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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더 Heather May 14. 2017

여자 둘이서 떠난 서호주 로드트립―#1

11살 나이차의 두 여자가 겁없이 떠난 호주 로드트립


마음 맞는 룸메이트 언니와 떠난, 서호주 로드트립(Road Trip) 



여행을 좋아하는 누군가라면 한 번쯤은 꿈꿀만한 로드 트립(Road Trip)


나 또한 예전부터 로드 트립을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잠시 한국에 들어갔을 때 급하게 운전면허를 따기도 했다. 사실 로드 트립을 결정하게 된 또 한 가지의 이유가 더 있었는데, 함께 여행을 계획한 룸메이트 언니의 사연 때문이다.


언니는 한국에서 10년 동안 오랜 직장생활을 했다. 그동안 해외여행을 한 번도 못 가본 게 후회가 됐고, 결국 한국을 떠나 퍼스에서 6개월이라는 장기여행을 즐기던 중이었다. 그런 언니가 긴 여행을 끝내고 돌아갈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언니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고,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언니와 나는 힘들게 하는 모험을 참 좋아한다. 그런 면에서 언니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특히, 겨울에 수영하는 걸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언니와 정말 천생연분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예전부터 함께 로드 트립을 가자고 수없이 이야기했는데, 결국 언니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로드 트립 날짜를 정할 수 있었다.


로드 트립을 떠나기 위해선 생각보다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좋은 호텔에 묵으면서 편안한 여행을 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야외에서 텐트를 치고 자는 것은 물론이고, 어쩌면 잘 씻지도 못할 수도 있다. 긴급한 일이 생기거나 여자 둘이 다니기 때문에 위험할 수도 있는 여행이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여행인 만큼 철저히 준비해야 했다.


렌터카에 대한 정보도 알아봤는데, 나는 한국에서 급히 딴 장롱면허라 운전을 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 운전을 몇 년간 해왔던 언니가 운전에 자신이 있다며 운전대를 잡겠다고 했다.



우리가 빌렸던 도요타 캠리, 새차라서 너무 깨끗했다.


로드 트립의 첫날이 밝았다. 우리는 퍼스 시티에서 그 전날 예약한 렌트카를 픽업한 뒤 출발했다. 나는 호주에서 한 번도 운전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주유를 하는지도 몰랐다. 보통 호주의 주유소는 셀프 주유를 해야 한다. 원하는 양의 기름을 넣은 뒤 카운터에 가서 자신의 번호를 말하면 기름값이 얼마인지 알려준다. 


40불 정도 되는 양의 기름을 넣으니 가득 찼다.



차가 새 차여서 그런지 부담스러울 정도로 상태가 좋았다. 여행 출발 전 언니는 호주에서 하는 운전이 처음이라 걱정을 좀 했다. 하지만 워낙 한국에서 운전 경력도 많고, 전날 집 근처에서 운전을 해봐서 그런지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1. Jurien Bay

작은 동네 주리언 베이, 잠시 쉬어가기 


주리엔 베이의 쇼핑센터. 쇼핑센터라는 글씨가 무색할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계속 도로를 달렸다. 첫 목적지는 퍼스에서 2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주리언 베이(Jurien Bay)였는데, 그곳에서 먹거리를 사기로 했다. 주리엔 베이의 쇼핑센터는 사실 쇼핑센터라고 부르기엔 너무 작은 규모였다. 다행히 IGA와 같은 작은 마켓들이 있어서 간단히 저녁에 먹을 빵과 고기를 살 수 있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다음 목적지에 도착해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서둘러 출발했다.


주리엔 베이를 조금 벗어났을 때 우리는 기름을 다시 한 번 넣기로 했다. 출발하기 전날에 이미 넣었지만 도로에서 차가 멈춰버리는 사태를 피하고 싶었다.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가득 채웠는데, 퍼스 시티를 벗어나니 확실히 기름 값이 비쌌다.




#2. Geraldton

로드 트립의 첫 번째 목표, 선셋 비치(Sunset Beach)에서 수영하기


그렇게 바랐던 수영이었건만…


그렇게 제랄튼(Geraldton)에 도착을 했다. 제랄튼도 어느 정도 번화한 곳이라 그런지 상점들이 많았다. 허기가 진 우리는 맥도날드에 들러서 햄버거를 사들고 나왔다. 제랄튼의 명소인 선셋 비치(Sunset Beach)에 가서 햄버거를 먹으며 신나게 수영을 하는 게 이번 로드 트립의 첫 번째 목표였다.


지도에서 선셋 비치를 검색하고 신나게 달려서 도착했다. 그런데 우리가 선셋 비치를 잘 못 찾은 건지, 애초에 수영할 수 있는 바다가 아닌 건지, 아무튼 바다에는 검은 미역 같은 게 둥둥거리며 잔뜩 떠다니고 있었다. 게다가 날씨까지 추워지기 시작해서, 도저히 바닷가에서 수영은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실망한 우리는 결국 차 안에서 햄버거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인 칼바리로 향하기로 한다.




#3. Horrocks

은퇴한 사람들이 많이 산다는 이 곳


호록스의 들판을 유유히 거닐고 있던 양과 소떼들


칼바리(Kalbarri)로 이동하는 중에 호록스(Horrocks)의 표지판이 보였다. 호록스는 원래 여행 마지막 날 퍼스로 돌아오면서 들리려고 계획했었다. 하지만, 선셋 비치에서 수영을 못했기 때문에 미리 세운 여행 계획에 조금 차질이 생겨 시간이 여유로워 졌고, 우리는 '호록스'로 방향을 돌렸다. 


호록스는 주로 은퇴한 사람들이 사는 조용한 지역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은퇴자들보다 양이나 소가 더 많이 사는 듯했다.




아무도 없는 도로에 내려서 기분전환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푸른 하늘이 만들어 내는 멋진 자연
두 번째로 발견한 양 떼들. 내가 ‘얘들아’ 하고 불렀더니 소리를 내면서 우리에게 다가왔다
토실토실한 양들


#4. Kalbarri

호주 원주민의 역사가 깊게 녹아있는 곳


끝없이 이어지는 도로 그리고 황량한 칼바리


호주에서 로드 트립을 하다 보면 사진처럼 허허벌판과 끝이 보이지 않는 도로가 인상적이다. 이런 곳을 몇 시간이고 달리다 보면 아무리 멋진 자연경관이 나오더라도 나중엔 조금 지루해진다. 호록스에서 한 시간 정도를 달리니 칼바리의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의 목표는 해 지기 전에 칼바리 국립공원에 있는 Nature’s window를 감상하는 것이였다.




#5. Pink Lake

보고 있어도 믿을 수 없던 풍경


저 멀리, 핑크핑크한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 무언가를 발견했다.


“어? 언니 저기 좀 봐요.”


혹시… 그 물이 분홍색이라는, 유명하다던 핑크 레이크 (Pink lake)?! 

언니와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서둘러 차를 갓길에 세우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여기다!”


거대한 분홍색 호수. 약간 무섭기도 했지만 믿기지 않을 만큼 신비한 광경이었다


바로 셋 째날 목적지인 핑크 레이크였다. 운 좋게 칼바리 국립공원으로 가던 중 발견했다. 핑크 레이크의 물에는 염분이 많아서 분홍빛을 띤다. 심지어 물에 누우면 둥둥 뜬다고 한다. 실제로 보면 물이 분홍색이라 약간 무섭기도 했지만, 정말 신기했다. 언제 이런 경험을 또 해볼 수 있을까?


언니와 나는 눈 앞에서 핑크 레이크를 직접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신비한 광경이었다. 비록 선셋 비치에서는 아무 것도 즐기지 못했지만 핑크 레이크를 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우리는 핑크 레이크에서 잠시 머무르며 열심히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하지만 우리는 해가 지기 전에 캠프 사이트에 도착해야 했다. 기쁨을 뒤로 하고 다시 서둘러 차에 탔고, 무사히 칼바리 국립공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5. Pot Alley

자연이 만든 한 폭의 그림



칼바리 국립공원은 비포장 도로였다. 혹시나 렌트카에 스크래치라도 나면 나중에 반납할 때 돈을 물어줘야 했기 때문에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Nature's Window는 비포장 도로를 달려야지만 만날 수 있는 곳이라 우리는 그 곳을 가는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여행이 계획대로만 되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라며 내심 위로 하고 어두워지기 전 캠핑장으로 향하고 있던 찰나, 멋진 장소를 발견했다.



바로 포트 앨리(Pot Alley)였다. 포트 앨리는 바다로 난 협곡인데 정말 그림 같은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거기서 넋이 나간 우리는, 한참이나 서서 풍경을 감상했다. 사진으로는 그 멋진 풍경을 다 담아낼 수 없어 아쉬울 뿐이었다. 




#6. Caravan Park

쉬어 가기


캠핑장에는 다양한 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다
우리의 캠프 사이트. 호주 사람들은 보통 자기 소유의 캠핑카를 가지고 다니면서 캠핑을 즐긴다


거의 6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한 캠핑장 <카라반 파크, Caravan Park> 


모험을 원했던 우리는 캠핑장을 예약 하지않고 무작정 찾아왔다. 오피스는 원래 6시에 닫는데, 다행히 6시가 되기 몇 분 전에 도착해서 캠핑장을 사용 할 수 있었다. 우리는 Unpowered site를 신청했다. 이 자리는 전력이 제공되지 않고 그냥 땅 한 칸을 주는 개념이다. 그 곳에 차를 주차해놓고 거나 텐트를 쳐도 된다. 비용이 저렴하다는 게 장점인데, 캠핑장의 공용 시설인 샤워실이나 바비큐 시설, 주방 등은 모두 사용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로드트립을 하는 우리에게는 최고의 조건이었다.


로드 트립 시작하기 전, 한인 커뮤니티에서 급하게 중고로 $5에 원터치 텐트를 샀다. 이름처럼 던지기만 하면 자동으로 텐트가 펴진다. 일반적인 텐트를 여자 둘이 치기란 쉽지도 않을뿐더러, 시간을 제법 잡아먹을 게 분명했다. 우리에게 딱 알맞은 텐트였다. 꼼꼼한 성격의 언니 덕에 이쁜 잠자리가 마련되었다.



Unpowered site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 그냥 배정된 땅에 차를 세우고 텐트를 치면 끝이다. 이것 때문에 돈을 내자니 조금 아까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텐트에서 자는것이 번거롭다고 생각되면 차에서 자도 좋다. 원터치 텐트를 중고로 저렴하게 구매한 덕분에 이번 여행의 비용을 상당히 절약할 수 있었다. 한면에 난 구멍을 초록색 밴드로 막고 사용했던 전 주인의 센스도 귀여웠다.


텐트도 쳤고 짐을 어느정도 정리하자 슬슬 허기가 지기 시작했다.



주리엔 베이에서 사 온 고기를 캠핑장의 바베큐 시설을 이용해 구워먹고, 빵과 컵라면도 함께 곁들이니 최고의 저녁이 만들어졌다. 


이 캠핑장이 더 좋았던 것은 화장실이나 샤워실이 정말 깨끗했고 1인 1실로 되어 있었던 점이다. 

지금까지 사용해봤던 카라반 파크 중에서 단연 으뜸이였다.


언니와 나는 텐트 안에 각자 침낭을 준비하고 우리의 첫 캠핑을 기념하기 위해 이케아에서 산 이쁜 촛불을 피우면서 분위기를 냈다. 그리고는 내일 일정을 위해 잠을 청했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밤에 주륵주륵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기온이 떨어지는 데다 바람까지 많이 불었고, 얇은 우리의 원터치 텐트 안은 점점 추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는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차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각각 운전석과 조수석에서, 차 안이 좁아 쪼그린 상태로 밤새 잠을 자야했지만 우리는 많이 피곤했는지 금방 잠이 들었다. 


우리가 로드 트립을 떠난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는 걱정을 많이 했다. 


‘여자 둘이 가면 위험하다, 로드킬을 많이 한다는데.., 차가 갑자기 고장 나면 어떻게 할 거니, 정말 둘이서 갈 수 있겠니, 왜 사서 고생을 하니...' 


계획대로 할 수 없었던 것들도 있었고, 텐트는 구멍이 났고, 밤은 춥고, 차에서 힘들게 잠을 청했지만 우리는 벌써 여행의 3분의 2를 용기있게 해냈다. 그리고 이 힘든 기억들이 언니와 나에게 훗날 멋진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는걸 알고 있었다.


우리 로드트립의 첫날밤이 그렇게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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