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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찐년 김짜이 Apr 10. 2021

여행이 두려울 스무 살의 나에게

부질없지만 한번 상상해볼 수는 있잖아요

스무 살의 나를 돌이켜보면, 사실 술 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다. 스무 살의 나는 여러 관계를 쌓아나가기도, 무너뜨리기도 했지만 술만은 놓지 않았다. 언제나 취해 살았고 술이 깨면 또 술을 마셨다. 잔뜩 취해있던 나날이었다.


동시에, 가장 후회하는 것도 술이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술값으로 썼다.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있는 시간을 술을 마시는 데 보냈다. 물론 그렇게 술을 마시면서 함께한 사람들 중 여전히 내 곁에 남아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알코올이 휘발되듯 날아가버렸다.


술 말고도 갓 자유의 몸이 된 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은 상당히 많았다. 그 중에 하나가 여이었다. 그 때는 몰랐다. 내가 이렇게 여행에서 많이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여행을 사랑하게 될 거라는 걸.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술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터미널로, 기차역으로, 공항으로 향하겠다. 내가 마셔보지 못한 술들을 입에 털어넣기보다는 가보지 못한 곳으로 떠나겠다.


하지만 아마도 스무 살의 나는 두려워할 것이다. 화장실이 어디인지 금방 찾을 수 있는 술집에서의 여러 번 먹어보았던 서비스 안주, 넘어서는 안 될 주량과 같은 익숙한 것들이 아닌 '새로운 풍경을 만나는 일'은 충분히 무서울 수 있다. 그렇게 겁을 잔뜩 집어먹을 내게 세지를 보낼 수 있다면, 서른 세 살 먹은 나는 딱 세 가지 여행 준비법을 보낼 것이다.


첫 번째로, 하지 말라는 것을 먼저 찾기.

여행을 떠나면서 금지 항목을 만들어놓는다는 게 언뜻 보면 매우 불합리해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이름 아래 마음이 살랑살랑 풀어지는 경우를 왕왕 보았다. 여행 즐기는 것은 좋지만, 너무나 방심을 해 버리면 뜻밖의 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내게 일어나는 사고가 될 수도 있고, 무언가를 망가뜨리는 사고가 될 수도 있다. 가고자 하는 곳이 문을 닫아 뜻밖에도 여행이 원활하게 흘러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치안이 상대적으로 좋은 국내 여행에서는 사기나 폭력, 도난 사건이 많이 일어나지 않기는 하지만, 혹시 모를 일이다. 하지 말라는 것들을 미리 알아보고 일어날 사고를 예방 두어야 더 오래 여행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대범하게 짐싸기.

이것도 필요할 거야, 저것도 필요할 거야...... 고민하지 말고 대범하게 다 추려내자. 정말 오지로 떠나지 않는 이상 어지간한 시골에도 편의점은 있다. 숙소 근처에 없다고 해도 최소한 버스터미널 근처에는 있다. 옷? 여행지 시장에서 구입한 싸구려 티셔츠는 의외로 오랫동안 추억의 물건으로 남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방에 넣어 간 것들이 말 그대로 짐이 되어 어깨를 꽉꽉 내리누를 것이다. 대중교통 타고 낑낑거리면서 이동할 때 조금이라도 가벼운 발걸음을 갖기 위해, 대범하게 생략할 줄 는 것 또한 필요하다.


세 번째로, 교통수단만큼은 알고 가기.

보통 수도권이나 특별시 지역을 벗어나면 버스를 자주 보기가 힘들어진다. 드문드문 다니는 대중교통은 뚜벅이가 감수해야 할 아쉬움 중 하나. 그렇다고 교통수단에 집착해 모든 것을 예매하고 시간별로 계획을 짜서 기계처럼 움직이라는 말은 아니다. 어느 동네로 가는 버스가 하루에 몇 번, 몇 시간 간격으로 있는지정도는 알고 가라는 이야기다. 덧붙여 대부분의 지방 버스는 그 지역의 터미널을 기점으로 운행한다는 사실을 알고 가면 좋다. 인터넷에서 ㅇㅇ터미널을 검색한 후 가장 최근의 시간표를 확인해보자. 여행 계획을 짜는데 한결 유리할 것이다.


꽤 오랫동안 혼자 또는 일행과 여행을 했고, 그 시간동안 쌓인 노하우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세 가지다. 물론 이 세 가지 방법을 안다고 해서 여행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스무 살의 나는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고.


역시 다 그만두고 이 말을 전해야겠다. '새로운 풍경을 만나는 일'은 흥청망청 술을 마시는 것보다 백 배, 아니 천 배는 재밌는 일이라고. 그리고, 여행지에서 마시는 술은 그 어두침침한 단골 술집에서 마시는 술보다 꿀맛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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