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할배 리턴즈를 보며 돌아보는 베를린 여행기
나는 2016년 6월 독일 베를린으로 자유여행을 떠났다. 베를린을 간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뮌헨, 프랑크푸르트가 더 여행하기 좋을 거라며 추천을 해 주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이상하게도 독일=베를린이라는 공식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4박 5일의 짧고도 긴 베를린 여행을 떠났다. 미국을 가는 것처럼 독일 여행도 나의 오랜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다. 해외여행을 다니며 만난 독일 사람들이 너무 친절하고 좋았기에 저절로 독일에 대한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요즘 인기 예능인 꽃보다 할배 리턴즈를 보는데 여행지 중 한 곳이 독일 베를린이었다. 방송을 보다 보니 베를린의 낯익은 여행지들이 많이 등장해서 반가웠다.
프로이센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1872년에 지어진 전승 기념탑. 입장료를 내면 전승 기념탑을 올라갈 수 있다. 기념탑에 올라가면 베를린의 멋진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전승 기념탑을 밖에서 보는 것도 좋지만 탑에 올라가는 것을 추천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규모 석조 공원인 독일 베를린의 홀로 코스트 메모리얼. 나도 물론 이곳을 방문했지만 일반 여행지처럼 사진을 찍고 싶진 않았다. 독일의 슬픈 역사가 담긴 곳, 숙연해지는 곳.
브란덴부르크 문(독일어: Brandenburger Tor)은 초기 고전주의적인 양식의 개선문으로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있다. 프로이센 왕국의 제4대 국왕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명을 받아 1788년부터 1791년까지 건설되었고, 건축가는 칼 고트하르트 랑한스(de)이며,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를 참고했다. 그 상단은 요한 고트프리트 샤도(de)가 조각한 마전차(馬戰車) 모습의 청동상인 "콰드리가" 그리고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로 장식했다.
19세기 이후 전쟁에 승리한 프로이센군 및 독일군이 개선할 때 반드시 통과하는 장소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파괴되었다가 1957년부터 1958년까지 복원 공사를 했다. 독일의 재통일 전에는 베를린 장벽의 상징적인 문이었다. 2009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는 마라톤과 경보 경기의 출발점과 결승점으로 사용되었다.
베를린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라고 생각하는 브란덴부르크 문(개선문). 역시나 꽃보다 할배 리턴즈에서도 이곳을 방문했다. 내가 브란덴부르크 문을 방문했을 때는 한쪽에서는 유로컵을 응원하는 사람들, 한쪽에서는 이민자들의 데모 그리고 여행자들이 그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베를린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체크포인트 찰리. 1961년부터 1990년까지 연합군과 외국인, 외교관, 여행객들이 동베를린과 서 베를린을 드나들 수 있었던 유일한 관문이었다. 이곳 검문소의 주요 업무는 서독의 연합군이 동독으로 들어가는 것을 기록하고, 동독에서의 체류지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베를린 자유여행
독일 베를린은 내가 상상했던 것 도시와는 달랐다. 홈리스들도 많이 보였고, 거리 곳곳에는 악취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베를린이 좋았다. 지금까지도 그리워하며 한 번쯤은 1년간 살아보고 싶은 독일 베를린이다. 왜 그렇게 베를린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나도 잘 모르겠다. 완벽하지 않은 그 모습이 좋았다. 늘 깨끗하고 아름답기만 한다면 매력을 찾기가 힘들지 않을까.
내가 여행을 하며 만난 독일 친구들은 모두 친절했고 밝았다. 늘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해주느라 바빴고 내가 만났던 그 어떤 외국인 친구들보다 '친구'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친구들이었다. 흔히 사람들은 독일인들을 무뚝뚝하고 차갑다고 말한다. 실제로 내가 독일 베를린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확실히 차가워 보였다. 표정이 없고 먼저 다가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많이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정말 친절했다. 실제로 베를린에 도착한 첫날 지하철을 타야 해서 길에서 있던 아저씨에게 지하철역을 물었는데 아주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한 번은 길을 잃어 지도를 보고 있는데 지나가던 분이 도움이 필요하냐고 묻고 자기도 마침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이라며 데려다주었다. 여행 동안 베를린 사람들에 대해 느낀 감정은 '마음이 따뜻하다'였다.
베를린은 자유여행을 하기에 안전한 도시였다. 하지만 베를린에서 조금 무서웠던 순간이 몇 번 있었다.
1. 베를린에 도착한 첫날
베를린 공항에서 시내로 나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랍계 청년 8명이 함께 지하철에 탔다. 다른 자리도 많았는데 내 옆, 앞 그리고 주위를 둘러쌓고 자기들끼리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한두 명도 아니고 8명이 바로 옆에서 얘기를 하기 시작하니 너무 무서웠다. 그때 시간이 밤 11시가 넘는 시간이라 그런지 더 무서웠다. 자기들끼리 얘기를 하며 나를 쳐다보기도 했다. 나는 내 캐리어와 가방을 최대한 두 손으로 꽉 잡았다. 지하철을 내릴 때 내 가방을 가져갈까 봐 걱정이 되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지 속으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그 청년들은 몇 정거장 후에 우르르 함께 내렸다.
2. 베를린 성당 근처에서
길을 걸어가는데 마주 오던 아랍계 남자가 있었다. 마주 걸어오며 계속 쳐다보길래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베를린 성당 근처에서 멈춰 서 풍경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낌새가 이상했다. 뒤돌아 보니 그 남자가 내 바로 뒤에 서 있었다. 기분이 나빠서 째려보고는 걸어갔다.
3. 찰리 포인트 근처에서
찰리 포인트를 구경하고 근처의 박물관으로 향하던 길이였다. 아랍계 소녀가 나에게 다가왔다. 종이를 슥- 꺼내 보여준다. '저는 들을 수가 없어요. 기부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쓰여있었다. 소녀의 사정이 안타까웠고 주머니에 2유로 동전밖에 없어서 동전을 주었는데 갑자기 손바닥을 펴더니 '5유로'를 달라고 한다. 2유로 밖에 없다고 하니 아주 기분 나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떠나버렸다. 그 소녀의 뒷모습을 보는데 아랍계 남자가 그 여자의 뒤에 붙어서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가던 길을 가고 있었는데 그 소녀처럼 옆에는 남자가 동행하고 한 손에는 종이를 쥔 소녀들이 정말 많았다. 그제야 '아, 당했구나' 싶었다.
특정 인종을 비하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독일 베를린 여행 중에서 기분이 좋지 않았던 순간들을 생각해 보니 아랍계 사람들이 전부 관련되어 있었다. 나와 같은 같은 사건들을 경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여행 중에 낯선 사람들이 다가오거나 같은 상황이 펼쳐졌다면 쳐다보지도 말고 대꾸를 하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6월 중순에 독일 베를린으로 여행을 갔었다. 4박 5일 동안 날씨가 봄/초여름 날씨였는데 하루는 비가 왔다. 비가 오는 하루를 제외하고는 민소매, 치마, 반팔, 반바지 위주로 입었다. 비가 오는 날은 쌀쌀해서 잠바를 입고 다녔다. 베를린은 6월에 여행하기 좋은 것 같다.
About 헤더의 20살에 시작한 세계여행
헐리웃 배우 아담 샌들러에게 빠져 혼자 힘으로 미국을 가겠다는 생각에 20살이 되자마자 한국을 떠나 해외 생활 겸 여행 경비를 모으기 위해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그 후, 여행의 매력에 빠져 21살에는 호주에서 싱가폴로 건너가 3년간 거주하며 대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현재는 서호주 퍼스에서 살고 있으며, 해외 취업과 세계 여행을 주제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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