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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찐년 김짜이 Oct 23. 2021

너 선생님인 줄 알았잖아!

그 많은 시련과 고난을 딛고 드디어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교복을 입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왔는데, 웬걸. 배정받은 중학교가 신설 중학교라 교복이 없는 상태에서 입학을 하게 되었지 뭐예요. 표현의 자유를 억제한다며 다들 교복을 반대하는 와중에 저는 혼자서 간절히 교복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패션 센스에 자신이 없었거든요. 조금씩 자아가 생기는 6년 내내 물려 입기만 했으니 센스라는 게 생길 리가 있겠어요. 다행히도 영영 교복이 없는 건 아니고, 여름이 오기 전에는 생길 거라는 낙관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전까지 입을 사복이 필요하긴 했습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저는 뜻하지 않게 많이 자라났습니다. 늘 옷을 물려받던 외가에서 가장 키가 큰 사람이 되어버린 상황이었습니다. 물려받을 사이즈를 지나쳐 버렸어요. 더 이상 아무에게도 옷을 물려받을 수 없게 됐습니다. 결국 어머니께서는 큰 결단을 내리셨어요. 마침내 옷을 사 주기로 하신 거죠. 그렇게 저는 생전 처음으로 옷을 사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키는 약 170cm 정도였습니다. 지금에 비하면 그나마 일반적인 정도지만, 이미 또래들의 평균 키보다는 한참 컸어요. 청소년 코너에서는 옷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래전부터 그 사실을 체득했기 때문에,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옷가게에는 아예 들어가지도 않았습니다. 미리 옷을 좀 사 봤더라면 어디서 적당한 옷을 구할 수 있을지 알았을 텐데 말이죠.


어머니와 저는 길을 잃은 심정으로 번화가의 옷가게들을 기웃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옷가게는 너무 이목을 받을 것 같아 큰 옷가게들만 들어갔습니다. 요즘에야 작은 편집샵이 대부분이지만 당시에는 소위 '보세'라고 하는 옷들을 파는 큼지막하고 넓은 옷가게들이 많았거든요.


지금은 L사이즈, XL 사이즈의 옷들도 종종 보이고, 아주 귀하지만 플러스 사이즈의 옷들을 파는 가게들도 있죠. 제가 막 중학생이 되던 2000년대 초반에는 빅사이즈 개념이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어딜 가도 소위 말하는 프리사이즈들 뿐이었어요. 프리라고요? 누구나 자유롭게 입을 수 있다는 뜻인가요?


하지만 그 ‘누구나’에 저는 속하지 못했습니다. 어른이 되고 난 뒤에 키 큰 사람들을 종종 만나거나 마주치게 되었지만 어렸을 때는 학생 사회에 속해있다 보니 세상에 키 큰 애는 저와 동생밖에 없는 것 같았습니다. 옷도 마찬가지였어요. 키가 크느라고 말랐었고, 가슴도 덜 발달했으니 몸통은 어떤 걸 입어도 잘 맞았지만 문제는 팔이었습니다. 옷가게의 어떤 옷을 대 보아도 소매가 한없이 짧았습니다. 심한 옷은 7부같이 보이기도 했어요.


다 자란 지금은 짧은 소매에 익숙해져서 둘둘 걷어입고 다니고 있지만, 그때는 손목이 보이는 게 너무나도 싫었습니다. 매번 옷을 얻어 입는 것도 지겨웠는데, 새 옷이 딱 맞지 않으면 그것도 얻어 입는 것처럼 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리 맘에 들어도 소매가 짧으면 내려놓았습니다. 


물론 소매만 문제였던 건 아닙니다. 원피스는 옷걸이채로 몸에 대 봐도 티셔츠마냥 짧아보였고, 조금 짧게 나온 치마는 의복으로서의 기능을 다 할 것 같지 않았어요. 바지 또한 허리에 맞추면 짧았고, 길이에 맞추면 허리가 길었습니다. 


드디어 나만의 옷을 가질 수 있는데 정작 그 기회를 놓칠 것 같다는 생각에, 쇼핑을 할수록 기분이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이 원망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어요. 원망의 대상은 엄마였어요. 키가 큰 유전자는 엄마에게서 왔으니까요. 왜 이 유전자를 물려주었냐고 투정을 부르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참고, 아랫입술을 짓씹으며 옷을 골랐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저와 맞는 게 없다는 사실은 굉장히 희한한 일입니다. 무엇으로 비교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맞는 옷 하나 없는 것뿐인데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드는 거예요. 네, 그랬습니다. 제 사춘기는 좀 빨랐던가봐요.


자신에게 잘 맞는 옷을 쏙쏙 골라가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과 끊임없이 걸려있는 옷들 사이에서 맞는 옷을 찾지 못하는 제 모습이 비교되면서 점점 더 슬퍼졌습니다. 포기하지 않았어요. 인생에 처음으로 찾아온 기회였으니까요.


결국 한벌을 찾아냈습니다. 소매가 긴 데님 소재의 자켓과 세트로 나온 긴 치마를요. 지금 생각하면 약간 촌스러울 수 있는 구성이지만 패션을 생각할 여유는 없었습니다. 저한테 맞는 옷을 찾아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나도 기뻤으니까요. 피팅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섰을 때, 손목과 무릎이 보이지 않아 얼마나 행복하던지요. 게다가 제법 잘 어울리기까지 했습니다. 입을 만한 옷이 거의 없어서 몇 벌을 사야 했습니다만, 그 한 벌을 골라내고 나니 너무 지쳐서 더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나머지는 있는 옷으로 대충 때우기로 하고 쇼핑을 끝냈습니다.


다음 날, 위아래 데님 옷을 입고 두근거리며 등교했습니다. 아무도 제 옷을 보고 놀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옷을 잘 샀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기 초라 놀릴 만한 사람도 없었지만요. 그래도 역시나 약간의 에피소드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2교시가 끝나고 잠시 화장실에 들렀다 교실에 들어갔습니다. 앞문으로 들어갔는데, 갑자기 교실이 조용해지는 겁니다. 게다가 시선이 제게 확 쏠리는 게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뻣뻣한 움직임으로 제 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그러자 쏠려 있던 시선이 풀리고 다시 교실이 왁자지껄해졌습니다. 방금 뭐였지? 끝없는 의문에 시달리는 잘나, 친구가 웃으며 다가와 말했습니다. 


너 선생님인 줄 알았잖아!


어른 옷 중에서도 너무 어른 같은 옷을 샀나 싶었습니다만, 데님 자켓과 치마는 제법 오랫동안 잘 입었습니다. 교복이 정해질 때까지요. 교복은 가을쯤에야 간신히 정해져서 또 애를 쓰며 쇼핑을 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교복을 사는데도 맞는 게 없었어요. 길이를 맞추자니 품이 남고, 품을 맞추자니 길이가 짧고……. 팔이 짧은 것보다 품이 남는 걸 선택하고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졸업할 때까지 품은 남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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