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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케터 아델 Mar 25. 2021

모로코 여행의 시작 혼돈의 탕헤르 메디나

스페인 여행 일기

새로운 여행의 시작


그라나다에서 출발한 버스가 4시간 뒤 알헤시라스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모로코의 탕헤르로 가기 위해서 먼저 페리 티켓을 사야 했다. 버스 터미널에서 페리 티켓 사무실로 그리고 알헤시라스 항구로 막힘없이 찾아갔다. 이날은 모든 게 순조로웠다. 크고 작은 캐리어 2개를 끌고 처음 와본 알헤시라스의 항구에서 헤매지 않고 티켓을 산 다음, 항구 대기실로 들어와 맥주를 마시며 페리 출발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짝 긴장했던 몸과 마음이 맥주 한 모금으로 풀어지면서 그날 항구까지의 여정을 되돌아보았다. 모든 일을 혼자 잘 해낸 나 자신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누군가에게 ‘나 너무 잘하고 있지 않아?’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혼자 마음속으로 여러 번 되뇔 뿐이었다. 이럴 때면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이 그립기도 했다.


아무튼 순조로운 출발 덕분에 많이 걱정되었던 모로코 여행에 대한 부담감이 조금 누그러졌다. 스페인 알헤시라스에서 출발한 페리는 모로코 탕헤르를 향해 출발했다.






모로코와 아프리카의 관문, 탕헤르


스페인어로는 탕헤르 Tánger, 영어로는 텐지어 Tangier로 불리는 이 도시는 지중해와 대서양이 만나는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스페인의 타리파 Tarifa와 마주하고 있다. 두 도시는 스페인과 모로코뿐만 아니라 유럽과 아프리카의 관문 역할을 하는 곳이다. 탕헤르는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스페인과 프랑스가 분할하기도 했으며 모로코의 외교 중심지이자 자유 무역항, 국제도시로서 번영을 누리기도 했다. 1956년 모로코의 독립과 함께 반환되어 현재는 공업도시이자 무역도시로 유럽과의 활발한 교역을 하며 더욱 발전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출발한 알헤시라스 항구에서 탕헤르까지는 페리로 1시간 15분 정도 소요된다. 페리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듯한 모로코 가족들이 많았다. 맑은 날씨와 잔잔한 파도에 가는 길이 평화로웠다. 조용했던 페리가 웅성웅성하기 시작해 구경을 가보니 페리 안에서 입국심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배 한편에 모로코 사람 세명이 앉아 있었는데 그 앞에 줄을 선 후 한 명씩 여권을 보여주면 바로 도장을 쾅쾅 찍어주었다. 항구에 도착하면 진행될 거라 생각했던 입국심사가 페리 안에서 진행되어 의외였지만 시간 절약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입국 심사를 마치자 탕헤르-메드 항구 (Tanger-Med)에 배가 멈췄다.






Taxi!


항구에서 호스텔이 있던 탕헤르의 중심지 메디나 Medina까지는 택시를 타야 했다. 배에서 내리면서 잠깐 이야기를 나눴던 프랑스 커플이 이곳 택시는 바가지를 많이 씌우니 가격을 꼭 흥정하고 택시를 타야 한다고 했다. 유럽 사람들이 이럴 정도면 진짜라는 생각에 긴장되었고 우리는 방향은 다르지만 함께 택시 가격을 알아보기로 하고 항구를 나섰다. 출구 앞에는 택시 몇 대가 서있었고 기사들이 다가와 목적지를 물으며 가격을 외쳤다. 목적지까지 대충의 가격을 생각하고 왔던 프랑스 커플은 아주 고맙게도 나에게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알려주었다. 택시 아저씨에게 불어로 설명해 주고 가격 흥정까지 하고 나서 내 택시를 잡아주었다.


많은 아프리카의 국가들처럼 모로코에서는 모국어인 아랍어 다음으로 프랑스어가 가장 많이 쓰인다고 한다. 친절한 프랑스 커플 덕분에 알맞은 가격에 택시를 탈 수 있었다. 간단한 사칙연산만 할 줄 아는 나는 특히 돈 계산에 정말 취약하다. 모로코에 오면서 통화까지 바뀌어 돈 계산은 포기했는데 이렇게 친절한 사람들을 만날 줄이야.


탕헤르의 중심지인 메디나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지만 오른쪽에 바다를 두고 달리는 바람은 아주 시원했다. 영어도 잘하셨던 택시 기사 아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아주 원만하게 시작된 모로코 여행에 대한 설렘도 커져갔다.






메디나, 입성하다.


항구에서 출발해서 해안을 따라 달린 지 20~30분 정도 후, 해 질 녘이 되어 눈앞에 사람들이 한두 명씩 보이기 시작했다. 탕헤르의 메디나 Medina가 나타났다. 메디나는 아랍어로 마을을 뜻하는데 이슬람 국가에서는 현재 ‘구시가지’라는 의미로 사용된다고 한다. 모로코의 도시마다 오래된 중심지를 메디나라고 부른다.


메디나 입구에서부터 사람들이 가득했다. 내가 모로코를 여행하던 시기는 라마단 기간이었는데 이 기간 동안에는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 식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많다고 기사 아저씨가 설명해 주셨다. 메디나 중심에 있는 호스텔에 가까이 가기 위해 택시는 사람들이 가득한 거리를 비집고 들어갔다.


거리를 걷던 사람들, 택시 양쪽의 작은 가게에서 장을 보던 사람들, 모두 남자들이었는데 이들이 택시 안의 나에게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창문을 두드리며 'Hotel! Restaurant!'을 외쳤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택시를 두드리며 같은 말을 외쳤다.


택시를 아주 세게 두드린 건 아니었지만 여러 명이 동시에 택시를 두드리고 있었고 그 안에 있던 나는 당황스러워 머리가 하얘졌다. 택시 아저씨가 저 사람들이 돈이 필요해서 그렇지 나쁜 짓은 하지 않는다며 나를 달래주셨다. 그렇게 호스텔에 거의 다 가까워졌을 때쯤 어떤 사람이 내가 앉아있던 뒷좌석 문 손잡이를 잡아당겼고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는 모습에 너무 놀란 나는 소리를 질렀다.


백미러로 보고 계시던 아저씨가 문이 열리자마자 아주 무섭게 소리를 치며 문을 연 사람을 혼내셨고 그 사람은 다행히도 바로 문을 닫았다. 너무 놀랐던 나는 택시 문이 열렸던 모습과 아저씨가 소리친 목소리가 아직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살면서 그렇게 놀라 본 적이 몇 번 없는 것 같다.


아저씨와 함께 크게 심호흡을 하고 앞으로 더 나아갔다.


아주 좁은 골목 앞에 택시를 세운 아저씨는 여기서 호스텔까지 걸어서 금방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나를 혼자 보낼 수 없다며 호스텔에 직접 전화를 해주셨다. 5분 뒤에 리셉션 직원이 나를 호스텔로 안내하기 위해 택시로 온다며 너무 친절하게 나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셨다. 택시 안에 동양 여자가 앉아 있어서 이목을 더 끌게 된 거 같다며 여행하면서 위험한 일은 없을 거라고 호스텔 직원이 올 때까지 나를 달래주셨다.


택시 아저씨가 여행하는 동안에는 괜찮을 거라고 한참을 얘기했지만 놀란 마음이 쉽게 진정되지는 않았다. 모로코 여행 내내 이어지기를 계속 바랐던 순조로웠던 흐름이 메디나에 들어선 순간 깨진 것 같았다.


놀란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채로 호스텔에 도착했다.











스페인 여행일기


스페인행 비행기 표를 먼저 산 후 한국에서의 회사 생활을 정리했다. 스페인 말라가를 시작으로 모로코와 포르투갈을 거쳐 이베리아 반도를 100일 동안 여행하면서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만났다. 낯선 곳에서 홀로 보낸 시간은 나 자신을 조금 더 알아가는 기회가 되었고 처음으로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해 주었다. 내 인생에서 다시는 없을 최고의 여행이었다.


스페인 여행일기에서 그 여행의 추억을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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