틀어주었다. 금발머리 애들이랑 영어로 얘기하는데도 한국을 알아주는 아이들이 너무 반가워 한국 사람을 만난 것처럼 신이 나고 정이 갔다.






파티오, 그리운 공간



외국에 나가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고 내 나라를 몰라주는 아이들에게 서운할 때도 있었지만 파티오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 친절하고 유쾌했다. 혼자 하는 여행이었지만 말라가의 파티오에서는 모두가 친구였다.


하루 종일 혼자 다니다가도 숙소에 들어가면 다 같이 모여 하루 종일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서로 다녀온 곳들을 추천해 주고 새로운 장소들을 알아보며 여행 계획도 같이 세웠다. 모두가 휴가를 온 만큼 파티오에는 매일 맥주와 와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모두가 예의와 규칙을 지키며 마셨다. 자러 가기 전 각자 좋아하는 음악을 번갈아 틀으며 즐겁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후에도 혼자 여행을 하다가 외로울 때면 말라가의 파티오를 떠올릴 정도로 따뜻하고 행복한 곳이었다.











스페인 여행일기


스페인행 비행기 표를 먼저 산 후 한국에서의 회사 생활을 정리했다. 스페인 말라가를 시작으로 모로코와 포르투갈을 거쳐 이베리아반도를 100일 동안 여행하면서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만났다. 낯선 곳에서 홀로 보낸 시간은 나 자신을 조금 더 알아가는 기회가 되었고 처음으로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해주었다. 내 인생에서 다시는 없을 최고의 여행이었다.


스페인 여행일기에서 그 여행의 추억을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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