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민영 Aug 28. 2017

네가 건넨 첫 러브레터

아이가 쓴 편지를 받았다. 혼자서 꾹꾹 글씨를 써 내려간 첫 편지였다.



지난주 퇴근길이었다.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아이가 쏜살같이 달려 나왔다. TV 속에서 터닝메카드가 한창이었지만 아이는 엄마인 나를 꽤 기다리고 있던 눈치였다. 아이가 인사도 잊은 채 손에 쥐어준 것은 편지봉투처럼 접어둔 색종이였다. 조심스럽게 귀퉁이를 열어보니 이번에는 분홍 색종이가 새초롬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빨간색과 분홍색을 골라 내게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피로는 모두 풀리고 말았다.


“엄마 사랑해요, 엄마 사랑해. OO가”


그랬다. 아이가 준 것은 절절한 러브레터였다. 크레파스로 써 내려간 다섯 살 아이의 앙증맞은 글씨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제 이름 정도 겨우 쓰기 시작했다. 엄밀히 말하면, ‘쓰다’보다 ‘그리다’가 어울리는 동작이었다. 그러니 ‘엄마’와 ‘사랑해’가 담긴 이 편지는 아이의 첫 편지인 셈이다. 실수를 아직 의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의 성격을 생각해 볼 때, 이 편지를 위해 서너 장의 색종이는 버렸을 것이다.


아이를 키우며 ‘내리사랑’이라는 단어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내가 첫 편지를 받은 날이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아이가 건넨 손바닥만 한 종이에는 그 작은 생명이 내게 전할 수 있는 모든 사랑이 담겨있었다. 언젠가 거칠게 야단맞으면서도 엄마를 애타게 부르며 우는 아이를 보며 같은 생각에 잠겼다. 이 아이가 주는 사랑의 크기가 나의 그것보다 훨씬 큰 것 같다고.


글자 하나하나에 사랑이 묻어나는 이런 편지를 마지막으로 받아본 것은 언제였을까? 혹은 내가 그런 편지를 썼던 건 언제였을까? 물론, 같이 사는 남자에게 매년 생일과 크리스마스 카드를 꼭 챙겨 받는다. 옆구리 쿡쿡 두 번, 아니 세 번 정도 찔러서. 하지만 우리 부부가 주고받는 편지는 어느 순간 의무와 안도 사이에 남아버렸다. ‘내가 아직 너를 사랑해'와 '내가 아직 너에게 사랑받고 있구나.’


아이에게 답장을 써주기로 약속한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너를 사랑한다는 진심을 담는 일에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어려운 것도 아닌데. 십 년 후, 아이가 중2병에 걸려 마구 날뛰더라도 소리를 지르거나 때리지 않고 작은 쪽지에 진심을 담아 건네줄 것을 다짐해본다. 누군가에게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느끼기 위해서 러브레터만큼 강력한 수단을 그때도 찾지 못할 것이므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