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저는 정직원이 되려고 발버둥쳤던 인턴 기자였죠
*오래된 기록을 뒤지다가 발견한 글을 올립니다.
지금은 동해, 묵호항 근처의 묵호 수변공원 방파제 산책로에 앉아있습니다. 놀러왔냐고 하면 그건 아니고, 오늘도 역시 가이드 일이에요. 손님들은 등대오름길로, 묵호항으로 구경 가시고 저는 앉아서 요 글을 끄적끄적 쓰고 있습니다. 구름이 많아 조금 흐리고, 바닷가에서 안개가 조금씩 피어올라 육지로 향하고 있는 듯, 먼 곳은 잘 보이지 않아요. 날씨가 어떻든 언제 봐도 좋은 풍경입니다. 풍경이 좋아서 자꾸만 찾게 되어서인지, 아니면 가이드로 자주 방문해서인지 강원도 영동지방에 유달리 추억이 많은데요. 그 중에서도 아까 버스에서 문득 떠오른 추억이 있어 여기에 주절주절 적어봅니다.
때는 2013년 초봄입니다. 졸업식날 취직이 되어버린 후로 힘겹게 인턴 생활을 이어가고 있던 때였죠. 취직할 때는 분명 여행기자를 뽑는다고 해서 이력서를 넣었는데 입사하고 보니까 아직 기반을 마련 중인 팀이었습니다. '전국 모든 여행지의 정보를 다 모으겠다'는 만만찮은 KPI를 가지고 막 출발선상에 선 사내 스타트업이었죠. 저만의 감성과 느낌을 듬뿍 담아 기사를 쓰게 될 줄 알았는데, 해야 할 일은 그저 수집에 가까웠습니다. 직접 발로 뛰는 생고생을 감수하면서요.
전국 팔도를 적당히 나눠 담당자를 배정했습니다. 인턴들끼리 어디를 갈 지 정했고, 저는 영동지방을 맡아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가이드로 많이 가기도 했었고, 무엇보다 시퍼런 바다가 무척이나 좋았기 때문입니다. 강릉과 동해는 너무 익숙해서 어디로 가면 뭐가 나올지 다 알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강릉과 동해를 두고 처음으로 가게 된 곳은 조금 생소한 편이었던 양양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곳의 정보부터 모으고 편한 곳을 가자는 심산이었죠. 1박 2일간 총 33곳의 여행지를 취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직원이 되고 싶은 욕심에 조금 미쳤었던 게 아닌가 싶네요.
그 당시 저는 운전면허를 갓 딴, 위험천만한 도로 위의 시한폭탄이었습니다. 심지어 회사 리프트에서 차를 꺼내다가 우측 사이드미러를 빸, 하고 경쾌하게 박살내기도 했던 터였죠. 당연히 회사 차를 끌고 출장을 갈 수는 없었고, 오로지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습니다. 우선은 양양까지 가는 첫 버스를 타고 양양에 갔습니다. 첫날은 시내의 명소를 돌며 사진을 찍고 정보를 수집했어요. 여행지 간의 거리가 멀지 않았기 때문에 도보로 어느 정도는 커버가 가능한 편이었습니다.
문제는 둘째날이었습니다. 둘째날은 버스를 타고 조금 내려가 바닷가를 취재해야 했어요. 우선 아침 첫 버스를 타고 인구리에 내렸습니다. 포부 넘치게도 인구리부터 힘이 닿는 곳까지 걸어올라갈 작정이었습니다. 온갖 둘레길과 등산으로 다져진 지금과는 다르게, 그 때의 제 몸을 이루고 있는 건 물렁살뿐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솜인형과 다를 바 없었어요. 6~7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였던 것 같은데, 막상 도착하니까 도저히 걸을 엄두가 나지 않더라고요. 일단 목에 걸고 있는 DSLR이 너무 무거웠어요. 게다가 바닷가를 따라 난 길은 오직 차도 뿐, 사람이 걸을 길이 없었습니다. 망연자실해서 택시라도 하루 대절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경찰서 앞에 세워진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거다!
경찰서로 막무가내로 진입해 제가 인턴 기자인데 여기를 취재해야 한다. 그러니 자전거를 좀 빌려줄 수 없겠느냐 하고 사정사정했습니다. 죄 짓지 않은 자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죠.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진상일 뿐이었네요. 경찰아저씨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다가 본인 퇴근할 때 타고 가야 한다며, 퇴근 시간이 20분 남았다는 절망적인 대답을 들려주셨습니다. 인턴의 패기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쉽사리 포기가 안 되더군요. 그때부터 엉뚱하게 눈에 불을 켜고 자전거를 찾아다녔습니다. 엄복동의 후예답게 여차하면 자물쇠를 끊을 기세로요. 물론 진심이 아닙니다. 도둑질은 나빠요.
그러다가 웬 이발소 앞에 세워져 있는 자전거를 발견했습니다. 아주 오래되었고, 무척이나 저렴해보이는 자전거였습니다. 자물쇠도 없었어요. 순간 나쁜 유혹이 물밀듯이 몰려왔지만 그대로 올라타서 페달을 밟을 수는 없었어요. 정직원이 되기 전에 감방부터 갈 수는 없잖아요? 절박하게 이발소의 문을 두들겼습니다. 안에서 네에- 하는 희미한 대답이 들려오자마자 문을 열어제꼈습니다.
이발소 문을 열자 티비 소리가 확 들려왔습니다. 이발사 부부가 동그란 탁자를 놓고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침 여덟 시에 갑자기 왠 키 큰 여자가 찾아왔으니 놀랄 법도 한데, 그들은 친절하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어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 지 고민하다가, 자전거를 좀 빌려달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양양을 취재하러 온 인턴 기자인데, 바닷가를 따라 쭉 취재를 해야 하는데, 차는 없고, 걷기에는 막막하고 해서 염치불구하고 이렇게 부탁을 드리게 되었다고요.
이발사 부부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서로 마주보고는, 조금 찝찝한 표정으로 그러마고 허락해 주었습니다. 영화나 만화에서 흔히 나오듯 그들의 머리 뒤로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어요. 저는 신나게 페달을 밟으며 해안도로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해변이 끝나면 저 해변이, 저 해변이 끝나면 그 해변이 나왔기에 사진을 찍는 데는 무리가 없었어요. 약 30분 정도는 매우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그 때 만난 풍경들은 아직도 드문드문 떠오릅니다. 인구리 시내에서 인구 해수욕장까지는 무척 가까웠으므로 어려울 것 없었어요. 4월 초였지만 아침이어서 제법 추운 바람이 불었고, 해가 뜬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닷가가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청춘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기분에 배시시 웃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비록 자전거를 타고 모래사장으로 진입하려는 순간 크게 넘어질 뻔 했지만요. 어느 영화에서 해변을 자전거로 달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서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우리나라 모래사장은 발이 푹푹 빠지는 구조였고, 저는 아무리 살이 빠졌다고 해도 무거운 편이었으니 자전거 바퀴가 굴러갈 리 없지요. 자전거를 얌전히 세워놓고 걸어가서 바다의 사진을 찍고, 항구의 사진을 찍고 다시 길로 나와 자전거를 밟았습니다.
그러기를 30분. 간과하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최근 부쩍 살이 빠져 가볍기는 했지만, 잠도 못 자고 열심히 일하느라 체력이 엉망진창이었다는 것을요. 양양의 해안도로는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저의 몸뚱이와 체력이 그렇게 나빴습니다. 오르막을 만날 때마다 자전거를 빌리겠다고 한 게 누그냐며 욕설을 내뱉었습니다. 스스로를 물어뜯고 싶을 지경이었어요.
목표치의 반 정도를 채웠을 때, 결국 체력이 완전히 고갈되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기보다는 자전거를 지팡이처럼 사용했어요. 몸을 한껏 기대서 질질 끌고 다녔습니다. 카메라도 무겁고 자전거도 무겁고 힘들어서 제정신이 아니었던 와중에, 자꾸만 파랗게 빛나던 바다가 너무 예뻐 보였던 게 아직도 선명합니다. 자전거 위의 저를 엄청나게 휘청거리게 만들었던, 바다에서 불어오던 봄바람도 기억나구요.
자전거를 타거나 끌면서 사진을 찍고 정보를 적어가며 올라오는 길, 누군가 작은 연두색 모닝을 세우고 빵빵, 저를 불렀습니다. 쳐다보니 아까 그 이발소 아주머니였어요. 사진은 많이 찍었냐며, 자전거 탈 만하냐고 물어왔는데 그냥 웃고 말았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나질 않아요. 마을 가까이 오자 기운이 너무 빠져서 도저히 뭘 할 수가 없었어요. 공금으로 택시를 타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회사돈을 허투루 썼다고 혼날 것만 같았지만 어떻게든 될 것 같았어요.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도 자전거를 빌린 화려한 언변으로, 아니 언변이라기보다는 동정심 유발이었겠지만, 팀장님께 택시를 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어필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택시는 커녕 차도 잘 지나다니질 않았습니다. 결국 사람들의 왕래가 있는 해수욕장 근처까지 자전거를 끌고가서야 택시를 한 대 잡을 수 있었어요. 금방이라도 울 듯한 얼굴로 택시 뒷칸에 자전거를 구겨넣었어요. 잘 안 들어가서 앞좌석을 최대한 당기고, 자전거 앞바퀴를 이리저리 돌리고 나서야 자전거를 실을 수 있었습니다. 마을로 가자고 했더니 아저씨가 뭐 하는 사람이냐는 표정으로 쳐다봤던 게 기억이 나네요. 웬만하면 모든 사람에게 친절한 편인데, 그때만큼은 힘들어서 입을 열 수가 없었어요. 마을로 돌아가는 시간은 거짓말처럼 짧았고, 택시비도 많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돌아가면 반드시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택시에서 내렸습니다.
자전거를 빌린 건 아침 일찍이었는데, 반납한 건 해가 중천을 지났을 때였습니다. 이발사 부부는 여전히 떨떠름하고 황당하고 벙찐 얼굴로 자전거를 받았습니다. 지금이었다면 뭐라도 좀 사가서 인사를 했겠지만, 그 당시에는 주변머리 없는 뜨내기였기 때문에 빈손으로 인사만 꾸벅 하고 나왔습니다. 이발사 부부도 별 말이 없었어요.
바보 같고 미련했던 저는 자전거를 반납하고 나서 또 취재를 하러 갔습니다. 이번에는 택시를 타고요. 이 얼마나 열정 넘치는 인턴인가요. 돌아와서 취재한 장소를 세어보니 대중교통으로 취재한 것 중 가장 높은 기록이었어요. 그 숫자에 또 얼마나 안도했던지. 청춘이란 말 정말 싫어하지만, 그리고 지금도 청춘은 한참 진행중이라고 생각하지만, 절박한 청춘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가끔 그 아침의 이발소가 생각납니다. 문을 열었을 때 들렸던 TV 속 활기찬 사람들의 목소리가, 은근히 풍겨오던 밥과 반찬 냄새가, 그 분들의 살짝 당황해 떨떠름해지고 만 표정이. 누군가 아침에 찾아와 너의 것을 빌려달라고 간절히 이야기한다면, 저는 빌려줄 수 있을까요? 아마 이 일이 없었다면 곤란해하면서도 거절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그때 그 이발소를 떠올리며 흔쾌히까지는 아니더라도, 꼭 돌려달라는 간곡한 부탁과 함께 내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사람의 선의는 가끔 무언가를 진짜로 바꾸곤 한다는 걸 그때 깨달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