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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tori Mar 29. 2020

내 인생 첫 사막

동남아 배낭여행 - 베트남, 무이네 (2)


 알람 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눈이 번쩍 뜨였다.

 나는 항상 이런 식이다. 회사를 다닐 때에도 항상 알람 시간 5분 전에는 눈이 뜨여서 나의 아까운 5분을 ‘5분 뒤에 일어날 수 있을까’라는 쓸데없는 고민으로 날려버린다..


 그래도 호스텔 방을 혼자 독차지 한 덕에 편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아무도 깨지 않은 어두스름한 새벽에 호스텔 앞에서 지프차를 기다렸다. 내가 첫 번째 픽업자였는지 한 베트남 젊은 청년이 나를 태우러 왔다. 수줍게 인사하고 차례차례 사람들을 태워서 사막으로 달려갔다.


바람이 그대로 다 들어오는 지프차를 타고 달리는 기분은 뭐랄까, 영화의 한 장면에 내가 나오고 있는 기분이랄까?

 

 일출을 보기 위해서 아침 투어를 신청했는데, 날이 점점 밝아오고 있었다. 까만 하늘이 점점 푸른색으로 변하는데 구름이 잔뜩 끼어서인지 햇빛 한 줄기 볼 수 없었고, 일출을 볼 수 없다는 실망감에서인지 달리는 지프차에 들어오는 바람들이 더 춥게 느껴져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무이네의 도로는 정말 '한적' 하다. 그렇다고 사람이나 차가 없는 곳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적했다.


 아쉬운 대로 가는 길에 내려서 일출을 보았다. 일출이랄 건 없었고, 그냥 날이 밝아졌다는 게 맞는 표현인 것 같다.

다들 지프 위에 올라가서 사진도 찍고 하는데 나는 차가 다니지 않는 도로에 벌러덩 앉아서 사진 한 장 남겼다. 가이드는 걱정이 되었던지 얼른 찍어주고 얼른 가자고 재촉했다.



 사막에서 보는 일출을 기대했는데, 아쉬움이 잔뜩 남은 채로 레드 샌듄에 도착했다. ATV를 타라는 장사꾼들의 터무니없는 금액에 혀를 내두르고, ‘저 위까지 올라가는 게 뭐 얼마나 힘들길래’ 하며 ATV를 타고 올라가는 관광객들을 힐끔 쳐다보고 호기롭게 올랐다. 

 그러나 사막 오르기는 생각보다 힘들었다. 정말 부드러운 이 모래가 한 발 한발 내딛는 내 발을 꼭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았다. 왜 사막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고 오아시스를 찾는 사람들이 그렇게 힘들었는지 알겠다.

 저 멀리 내다봐도 똑같은 모래사막에 오아시스라고는 나올 것 같지도 않은 길을 걸어야 하는 데다가 이놈의 모래는 상냥한 척 부드러움으로 무장을 하고서는 발목을 잡으니 말이다.


나의 첫 사막

 

 그렇게 햇빛 한줄기 볼 수 없는 사막에서 나는 헥헥 거리며 끝까지 올라갔다. 내 인생의 첫 사막은 알라딘에서 나오는 그런 기묘한 느낌이 피어오르는 사막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더울 거라고 생각했지만 덥지 않은 날씨에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좋았고, 탁 트인 사막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아 이래서 사막에 오나보다’ 싶었다. 

 빌딩 빽빽한 도시에 살던 사람들이라면 이런 광경을 보기는 살면서 얼마나 될까? 하물며 도심에서 떨어진 시골에도 나무들이 있고, 사람 사는 집도 간간히 보이는데 아무것도 없는 광활한 곳에 서 있는 이 기분은 와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지 않을까 싶었다.

 혼자 여기저기 사진을 찍다가 지프를 함께 타고 왔던 한 아가씨가 말을 걸며 사진을 찍어줄 수 있냐고 부탁했다. 흔쾌히 사진도 찍어주고 나도 운 좋게 사막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유치원 선생님이라는 아가씨와 금세 친해져 그 자리에서 투어 끝나고 아침 먹자는 약속까지 잡았다.



 아침 투어에는 레드 샌듄, 화이트 샌듄, 요정의 샘물을 들르는 코스인데 지프 투어에 참여한 우리 4명 모두 요정의 샘물은 별로 가고 싶지 않아서 화이트 샌듄까지만 가겠다고 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나무를 실제로 보다니, 감동스러운 순간이었다.


지프 투어 기사님은 손님들이 돈까지 받고 안 간다고 하니 시간을 벌어서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굉장히 미안해하는 얼굴을 하며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용과가 가득 찬 밭에 내려주기도 하고, 해변가 근처에 꽃이 그득하게 핀 곳에 내려주고 사진도 찍으라며 자기가 더 성화였다. 


한적한 해변도로


 사막과 바다라는 게 함께 공존한다는 게 좀 아이러니 하지만 무이네는 베트남에서 사막을 볼 수 있는 곳이고 동시에 카이트서핑을 하는 서퍼들에게 유명한 곳이다.


잊지 못할 쌀국수, 저 옆에 있는 베트남 땡초를 가위로 잘라서 넣어 먹으면 땀이 확 쏟아질 정도로 맵지만 그게 또 꿀맛이다.


 지프 투어 가이드에게 아침 식사할 곳을 추천해달라고 하니 친절하게 로컬 국숫집에 내려주었다.

 시간은 겨우 8시였지만 새벽 4시부터 투어를 돌아다녔기 때문에 배가 고파 쌀국수 하나를 시켰다.

쌀국수를 엄청 좋아하는 내가 베트남에 온 지 3일 만에 쌀국수를 먹는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베트남의 첫 쌀국수는 정말 맛있었다.


한국 아가씨도 나와 일정이 비슷하여 다음날 달랏으로 넘어간다길래 함께 버스회사를 찾아서 버스도 예약했다. 침대버스를 예약하려 했는데 그 버스는 없고 더 좋은 버스가 있다길래 예약하고 나와서 저녁 약속까지 잡아버렸다.



이 한적한 도시가 이 학교 덕에 그나마 좀 활기가 넘치는 듯했다. 어딜 가나 아이들이 있는 곳은 생기가 넘친다.


 숙소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가방을 들쳐 메고 그냥 걸어 나왔다.

무이네는 2차선이 있는 도로 양 옆으로 가게들이나 호스텔이 자리 잡고 있고 바다를 볼 수 있다. 바다 구경도 하고 가게들 구경도 하며 지나가는데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 중이다.

선풍기 하나 안 돌아가는 곳에서도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아이들의 큰소리가 밖에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다는 기분이 바로 이 기분이었겠지?

 

 한참을 걷다가 더위에 지쳐갈 때쯤 저 멀리서 보이는 예쁜 꽃들이 눈을 사로잡아 슬쩍 들여다보니 카페다!

무이네에도 카페가 있구나 하고 들어가 보니 로컬 아저씨들과 아이들이 앉아 있었다. 

나도 자리 잡고 앉아서 커피 한잔을 시키고 일기장을 꺼냈다. 여행을 다니며 그 날 그날 기록을 하고자 했는데 이런.. 여행 3일 차에 벌써 일기를 밀렸다. 기억을 끄집어내서 그날그날 뭐했는지 써 내려갔다.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내 꿈은 작가였는데,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상담을 해준다면서 나를 불러서 담배를 뻑뻑 피며 작가 그거 하면 돈도 못 벌고, 그렇다고 네가 글을 잘 쓰는 게 아니지 않냐며 말하신 그 날 이후 나는 교내 공모전도 나가지 않았다. 그냥 글을 쓰지 않았고 책도 읽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내가 일 년에 책을 읽은 건 손에 꼽는다. 그렇게 책을 달고 살던 내가, 꿈이 작가였던 소녀가 그 꿈을 포기하게 된 건 한순간, 그래 한순간이라는 말이 딱 맞다.

 일기를 써 내려가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핸드폰으로 대부분의 것을 기록하는 요즘 손으로 뭔가 종이에 끄적인다는 그 기분이 이상했지만 또 싫지도 않았다. 



무이네의 해산물은 저렴하고 신선하니 꼭 먹는 걸 추천한다. 조리법도 다양하니 골라골라

 

 저녁쯤에 무이네에서 유명하다던 해산물 집에 가서 이것저것 골라서 먹으며 동행 (어느 순간 동행이 되어있었다. 무이네에서 만나 나트랑에서까지 만났으니 말이다.) 친구와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나눴다. 사람 사는 이야기는 다 똑같았고,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을 이야기하기보다는 그냥 이렇게 여행하며 돌아다니는 것에 대한 감사함과 그다음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굳이 이어폰을 낄 필요도 없었다. 베트남 특유의 오토바이 군단이 없는 이 곳에서 바다에서 들려오는 철석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까만 하늘에 별을 세면서 걸어오던 무이네의 마지막 날 밤은 그렇게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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