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 일기: 모로코 여행, 탕헤르 - 마라케시 여정
모로코 여행 루트
사진 순서대로 마라케시 - 에싸우이라 - 사하라 - 페즈 -쉐프샤우엔
일단 다음 목적지를 정하고 나서는 모든 게 수월해졌다. 먼저 마라케시 숙소를 에어비엔비에서 예약한 후 탕헤르에서 마라케시로 가는 기차를 확인했다. 그리고 토마스가 추천해 준 도시들 중에서 가고 싶은 도시들을 정해 2주 동안 모로코 여행 루트까지 대략적으로 계획했다. 밤새 고민해서 계획한 루트는 마라케시 - 에싸우이라 - 사하라 - 페즈 -쉐프샤우엔 이었다. 이 도시들을 여행하고 다시 탕헤르로 돌아와 스페인으로 가는 것까지가 모로코 여행의 완전한 계획이었다.
마라케시로 가는 기차
모로코 전체 국토의 서쪽 중간쯤에 위치한 마라케시는 탕헤르에서 550km 정도 떨어진 도시이다. 탕헤르에서 마라케시까지 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Tanger to Marrakech
탕헤르에서 마라케시까지 이동 방법 및 소요시간
비행기: 1시간 40분
버스: 8시간 15분
기차: 8시간 45분
자가용:5시간 40분
네 가지 옵션 중에서 나에게 주어진 건 버스와 기차 두 개뿐이었다. 호스텔에서 기차역까지 가깝기도 했고 버스보다는 기차가 공간이 넓을 거란 생각에 기차를 타기로 했다.
탕헤르에서 마라케시까지 기차로는 9시간 가까이 소요되는데 한 번에 갈 수 있는 기차가 없어 Casa Voyageurs 혹은 Sidi Kacem 역에서 환승을 해야 한다. 탕헤르에서 출발한 기차는 5시간 정도 후 Casa Voyageurs 역에 도착했고 여기서 다시 4시간 이상을 더 달려야 마라케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가 선택한 기차는 11:35에 출발해서 20:14분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1등석 기차여행
기차 시간에 맞춰 체크아웃을 했다. 호스텔에서 기차역까지 걸어갈만한 거리였지만 전날의 기억으로 엄두가 나지 않은 나는 택시를 불러서 갔다. 호스텔에서 미리 흥정해 준 덕분에 알맞은 가격으로 역까지 갈 수 있었다. 밤새 여행 루트를 고민하느라 잠을 거의 못 잤는데 생각했던 것만큼 피곤하지 않았다. 맑은 날씨와 어디론가 떠난다는 기분 좋은 설렘 때문인 것 같았다. 마라케시는 오래전부터 꿈꿔오면서도 아프리카에 있어 가지 못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기대가 더 컸다.
역에 도착해 마라케시행 티켓을 샀다. 9시간 이상을 가는 길이라 편하게 가고 싶은 마음에 75유로가 조금 넘는 310 디르함을 주고 1등석 티켓을 샀다. 꽤 비싼 가격이었지만 탕헤르에서 놀란 마음도 진정하고 마라케시까지 기분 좋게 가고 싶어 과감히 계산했다.
하지만 이런 나를 비웃듯이 너무 가혹한 여정이었다. 1등석은 4인실 방으로 되어 있었는데 에어컨이 거의 안 나왔다. 아예 안 나왔다고 하는 게 맞을 듯하다. 40도를 육박하는 날씨에 창문을 열 수 없는 기차에서 작은방에 갇혀있던 우리 4명은 숨 막히는 5시간을 보냈다.
그나마 운이 좋아 에어컨 옆에 앉은 나는 어쩌다 아주아주 조금씩 나오는 시원한 바람을 살짝 쐬어볼 수 있었지만 내 옆자리와 그 앞에 마주 앉은 프랑스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은 정말 힘들어하셨다. 같이 부채질도 해보고 물을 얼굴과 목에 적셔보기도 했지만 땀을 흘리며 기운을 뺄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 땀도 많이 흘리고 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게는 너무도 힘든 시간이었다. 챙겨간 책에 집중할 수도 없었고 바깥 풍경을 마음껏 즐길 수도 없었기에 1분이라도 빨리 이 여정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
너무도 힘들었던 5시간이 지나고 환승을 하기 위해 Casa Voyageurs 역에 내렸다. 태양은 뜨거웠지만 종종 바람이 불어와서 야외 플랫폼에서 기다리는 게 사우나 같았던 기차 안에 있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4시간을 가야 하는 다음 기차도 사우나 같을까 봐 겁이 났는데 정말 다행히도 환승한 기차는 에어컨이 아주 빵빵하게 나왔다. 비로소 창밖의 풍경이 보이고 책에 집중할 수 있었다.
마라케시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같은 칸에 앉은 아저씨 두 분 중 한 분이 대추야자를 권하며 마라케시에 무슨 일로 왔는지 물어보셨다. 두 분은 출장을 다녀오는 길이라고 하셨는데 여행을 하러 왔다는 나에게 마라케시에서 꼭 가봐야 하는 곳들과 주의해야 할 점들을 꼼꼼히 알려주셨다. 아주 잠깐 나눈 대화였지만 혼자 온 나를 많이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감사했다.
창밖으로 해가 지고 나서 밖에 어두워졌을 때 마라케시에 도착했다.
에어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기차 때문에 5시간 동안 짜증이 머리끝까지 났었지만 이후 4시간 동안 시원한 칸에서 편안하게 마라케시에 도착했고 좋은 분들로부터 여러 팁들과 응원도 받아 결국 기분 좋은 여정이 되었다.
사람 참 단순하다 싶으면서도 길고 긴 여정의 마지막이 좋게 마무리되어 다행이다 싶었다.
이렇게 또 에피소드를 하나 얻고 마라케시에 도착했다. 해가 다 지고 어두운 저녁에 도착한 마라케시 역의 모습을 보자 설렘보다는 여행을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긴장감을 가득 안고 기차에서 내려 에어비엔비 숙소에서 보내주기로 한 Yassina를 찾았다.
스페인 여행일기
스페인행 비행기 표를 먼저 산 후 한국에서의 회사 생활을 정리했다. 스페인 말라가를 시작으로 모로코와 포르투갈을 거쳐 이베리아 반도를 100일 동안 여행하면서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만났다. 낯선 곳에서 홀로 보낸 시간은 나 자신을 조금 더 알아가는 기회가 되었고 처음으로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해 주었다. 내 인생에서 다시는 없을 최고의 여행이었다.
스페인 여행일기에서 그 여행의 추억을 정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