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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찐년 김짜이 Mar 30. 2021

조금만 더 일찍
여행을 시작했더라면

아, 저요? 서른 하나인데요.


유감스럽게도 또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았다. 어제 묵은 게스트하우스에서도 그랬는데, 오늘도 그럴 줄이야. 가만히 모여 앉은 친구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생김새는 다들 달랐지만 생기 넘치고 파릇해 보이는 게, 그들의 말처럼 영락없이 20대 초중반의 얼굴이었다. 어, 이거 내가 있어도 되는 자린가? 눈치 없이 앉아 있는 것 같아서 입안이 까끌거렸다. 하지만 곧 모든 게 괜찮아졌다. 모두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고, 그렇다보니 이야기는 끝도 없이 흘러나왔다. 뺨이 아플 만큼 웃었다.


소등 시간이 가깝도록 재잘거리다가 방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또 그들과의 차이가 느껴졌다. 도미토리로 우르르 몰려 들어가는 그들과는 다르게 나는 혼자서 쓸 수 있는 싱글룸을 이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에는 깔끔한 더블 침대, 작지만 쓸 만한 테이블이 있고 그다지 넓지는 않지만 개별 욕실까지 완비되어 있었다. 아늑하니 혼자 쓰기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20대 초반에 여행을 왔더라면 어땠을까? 그 때는 재정적인 여유가 많지 않았을테니 분명 도미토리를 이용했을 것이다. 별 거 없는 여행 짐 중 무언가가 없어지지 않을까 약간은 초조해하며, 순서를 기다려 몸을 씻고 좁은 침대에 몸을 뉘였겠지. 2층 침대가 배정되면 얇은 사다리를 불안해하며, 발바닥에 배기는 통증을 느껴가며 간신히 올라가 눈을 붙였을 것이다. 눈을 감고 나서도 한참은 코를 골아 주변을 불편하게 하지 않을까, 내일 타야 할 버스 시간은 몇 시였지, 온갖 생각에 잠을 설쳤을 것이다. 그래, 안정적이지는 않다. 지금의 상황이 훨씬……. 갑자기 언젠가 아는 언니가 했던 말들이 생각났다.



페루에 가서 너무너무 좋은데 말야,
동시에 좀 심드렁하기도 한 거야.
그 기분 알아?
와서 좋긴 한데……. 딱 여기서 끝나는 감회.
그러고 있다가 20대 초반 애들이랑 동행을 하게 됐는데
그 친구들이 정말 모든 것을 다 기뻐하는거야.
세상 만사가 다 신비롭고 아름다운가보더라고?
근데 우리는 그렇지 않잖아.
어느 정도 겪어서. 이미 다 아는 거니까.
새롭긴 한데, 걔네들 정도만큼은 안 되는 거지.


그 말이 맞았다. 새롭긴 한데, 그들만큼 새롭게 느낄 순 없었다. 몽롱하게 잠이 오는 와중에 어쩌다 나는 여행을 늦게 시작해가지고 이렇게 아쉬워하나, 하는 생각이 아른거렸다. 조금만 더 일찍 여행을 시작했더라면 어땠을까. 3년만, 아니 5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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