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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tori Mar 23. 2022

마마 펜

동남아 배낭여행 - 태국, 코창(2)


긴 이동 후에는 웬만해선 일정을 따로 잡지 않는다.

남들 아침 일찍 일어나 나갈 때면 혼자 이불을 꼭 껴안고 늘어지게 게으름을 피워본다. 이미 옆 침대 친구들의 움직임에 깨어났지만, 엄지발가락은 꼼지락 거리지만 눈은 절대 뜨지 않는다.

괜스레 주말에 일찍 일어나면 억울한 것처럼 아무 계획이 없는 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건 용납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잠에 드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나간   방에서 뒹굴거리다, 이쯤이면 침대가 지루하다 싶을  일어나서   방을 둘러보며 스트레칭도 켜는 여유를 가지는  월차를 쓴 평일 날 아침날 만큼이나 좋다. (퇴사한  얼마 안돼서 모든 행복이나 여유는 회사 다녔을 때와 비교하게 된다.)


고양이 세수만 하고 나와 코창섬을 구경하러 나왔다. 다들 투어를 갔는지, 섬은 조용하다. 밤에 도착했을 때에도 조용했던 섬인데, 아침엔 더 조용하다. 섬 특유의 왁자지껄함이 없다 이곳은.

오토바이 두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한 골목을 걷고 또 걸었다.

찌는 날씨에 햇빛 피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었지만 쨍한 파란색을 물감으로 마구 붓칠을 해 놓은 듯한 그 하늘이 좋았고, 길에는 내가 좋아하는 노란색 꽃들이 떨어져 있길래 더 좋았다. 꽃을 주어들고 괜히 손가락 사이에도 껴 보고, 귀에도 꽂아 보았다.



꽃을 들고 한참을 걷다가 발견한 여행사 골목.

여행사가 참 많았지만 주인들은 보이지 않고, 부지런한 어떤 아주머니만 말을 거신다.

금액이나 물어보자 싶었는데 덥지 않냐며 얼른 자리를 내주시면서 시원한 물도 가져다주신다.

과한 친절에 '바가지를 씌우려고 이렇게 잘해주나?'라는 의심이 드는 것도 잠시, 투어 금액이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코창을 떠나서 코타오로 가는 일정도 내친김에 여쭤봤는데, 행동이 빠르신 아주머니는 여기저기 전화를 거시더니 오케이 하신다.

우선 깎고 보는 나의 깎기 기술은 이곳에서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사람 구경하기 힘든 이곳에서 거의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 사람이고, 아주머니 옆에 앉은 인상을 팍 쓴 귀여운 손녀가 그냥 마냥 귀여웠다.


예약을 다 하고 나서 아주머니가 내 팔을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져서 묻는다.


-베드 버그에 물렸어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시더니 냉큼 약을 가져오시더니 내 팔이며 등이며 (나는 보지도 못했던 곳을) 이곳저곳을 살펴보시면서 약을 발라주신다.


-근데 너 이름이 뭐야?


이제야 통성명을 한다.


-저는 가람이에요. 아주머니는요?

-마마 펜이라고 불러.

-마마 펜이요?

-응 내가 네 타일랜드 마마야


조그만 한국 여자애가 온몸에는 베드 버그에 물려서 돌아다니는 게 안타까워서였을까 아니면 엄마게에 손녀를 맡겨놓고 일을 나간 딸이 생각나서일까? 펜은 그렇게 나의 타일랜드 마마가 되어주겠다고 했다.


펜은 쉼 없이 조잘거리는 내 입과 그녀의 손녀 입에 쉴 새 없이 물이며 과자며 입에 물려주었다. 진짜 우리 엄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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