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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케터 아델 Jan 24. 2021

시드니 피터와 로잔나의 식탁 비건과 베지테리언의 집 밥

12월 여름 여행 시드니 한 달 살기: 비건, 베지테리안, 채식 식단

피터와 로잔나의 식탁


피터와 로잔나의 집 거실 한가운데에는 최대 성인 열 명이 앉을 수 있는 큰 식탁이 놓여있다. 로잔나는 아침에 출근하기 전 식탁에 앉아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신문을 읽었고 피터는 매일 저녁 직접 만든 요리들을 식탁에 올려놓았다. 평소 두 분이 사용하기에 거대한 이 식탁은 주말이 되면 두 분의 지인들이 찾아와 채워주었다.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 동안에는 매일 같이 이웃, 친구, 동료, 가족들이 쉬지 않고 식탁에 가득 앉아계셨다. 현관 - 거실 - 부엌 순서로 모든 공간을 지나야 내 방이 나왔는데 내가 주변을 지날 때면 자주 자리에 초대해 주셨다. 피터와 로잔나의 지인분들도 나를 항상 반겨주신 덕분에 어색하지 않게 자리에 낄 수 있었고 자주 오시는 분들하고는 밖에서도 따로 만날 만큼 친해졌다.


피터와 로잔나는 바레인과 캄보디아를 오가며 작가와 운동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며 살아온 분들이셨다. 여성, 이민자, 저소득 계층과 같은 소수와 환경보호를 위해 일하는 두 분의 지인들도 비슷한 직업을 갖고 계셨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권 운동가부터 90년대에 베트남에서 영어를 가르치셨던 분, 미술관의 작품 설명을 쓰는 작가분, 전 세계의 사회문제를 찾아내어 수치화하는 리서치 전문가와 사진작가, 유네스코에서 문화재를 선정하는 일을 하셨던 분까지 예전에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분야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로잔나는 호주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인권단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 일하는 분들과 식사를 자주 하게 되면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제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생계를 위해 성매매를 할 수밖에 없는 캄보디아 여성들, 태국의 작은 마을을 위협하는 거대 인도 기업, 호주 난민캠프에서 태어나 서른이 넘도록 주민등록을 하지 못한 남자와 같은 사람들의 사연과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 대화의 주제였다.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고 그런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하는 그분들이 존경스러웠다. 로잔나와 피터의 식탁에서 나오는 엄청난 스펙트럼의 이야기들은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아온 시간을 반성하게 해 주었다.






피터의 부엌


이 집에서 부엌은 피터의 차지였다. 홈 파티를 할 때면 모두들 피터의 시그니처 요리를 기대할 정도로 피터는 지인들 사이에서 아주 실력 좋은 요리사였다. 요리를 좋아하는 피터는 매일 장 봐오는 신선한 재료들로 저녁을 준비했다. 부엌 바로 옆에 있는 방에 머문 덕분에 한 달 동안 피터의 요리를 자주 맛볼 수 있었다.


요리사인 아버지의 능력을 물려받은 피터는 본인의 뿌리인 그리스와 로잔나의 뿌리인 이탈리아의 지중해 요리를 즐겨했다.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경험한 다양한 향신료와 낯선 재료들을 조화롭게 사용해서 매번 새로운 맛을 만들어냈다. 와인 한 병 혹은 설거지 한 번으로 피터의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을 수 있던 건 정말 행운이었다.


여러 가지 야채와 재료를 큰 볼에 썰어 넣고 어울리는 소스를 휘리릭 뿌려낸 피터의 샐러드는 만들기에는 아주 간편해 보였지만 같은 재료로도 같은 맛을 낼 수 없는 내공이 가득한 요리였다. 시드니에 뜨거운 여름이 찾아오기 전 으슬으슬 추웠던 날에는 야채 육수로 맛을 낸 수프를 만들어 주셨는데 감칠맛 가득 뜨끈한 수프 덕분에 따뜻한 저녁을 보낼 수 있었다. 고기 한 점 없이도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요리들이었다.


로잔나와 피터는 비건과 베지테리언이었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과 지구를 아끼는 마음으로 비건과 베지테리언 식단을 선택한 로잔나와 피터의 식탁에 자주 올라오는 재료가 있었다. 콩으로 만든 템페와 쫄깃한 치즈 할루미였다.






비건과 베지테리언의 식재료 템페와 할루미


시드니에서는 다양한 문화의 식재료를 비롯해서 비건과 베지테리언을 위한 제품들까지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피터와 로잔나 덕분에 비건과 베지테리언 식단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듣고 직접 경험도 해볼 수 있었다. 함께 맛보았던 식재료들 중에서 템페와 할루미는 식감도 맛도 가장 마음에 드는 재료였다.



템페 / Témpé / Tempeh

인도네시아의 콩을 발효 식힌 식품으로 모양은 청국장을 뭉쳐놓은 모양과 비슷하지만 냄새가 나지 않고 조금 단단한 두부의 식감을 갖고 있다.

위키피디아



발효가 된 콩을 뭉쳐놓은 템페는 콩의 퍼석한 식감이 아닌 쫄깃한 두부를 씹는 듯한 식감을 갖고 있다. 한 입 베어 물면 고소한 맛이 입안에 퍼지는데 그 맛이 콩과 버섯의 고소함을 섞어 놓은 듯했다. 샐러드, 파스타, 수프 등등 모든 요리에 어울렸는데 피터가 짭짤하게 야채와 볶아주었을 때 가장 맛있게 먹었다.



할루미 / χαλλούμι / Halloumi

할루미(그리스어: χαλλούμι), 헬림(터키어: hellim), 또는 할룸(아랍어: حلوم)은 키프로스의 치즈이다. 주로 양젖과 염소젖을 섞어 만들지만, 가끔 소젖을 함께 넣어 만들기도 한다. 일반 치즈에 비해 약간 단단하고 녹는점이 높아 주로 구워 먹는다.

위키피디아



단단하고 짭조름한 할루미는 앞뒤로 구워 먹었을 때 가장 맛있었다. 살짝 구워주면 말랑해지면서 고소한 치즈의 풍미가 확 살아나 할루미 하나만 먹어줘도 너무 맛있었다. 내가 맛보았던 최고의 할루미 요리는 할루미를 양파, 파프리카, 애호박, 방울토마토와 같이 꼬치에 꽂아 굽고 간단한 소스를 뿌린 피터의 할루미 꼬치였다. 비법 소스 덕분에 더 맛있어진 꼬치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때 피터의 지인들이 모두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던 요리였다.






따뜻한 식탁


피터와 로잔나의 식탁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무궁무진한 이야기와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따뜻한 식탁이었다. 이 식탁에서 만난 두 분과 지인들로 인해 잠깐이나마 내 시야를 넓힐 수 있었고 내가 지내온 시간들을 새로운 관점으로 돌아볼 수 있었다. 비건과 베지테리언 식단을 제대로 경험해 본 것도 나에게는 흥미로운 사건이었다.


이 따뜻한 식탁에서 사람들과 음식을 나눠 먹을 때마다 언젠가는 나도 이런 멋진 식탁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12월 여름 여행

싱가포르 & 시드니 한 달 살기


바르셀로나의 축축한 겨울이 유난히 싫었던 그 해 12월, 뜨거운 태양을 즐길 수 있는 시드니에서 한 달 살기를 했다. 바르셀로나에서 비행기로 21시간이 걸리는 시드니를 가는 길에 싱가포르에서 잠시 쉬어갔다. 시드니에서는 가장 힙한 동네인 뉴타운의 에어비엔비에서 한 달을 머물면서 시드니와 그 주변을 여행했다. 시드니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되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고 그들 덕분에 시드니와 호주를 10년 전에 여행했을 때 보다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머리와 마음이 같이 리프레시되었던 12월의 여름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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