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의 많은 벚꽃 명소 중, 강릉 경포호의 벚꽃은 늦게 피는 편이다. 그렇지만 올해는 개화시기 자체가 빨라져 이미 지고 없다. 내년을 기약할 수밖에. 벚꽃 필 때 가는 것도 좋지만 강릉이라는 여행지는 벚꽃이 없어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바다와 호수를 함께 볼 수 있는 경포해변이 있기 때문이다.
강릉으로 가는 가장 저렴한 방법은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영동선에서 버스를 타는 것이다. 현재 기준으로 아침 7시 20분에 출발하는 일반 버스가 14,600원이다. 그보다 느린 버스도 있지만 꽉 찬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 조금 서둘러보자. 고속버스는 휴게소를 한 번 들르고 세 시간 좀 못 걸려 강릉에 도착한다.
물론 KTX를 탈 수도 있다. KTX를 탈 경우 한 시간 삼십 분만에 강릉에 도착한다. 강릉역 또한 시내와 멀지 않아 이용하는데 큰 불편함이 없다. 하지만 일반 고속버스보다 가격이 높으므로, 스무 살의 나라면 아마도 고속버스에 오를 것이다.
터미널 앞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202번이 오면 냉큼 올라타고 30분 정도 가면 경포해변에 도착할 수 있다. 가는 길에 보이는 정겨운 강릉 시내의 모습도 놓치지 말자. 아침에 일어나 피곤이 쌓여 잠시 눈을 붙이고 싶겠지만, 경포해변으로 가는 길이 온통 벚꽃이니 꼭 깨어있도록 하자.
경포해변에 도착하면 편의점 앞 정류장에서 하차하게 되는데, 그 근처에는 자전거 대여점이 몇 곳 있다. 가족끼리 타는 4인승, 6인승 자전거나 커플끼리 타는 2인승 자전거도 있지만 혼자 왔으니 간단하고 평범한 1인승 자전거를 빌리자. 시간별로 빌릴 수도 있고, 종일권도 있다. 무엇보다 좋은 건 1인승이기 때문에 가장 저렴하다는 것.
브레이크를 잘 확인하고 한 대 빌려 길을 건너면, 경포호를 따라 놓인 자전거길로 진입할 수 있다. 일방통행이니 사람들이 가는 방향대로 슬슬 페달을 밟자. 약 10분 정도 달리면 허난설헌 생가 방향이 나오는데, 그 근처가 바로 초당 순두부마을이다.
곳곳에 있는 식당들은 하나같이 순두부를 취급한다. 가장 유명한 순두부 전문점은 <초당할머니순두부>이고, 짬뽕순두부로 유명한 곳은 <동화가든>인데, 사실 어느 곳에 가도 맛있는 순두부를 먹을 수 있다.
뜨끈한 순두부로 첫 끼니를 잇고 나면, 다시 자전거를 탈 힘이 날 것이다. 멀리 가기 전에 우선 허난설헌 생가와 기념공원부터 둘러보자. 아름다운 소나무 숲 가운데 고즈넉한 한옥이 흐뭇한 풍경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동시에 난설헌의 고단한 삶에 안타까운 기분이 드는 곳이기도.
어쩐지 쓸쓸해지는 마음 한켠을 잘 다독인 후 자전거에 다시 오르자. 경포호를 한 바퀴 도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40분에서 1시간 정도. 10분 정도 달려왔으므로, 자전거를 빌렸던 곳까지는 넉넉히 50분 정도 소요된다. 가는 길에는 경포호를 내려다볼 수 있는 누각 경포대도 지나갈 수 있다. 4월 초에서 중순 사이, 개화상황을 잘 살펴보고 방문한다면 연분홍빛 벚꽃 라이딩을 즐길 수도 있다.
경포 한 바퀴, 실컷 자전거를 탔으니 이제 자전거를 반납하자. 반납한 후에는 드디어 바다를 보러 간다. 경포 호를 향한 채로 왼쪽을 바라보면 소나무 숲과 기이하게 거대한 건물이 보인다. 인피니티 풀로 유명한 경포 스카이베이다. 그 방향으로 쭉 걸어가면 금세 바다다.
모래사장에 털푸덕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것도 좋고, 신발과 양말을 벗어던지고 발을 담가 보는 것도 좋겠다. 4월 초의 경포해변 수온은 그렇게까지 차갑지는 않아 발목 정도까지 담그기에 적당하다.
호수도, 바다도 마음껏 보고 나면 세 시 삼십 분 정도가 될 것이다. 조금 더 늦을 수도, 더 빠를 수도 있겠지만 경포를 떠나기에 나쁜 시간은 아니다. 떠나기 아쉽다면 경포해변 입구에 있는 느린 우체통에서 편지라도 한 통 쓰자. 일 년 뒤에 적힌 주소로 편지를 받아볼 수 있다.
편지를 쓴 다음에는 버스정류장에서 다시 202번을 타고 터미널쪽으로 돌아가자. 서울로 귀환하는 것은 아니다. 꼭 들러야 할 끝내주는 곳이 있다.
하나금융투자 정류장에서 하차해서 조금 걸어가면 버드나무 브루어리가 있다. 강릉을 대표하는 맥주 브랜드로, 옛 양조장이 있던 자리에서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곳이다. 이 곳에서 판매하고 있는 맥주들은 모두 여기서 개발한 크래프트 비어다. 메뉴판에 설명이 잘 쓰여져 있으니 취향껏 한두 잔 기울여보도록 하자.
자, 이쯤 되면 어느새 볕은 완연한 오후의 빛깔이 될 것이다. 아쉽지만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말고 서울로 돌아가자. 터미널까지는 슬렁슬렁 걸어가도 20분 정도 걸린다.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서 피곤하다면 버스로는 5분이면 갈 수 있다.
마침 오후 일곱 시에 서울로 가는 일반고속 버스가 있다. 가격은 마찬가지로 14,600원. 서울에 가면 열 시쯤 된다. 터미널부터 집까지 가는 교통편이 아직 끊기지는 않을 시간. 집에 가서 깨끗히 씻고 발 뻗고 자자. 하룻동안 고생이 많았다.
이 여행의 주의사항
강릉은 사계절 인기가 많은 여행지다. 주말에 출발하게 된다면 교통 정체 때문에 강릉에 도착하면 이미 지쳐있을지도 모른다. 토요일은 강원도로 가는 길이 막히고, 일요일은 서울로 오는 길이 막히는 점을 참고하자. 토요일에 떠난다면 가는 차편을 KTX로, 일요일에 떠난다면 오는 차편을 KTX로 선택한다면 도로에서 시간을 많이 버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