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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케터 아델 Jan 25. 2021

그라나다 알바아신 지구 즐기기 골목 산책

스페인 여행 일기: 그라나다 알바이신 지구, 골목 투어

알바이신 지구



그라나다에서 머물렀던 마리나의 집은 알바이신 지구 한가운데에 위치해있었다. 로마인들이 떠나면서 버려졌던 땅에 1010년, 이슬람 왕국이 정착하면서부터 알바이신 지구는 무어인들의 마을로 형성되었다. 그라나다를 지키는 요새인 알카사바와 왕국의 궁전이었던 알람브라는 다로 강을 사이에 두고 알바이신 지구와 마주하고 있다.


1492년 무어인의 마지막 왕이었던 무함마드 12세가 항복을 하면서 가톨릭이 그라나다를 차지한 이후에도 알바이신은 무어인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남아있었다. 가톨릭의 레콘키스타가 완성되고 나서 많은 무어인들이 고국인 아프리카로 돌아갔지만 이미 여러 세대를 거쳐 그라나다에 뿌리를 내린 사람들은 알바이신을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베리아 반도 전체를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려는 스페인의 박해에도 무이인들은 알바이신을 지켰다.



이베리아반도 내에서 무어인의 마지막 왕국이었고 이후에도 그들의 자손들이 남아 그라나다에는 이슬람 문화가 깊고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골목길 산책



마주 오는 사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될 정도로 좁은 골목, 색을 덧입혀도 낡은 모습을 감출 수 없는 건물, 울퉁불퉁 지압판처럼 자갈이 박혀있는 바닥까지 알바이신 지구는 오래된 것을 좋아하는 나 같은 여행자에게는 완벽한 곳이었다.


그라나다에 도착한 날 저녁 마리나와 함께 알바이신 지구의 골목을 처음 걸었다. 그라나다 시내를 둘러보고 알바이신 입구에서부터 전망대까지 올라갔다. 그라나다의 더운 공기는 알바이신 지구의 좁은 골목에 더 쌓이는 듯했다. 골목길에 박혀있는 자갈 때문에 발바닥이 아픈 데다가 오르막길을 걷느라 더 힘들었다. 하지만 좁은 골목을 비추는 가로등과 담장 너머 선물처럼 피어난 꽃이 너무 예뻐 최대한 많이 알바이신 지구의 골목을 걷겠다고 다짐했다.


그라나다에 머무는 짧은 2박 3일 동안 이틀 연속으로 마리나는 나와 함께 알바이신 지구를 걸어주었다. 크게 위험하지는 않지만 좁고 후미진 골목이 많기 때문에 안전한 길을 잘 아는 사람과 다녀야 한다며 나를 위해 시간을 내주었다. 덕분에 나는 늦은 밤까지 여유롭게 알바이신 지구에서 이 낭만을 즐길 수 있었다.


그라나다를 떠나는 날 아침 알바이신 지구를 다시 걸었다. 내가 걱정되었던 마리나는 혹시 모르니 필요한 현금만 조금 챙겨서 나가라고 했다. 아주 좁고 후미진 골목은 피하고 철없는 십 대 들이 보이면 다른 길로 가라고 조언해 주었다. 나를 동생처럼 챙겨주는 마리나 덕분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나갔다. 하지만 고요하게 늘어지는 골목을 걷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하얗게 회칠이 된 집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이 났다. 알바이신 지구에는 계속 걷고 싶게 만드는 장치들이 골목마다 숨어있었다.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좁은 골목을 걷다 보면 아주 답답한 마음이 들었는데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고 생각할 때쯤 광장이 하나씩 나왔다. 크기가 크지 않은 광장이라도 골목보다 넓으면 마음에 안정을 주었다. 담벼락에 걸려있는 꽃이나 벤치 옆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들도 비좁은 골목을 걷는데 위안이 되었다.


해발 700~800m 높이에 있는 알바이신 지구를 걷다가 뒤를 돌아보면 건물들 사이로 그라나다의 모습이 내려다보였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는 게 쉽지도 않았던 데다가 올라갈수록 달라지는 뷰를 보고 싶어 계단 서너 개마다 멈춰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라나다의 열기에 도시가 일렁이는 것 같았다.






낯선 이의 응원



스페인, 모로코, 포르투갈을 여행하는 100일 동안 낯선 사람들로부터 많은 응원을 받았다. 단순히 지중해와 스페인을 보고 시작한 여행이었는데 동양 여자 혼자 낯선 나라를 여행한다는 걸 용기 있는 행동으로 봐주었다. 큰 의미 없이 답답했던 상황을 모면하고자 떠나온 스페인에서 사람들을 내 여행을 멋진 도전으로 생각해 주었다. 


아무것도 아닌 내 결정을 열렬히 지지해주는 것 같아 내가 내딛는 걸음이 매일 뿌듯해졌다.


알바이신 지구에서 한낮의 열기를 받으면서 한참을 걷다가 '물 있어요.'라고 쓰인 간판을 보고 바로 들어갔다. 은으로 만든 수공예 작품들과 액세서리를 파는 곳이었다. 가게를 둘러보고 있는데 주인아저씨가 말을 건넸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어느 나라를 얼마 동안 여행할 계획인지를 물어보셨다. 내 대답을 들은 아저씨는 큰 미소와 함께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혼자 여행하는 용기가 정말 멋져요! 여행하는 동안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활짝 열어요. 어디서든 좋은 사람들을 만나 멋진 경험을 많이 하기를 바랄게요."


반짝이는 눈으로 해주신 이야기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더 멀고 낯선 모로코 여행을 앞두고 걱정이 많았는데 아저씨의 따뜻한 응원을 듣고 마음이 놓였다.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활짝 연다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믿음이 내 안에 생겼다.


아저씨와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하고 나서야 진열되어 있는 예쁜 팔찌가 눈에 들어왔다. 그라나다에서 나를 언니처럼 챙겨준 마리나와 커플팔찌로 두 개를 골랐다. 이 팔찌를 보며 그라나다를 오래 기억해 달라며 아저씨가 할인도 해주셨다. 아저씨의 멋진 응원 덕분에 여전히 알바이신 골목에 있는 "물 있어요. Tenemos Agua" 사인과 가게에 들어가던 순간이 기억에 선명하다.


특별한 유적이나 눈에 띌만한 관광지가 있는 곳은 아니지만 알바이신 지구의 비좁을 골목을 걷는 건 그라나다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이다. 낮과 밤의 알바이신 지구를 걸으며 그라나다에 깊숙이 들어가 보자.













스페인 여행일기


스페인행 비행기 표를 먼저 산 후 한국에서의 회사 생활을 정리했다. 스페인 말라가를 시작으로 모로코와 포르투갈을 거쳐 이베리아반도를 100일 동안 여행하면서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만났다. 낯선 곳에서 홀로 보낸 시간은 나 자신을 조금 더 알아가는 기회가 되었고 처음으로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해 주었다. 내 인생에서 다시는 없을 최고의 여행이었다.


스페인 여행일기에서 그 여행의 추억을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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