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살찐년은 기골이 장대한 편입니다. 일단 키가 무척이나 크고요. 뼈가 굵고 건강해 보이는데, 그 때문인지 어떤 분들은 초면에 위압감을 받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대학생때까지 성장이 멈추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얼굴 생김새라든지, 어깨의 동그란 모양이라든지, 그런 미묘한 부분들이 좀 늦게 완성되었습니다. 지금은 남자로 오인받는 일이 잘 없지만, 대학생 초기만 해도 이상하게 얼굴에서 남자 같은 분위기가 풍겼어요. 거기다 목소리까지 낮으니 뭘 더 말할 수 있겠어요. 화장실에 가면 그곳에 계신 여성분들이 깜짝 놀라서 다시금 쳐다보고 안심하는 일이 한 달에 한 번 꼴로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당시 흔했던 그런 오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국내여행 가이드 일을 스무 살 때 시작했으니 여행이라는 것에 무척이나 익숙했어요. 내일로도 일곱 번인가, 여덟 번인가 다녀왔을 거에요. 몇 번째 내일로 여행 중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 한 스물 하나, 스물 둘쯤 되었을 때였어요. 여름이었고, 순천에 있었습니다. 그 날은 좀 늦잠을 자는 바람에 일정이 꼬였어요. 게다가 그때는 역마살이 덜 쪄서 송광사와 시내를 잇는 버스가 그렇게나 자주 없을 거라는 걸 예상 못했었구요. 지금이라면 스마트폰과 온갖 정보들로 시간을 파악하고 갔겠지만요.
송광사로 갈 때까지만 해도 좋았지요. 온통 초록빛의 한적한 시골길을 텅 빈 버스로 달렸으니까요. 평화롭지는 않았어요. 기사님이 엄청난 라이더셨거든요. 커브를 돌 때마다 그대로 튕겨나가 저세상으로 갈 것 같았습니다. 앞좌석 손잡이를 꽉 잡은 손바닥에 땀이 배어나와 미끌거려 더욱 더 아찔했습니다. 그래도 넓게 펼쳐진 논밭과 사람 하나 없는 오래된 길을 달리는 건 썩 나쁘지 않았어요. 개울가를 지나가는데 정말 옛날 이야기처럼 멱을 감는 아이들이 있었더라니까요! 어중간한 농촌에서 자란 저에게는 제가 잘 모르는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주는 풍경이었어요.
버스는 무사히 송광사에 도착했습니다. 절은 상상했던 것보다 규모가 크면서도 오밀조밀하게 예뻤고, 고요했고, 한적했어요. 신이 나서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어떤 건물에서 잠깐 멈추게 되었습니다. 한 스님이 예불을 올리고 계셨거든요. 뒤편 기둥에 숨어서 가만히 예불 올리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그때만 해도 불교와 친숙하지 않았을 때여서 가만히 목탁을 두드리는 손길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스님은 곧 예불을 마치시고 건물을 나오셨고, 숨어있던 저를 발견하시고는 빙그레 웃으셨습니다. 언젠가 한 번 들었던 염화미소라는 단어가 떠오를 정도였죠. 조심스러운 손짓으로 저를 건물 안으로 불러들이시고서는, 보살님들께 절을 가르쳐 주라는 말씀을 남기고 자리를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그 날 처음으로 절 하는 법을 배웠어요. 삼배를 올리고 반절을 할 것. 엄숙하고 경건하게 절을 하면서는 스스로가 뿌듯할 정도였는데 나오는 길에 문지방을 밟아 다른 스님께 혼나면서 분위기를 와장창 망가뜨렸어요. 그래도 거기까진 좋았습니다. 문제는 절을 나와 버스 시간표를 확인할 때부터였어요. 송광사에 들어오면서 관광 안내소에 짐을 맡기고 나왔는데, 아무리 이른 시간의 버스를 타도 순천 시내에 도착하면 관광 안내소가 문을 닫을 시간이었던 겁니다. 순간 이렇게 된 거, 다른 곳을 더 들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낙안읍성으로 가는 버스가 마침 가까운 시간에 출발했거든요. 무작정 그 버스를 타고 낙안으로 갔습니다. 낙안에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내리자마자 시내로 나가는 막차 시간을 확인했습니다. 다행히 넉넉했어요. 편안한 마음으로 마을을 쏘다녔습니다. 초가집 사이로 난 흙길을 걷고 걸었죠. 그러다가 그만 주막을 발견하고 말았습니다.
역마살찐년의 이십대 초반은 술로 얼룩져있습니다. 일주일에 5일은 꼭 거나하게 술을 마셨고, 나머지 2일은 집에서 시원하게 보냈죠. 캔맥주와 함께. 나중에 들었는데 당시에 친구들이 '얘는 객사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걱정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술을 좋아했다보니 주막, 그것도 초가집 지붕에, 두툼한 나무로 된 마루에, 아주 투박한 상까지 놓여있는데다 나무조각에 요리를 적어 주렁주렁 매달아놓은 곳을 지나칠 수 없었어요. 당연히 들어가서 녹두전 한 쪼가리랑 막걸리를 시켰습니다. 지금이라면 안주 위주로 시켰겠지만 당시에는 안주 없이도 술을 콸콸 들이붓던 생간을 가지고 있을 때였으니까, 녹두전 하나로 충분했어요. 곧 안주가 나왔고 혼자 흙길이나 새 따위를 보며 우걱우걱 벌컥벌컥 먹기 시작했습니다. 머릿속을 텅 비우고 먹고 마시기만 하는데, 웬 아저씨 둘이 손님으로 오시더군요. 그들은 꼬막과 막걸리를 시켰습니다. 비싸서 엄두도 내지 못했던 꼬막이 맛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묵묵히 막걸리를 비우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쪽 아저씨가 말을 걸어 왔습니다.
"혼자 여행 왔어요?"
"네."
"이야, 용기있네. 어디어디 보고 왔어요?"
"송광사 보고 여기 왔어요."
"굉장하네. 젊은 총각이 멋있네."
어? 어! 총각! 총각이라니! 또, 또 오인받았어요! 남자로 오인받았습니다! 황급히 남자가 아님을 증명하고 싶어서 입을 열어 아무 말이나 내뱉었습니다.
"어, 저 처년데요."
총각의 반대말이 처녀니까 그렇게 말이 나온 것 같은데 뭔가 어감이 이상했습니다. 나는 뒤늦게 깨닫고 괜스레 멋쩍어졌지만, 아저씨들은 황급히 사과를 했습니다. 아이고, 미안해, 키가 커서 몰랐어, 혼자서 술 먹길래 남자인줄 알았지, 지금 생각해보면 키가 큰 것이나 혼자서 술을 먹는 것이나 남자만의 특성은 아닌데 참 웃기지요. 이것저것 변명을 늘어놓는 아저씨들 앞에서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고는 무심결에 뱉은 이상한 단어가 의식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뭐, 오래된 마을이기도 하니까 처녀총각 이런 단어 안 이상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괜찮다고 여러번 말했습니다.
마침 아저씨들의 안주, 꼬막이 나왔습니다. 보통 서울에서 먹는 꼬막은 껍질을 반만 벗기고 접시에 늘어놓은 후 꼬막 살 위에 양념장을 알맞게 뿌려서 내오는 모양새지만, 여기 꼬막은 껍질을 반만 벗기고 큼지막한 그릇에 담은 후 그냥 양념장을 부어 섞은 모양새였습니다. 신기하다고 생각하면서 슬쩍 쳐다보았는데 아저씨가 그릇을 들고 와 반 정도를 와르륵, 녹두전 접시에 쏟아주었습다. 미안해서 주는 거라며.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공중제비라도 돌 것처럼 신나했지만, 짐짓 침착하게 괜찮다고 아저씨를 다시 한 번 안심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막걸리를 하나 더 시켜서 콸콸 마셨어요.
낙안읍성의 여름밤은 정말 깜깜했습니다. 가로등도 띄엄띄엄 세워져있고, 밤하늘의 별은 어지러울 정도로 많았어요. 막걸리를 너무 많이 마신 바람에 그 예쁜 밤하늘을 감상할 겨를도 없이 화장실을 찾아 헤매야 했지만요. 주막에서 들렀다가 나왔어야 했는데. 간신히 화장실을 들렀다 비틀거리면서 막차를 타고 찜질방으로 갔습니다. 버스에서 내릴 쯤엔 술이 다 깨 버렸어요.
당시 순천에는 내일러들의 성지라는 모 찜질방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영업을 하나 모르겠지만, 그 근방에서는 하루 묵기 좋은 곳으로 유명했어요. 돈을 내고 수건과 찜복을 받았습니다. 짐도 없이, 맨 손으로 터덜터덜 탈의실로 들어가려니 동네 사람이 된 기분이었죠. 신발을 넣어 잠그고, 탈의실로 들어가 내 번호가 적힌 옷장을 찾아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그런데 또 분위기가 묘한 거예요. 미묘하게 침묵이 흐르는 느낌? 낯설지 않았어요. 둘러보니 역시나 아줌마들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또다. 또 오해받고 있었습니다. 속으로 마지막까지 이러네, 분명 나는 머리도 길고, 어깨도 넓지 않은데, 투덜거렸습니다. 입을 열어 아니라고 말하기도 뭐하고, 어쩔까 고민하다가 결국 자연스럽게 옷을 벗었습니다. 그랬더니 다들 조금씩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어요. 그 모습들이 재밌어서 속으로 낄낄 웃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