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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케터 아델 Jan 17. 2021

시드니 캐리지웍스,

12월 여름 여행 시드니 한 달 살기: 닉 케이브 UNTIL 전시


캐리지웍스 Carriageworks


"캐리지웍스에서 새로운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 뉴타운을 소개해주기 위해서 시간을 내준 친구와 같이 킹스트리트를 걷고 있었는데 문득 뭔가 떠올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캐리지웍스에 가자고 했다.




캐리지웍스 Carriageworks

Mon to Sun 10am-6pm

Farmers Market: Every Saturday 8am-1pm

245 Wilson St. Eveleigh, Sydney, Australia

입장료 무료 *특별 전시 및 공연 제외



레드펀 Redfurn 역과 맥도날드타운 Macdonaldtown 역 중간쯤에 있는 이블레이 Eveleigh 지역은 19세기 대표적인 산업 지역이었다고 한다. 1880년대에 지어진 캐리지 Carriage에는 매일 수십 대의 화물운송 열차가 드나들었고 기차의 객차를 만들고 수리하는 워크숍과 대장장이들의 공방도 있었다. 하지만 산업이 발달하면서 생산성이 줄어든 이곳은 1970년대부터 비생산적인 낡은 건물이 되었고, 결국 1988년도에 문을 닫았다.


2002년 뉴사우스웨일스의 문화부 NSW Ministry for the Arts에서 이곳을 매입했고 2007년 호주에서 가장 큰 복합 문화공간인 캐리지웍스를 오픈했다. 19세기에 지어진 건물을 잘 활용한 이곳은 오픈한 다음 해에 호주의 건축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빛바랜 붉은 벽돌로 쌓인 건물 안에는 기차가 들어오던 레일과 녹슨 기둥처럼 낡고 투박한 예전 모습이 거의 그대로 남아있었다. 예술작품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곳을 전시와 공연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닉 케이브 Nick Cave, UNTIL


내가 캐리지웍스를 찾았을 때에는 닉 케이브의 언틸 UNTIL이라는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미국 미주리주 출신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그는 '천국에도 인종차별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갖게 되었고 이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시는 인종 사이의 관계, 성 역할에 대한 논의와 총기 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인테리어 숍에서 봤던 빙빙 돌아가는 모빌, 누군가의 잡동사니 그리고 팔찌를 만들 때나 쓰일 것 같은 비즈들로 묵직한 주제들을 눈을 즐겁게 하는 축제로 풀어냈다.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온전히 이해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캐리지웍스의 거대한 공간을 채운 그의 작품이 나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The Kinetic Spinner


캐리지웍스에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드넓은 전시장이 바람에 움직이는 모빌로 가득했다. 수만 가지의 색도 모양도 다른 모빌들이 계속해서 돌면서 캐리지웍스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정원의 한 구석에 걸어두는 평범한 모빌 사이로 총과 총알 그림으로 만들어진 모빌이 섞여있었다.


작은 바람에도 쉬지 않고 돌아가면서 예쁜 모양을 만들어내고 빛을 반사하는 모빌들이 빼곡히 설치되어 있는 공간은 아주 환상적이었다. 바라보고 있으면 어질어질하면서 반짝이는 빛에 몽환적인 상태가 되었는데 모빌이 돌아가는 모습에 빠져 멍하니 보고 있다가 총과 총알의 모습이 눈에 들어올 때면 누군가가 놀라게 한 것처럼 눈이 번쩍 뜨였다.


아름다운 모빌들 사이에서 마치 그들과 같은 것처럼 숨겨있지만 폭력적인 그 물건의 본질을 아는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Crystal Cloudscape


크리스털 클라우드스케이프는 샹들리에와 수십만 개의 크리스털이 거대한 구름 형태로 만들어져 전시장 한가운데에 모두를 압도하며 위치하고 있다. 크리스털로 반짝이는 이 작품은 구름처럼 공중에 떠있기 때문에 구름 위를 보기 위해서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지상에서 구름 위까지 안내해주는 사다리는 총 4개가 설치되어 있다.


구름 위는 셀 수 없이 많은 물건들을 브리콜라주 (도구를 닥치는 대로 써서 만든 것[만들기] 형태로 모아져 있었다. 질서 없이 마구 쌓여있는 잡동사니들은 닉 케이브가 십 년 넘게 수집한 인종차별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물건들이다. 금박을 입힌 돼지, 도자기로 만든 새 모형, 크리스마스 장식, 나뭇가지 모양의 촛대와 잔디 조명으로 쓰는 흑인 인형까지 있다.


인종차별을 나타내는 물건들은 쓰레기통에 던져진 듯 마구 쌓여 있었다. 구름 너머로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 같았다.







Flow / Blow


키네틱 스피너와 크리스털 클라우드스케이프를 지나 캐리지웍스 끝 전시실에 들어왔다. 멀리서부터 강풍기 소리가 들려왔는데 건물 안으로 무언가가 나풀거리고 있었다. 파티할 때 쓰는 반짝이 수술에 앞면에는 Flow, 뒷면에는 Blow가 쓰여있었는데 그 사이에서 강풍기가 쉬지 않고 수술을 춤추게 했다. 치어리더가 응원할 때 흔드는 수술 같기도 해서 기분이 들뜨면서 미소가 지어졌다.


Flow/Blow 앞에는 거대한 작품이 하나 더 남아있었다.






Beadded Cliff Wall


신발끈과 플라스틱 비즈 그리고 산업 화물용 그물로 짜인 이 작품은 벽과 천장에 걸려있었는데 바닥까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알록달록 다양한 색깔에 귀여운 그림과 글씨가 있어 건물 벽에 그려진 그라피티를 보는 것 같았다. 벽과 절벽 사이의 좁은 길을 따라가면 끝에 파워 POWER라는 글자가 크게 쓰여있었다. 비즈로 예쁘게 엮은 이 단어는 닉 케이브가 기차를 타고 가다가 창으로 보았던 선동 메시지인 'Power to the people'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19세기에 지어진 낡은 건물을 활용한 캐리지웍스도, 인종차별과 폭력을 다뤘지만 밝고 예쁜 작품들로 희망을 준 닉 케이브의 전시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캐리지웍스를 떠나면서 기분이 너무 좋았는데 이런 공간을 소개해준 친구에게 데려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하고 나서야 흥분된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캐리지웍스에서 전시를 본 것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해진 하루였다.











12월 여름 여행

싱가포르 & 시드니 한 달 살기


바르셀로나의 축축한 겨울이 유난히 싫었던 그 해 12월, 뜨거운 태양을 즐길 수 있는 시드니에서 한 달 살기를 했다. 바르셀로나에서 비행기로 21시간이 걸리는 시드니를 가는 길에 싱가포르에서 잠시 쉬어갔다. 시드니에서는 가장 힙한 동네인 뉴타운의 에어비엔비에서 한 달을 머물면서 시드니와 그 주변을 여행했다. 시드니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되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고 그들 덕분에 시드니와 호주를 10년 전에 여행했을 때 보다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머리와 마음이 같이 리프레시되었던 12월의 여름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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