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 일기: 그라나다 알람브라 관람 팁
알람브라의 또 다른 볼거리
나사리 궁전에서 처음 본 화려하고 섬세한 무어인들의 장식에 한껏 들뜬 내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알람브라에 도착해서 나사리 궁전 입장시간에 맞추기 위해 마음이 급했던 데다가 궁전을 둘러보는 동안 놀라움과 설렘이 반복되면서 내내 긴장하고 있었다. 궁전을 빠져나와 사이프러스 나무가 곧게 뻗어있는 작은 정원을 만나고 나서야 긴장된 마음이 풀어졌다. 동시에 온몸의 기운도 빠져나갔다. 역시나 여행은 체력이다.
지쳐있었지만 생각보다 거대한 규모의 알람브라를 둘러보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다음 장소인 헤네랄리페는 알람브라 성벽을 벗어나 산비탈에 위치해있었다. 나사리 왕조의 휴식 공간이었는데 업무와 휴식을 분리를 위해 걸어서 10~15분 정도 되는 곳에 이 빌라를 만든 듯하다. 나사리 궁전에서부터 헤네랄리페까지 안내가 잘되어 있어 헤매지 않고 찾을 수 있었다.
헤네랄리페
Generalife
헤네랄리페는 13, 14세기 나사리 왕조의 술탄이었던 무함마드 2, 3세의 통치 기간에 지어졌다. 세로델솔 Cerro del Sol 산기슭 아래 그라나다를 내려다보며 휴식을 취했던 건물과 이슬람 스타일의 정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헤네랄리페의 건물은 스페인 시골에서 볼 수 있는 빌라 형태에 정교하고 화려한 이슬람 장식들을 조금씩 더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랜 세월에 거쳐 아라베스크 문양들을 석회로 층층이 덮어 건물에서 예전 그대로의 장식을 볼 수는 없다.
사실, 헤네랄리페의 하이라이트는 건물 사이사이에 위치한 파티오와 헤네랄리페 입구에 펼쳐진 하르딘이다. 파티오와 하르딘 모두 정원을 의미하지만 스페인에서는 그 의미를 조금 더 세분화하여 건물 안이나 사이에 위치한 정원, 테라스 혹은 중정을 파티오 patio, 건물 밖 뜰이나 정원을 하르딘 jardín이라고 부른다.
헤네랄리페 Generalife라는 이름은 정원을 뜻하는 하르딘 jardín과 이 정원을 설계한 알라리페 Alarife의 이름을 함께 붙인 것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한다. 얼마나 마음에 들었으면 설계자의 이름을 붙여 주었을까? 하늘로 손을 뻗듯이 올라가는 사이프러스 나무를 비롯해 초록빛이 가득한 관목 나무들이 주를 이루고 저마다 다른 색을 피운 꽃들이 자리 잡고 있다.
정원의 주인공, 분수
그러나 나사리 왕조의 정원에서는 분수가 주인공이다. 헤네랄리페의 파티오와 하르딘의 한가운데에는 분수가 있다. 직선으로 솟아나는 사이프러스와 다르게 가는 물줄기들이 곡선을 이루며 떨어진다. 대조되는 느낌으로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분수를 정원의 식물들이 한껏 꾸며주는 것 같았다.
아프리카의 메마른 사막이 주 무대였던 이슬람 무어인들에게 가장 귀한 물을 사용한 분수는 가장 고급스러운 장식 중에 하나라고 한다. 알람브라 궁전은 그라나다 뒤를 받치고 있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에서 끌어온 물을 용수로 활용한다. 더위에 메마른 그라나다에서 가장 생명이 흐르는 곳이다.
내가 헤네랄리페를 찾은 7월 중순은 모든 식물들이 만발하는 시기라 정원 최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햇빛이 쨍쨍한 더운 날씨였지만 싱그러운 나무들과 여기저기서 들리는 분수 소리가 더위를 식혀주었다.
여행 계획의 중요성
알람브라를 찾기 전에 지도를 한번만 봤었더라면 동선이 꼬이지 않게 시간계획을 세웠을거다. 나사리 궁전만 입장시간이 정해진 것이므로 나머지는 동선에 따라 카를로스 5세 궁전 - 나사리 궁전 - 헤네랄리페 순으로 봐야한다. 나사리 궁전 입장시간을 기준으로 앞으로 한 시간, 뒤로 한두 시간 정도 여유를 잡고 계획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아무런 계획없이 무작정 찾아간 나는 알람브라에 입장헤서 나사리 궁전까지 뛰어가야 했고 나사리 궁전에서 바로 이어지는 헤네랄리페를 구경한 다음 다시 한참을 걸어 카를로 5세 궁전으로 돌아와야 했다.
알람브라 관람 계획 팁
1. 그라나다 방문 2~3일, 성수기에는 일주일 전 티켓을 예매한다.
2. 나사리 궁전 방문시간은 가능하면 중간 시간대로 잡는다.
3. 나사리 궁전 입장시간 기준 앞으로 한 시간, 뒤로 한 두시간 정도 여유를 둔다.
4. 건물 위치에 따라 카를로스 5세 - 나사리 궁전 - 헤네랄리페 순으로 본다.
카를로스 5세 궁전
Palacio de Carlos V
나사리 궁전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카를로스 5세의 궁전은 외부는 사각형, 내부는 원형을 갖추고 있는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이다. 63m 넓이와 17m 높이 크기의 이 건물은 아래층에는 거칠게 다듬은 돌을 사용했고 위층에는 직육면체로 다듬은 돌을 사용했다.
1526년 포르투갈의 이사벨과 세비야에서 결혼실을 올린 후 그라나다를 방문한 카를로스 5세는 알람브라에 로마 스타일의 궁전을 짓기를 원했고 그의 뜻에 따라 로마 양식을 사용해 설계했다. 카를로스 5세가 사망할 때까지 이 궁전은 완성되지 못했는데 지붕이 없는 채로 1637년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1923년 재개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이 궁전을 알람브라의 심장부에 짓기 위해 꼬마레스 탑 정면에 있던 나사리 왕조의 겨울궁전을 허물었다. 정복한 민족의 궁전과 사원을 허무는 게 일반적이었던 그때, 가톨릭의 권위를 높이고자 이슬람 양식의 건물을 허물었지만 너무도 아름다웠던 궁전을 볼 수 없는 것에 대해 아직도 많은 논쟁이 있다고 한다.
궁전으로 입장하면 내부도 이층으로 나뉜다. 아래층은 양식 기둥들이 위층은 이오니아식 기둥들이 세워져있다. 궁전 한 가운데에 서보니 거대한 크기가 더욱 와닿았다. 가톨릭의 위엄을 떨치기 위해 욕심만 앞섰다는 게 느껴졌다.
카를로스 5세 궁전은 주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투박한 돌덩어리같이 느껴졌다. 아주 거대한 바위들이 쌓여있다는 것 말고는 감동 포인트가 전혀 없었는데 이런 무식하게 크기만 키운 궁전을 짓기 위해 나사리 왕조의 겨울 궁전을 허물었다니 화가 났다.
게다가 이 어마어마한 궁전의 무게 때문에 나사리 궁전이 기울어지고 있다고 한다. 카를로스가 이 궁전을 짓고 나서는 나중에 알람브라는 보존할 것을 명했지만 겨울 궁전을 허물어버린데다가 남아있는 나사리 궁전까지 위태롭게 만든 카를로스 5세가 좀 원망스러웠다.
여유로운 여행을 꿈꾸며 게으름을 피우다가 제대로 마음졸이며 입장했지만 처음 제대로 만난 이슬람 예술양식에 마음이 풍성해진 시간이었다. 그라나다 다음 여행지였던 모로코에서 알라브라의 작품들이 얼마나 잘 보존되어 있던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스페인 여행일기
스페인행 비행기 표를 먼저 산 후 한국에서의 회사 생활을 정리했다. 스페인 말라가를 시작으로 모로코와 포르투갈을 거쳐 이베리아반도를 100일 동안 여행하면서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만났다. 낯선 곳에서 홀로 보낸 시간은 나 자신을 조금 더 알아가는 기회가 되었고 처음으로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해주었다. 내 인생에서 다시는 없을 최고의 여행이었다.
스페인 여행일기에서 그 여행의 추억을 정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