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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tori Mar 22. 2020

미안한데.. 나 우선 맥주 한 병만 줄래

동남아 배낭여행 - 베트남, 무이네 (1)


알람 소리가 너무 시끄럽게 울리며 어쩌나 걱정을 해서였던지,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나 버렸다.

미리 맞추어놓은 알람을 얼른 끄고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아침 일찍이라서 그런지 호스텔은 조용했고, 조식 먹는 사람도 나뿐이었다.



배낭여행자에게 조식이 제공되는 호스텔은 아주 감사한 호스텔이다. 괜한 돈이 안 나가도 되고, 늦은 아침을 든든하게 먹게 되면 점심도 안 먹어도 되니 아주 좋다. (기승전 돈돈돈 이군)

특별할 것 없는 식사이지만 바삭하게 구운 식빵에 버터를 살짝 바르고 그 위에 잼을 발라서 먹으면 정말 맛있다. 이 방법은 발리 여행 갔을 때 함께 갔던 언니가 조식을 먹을 때 항상 식빵을 정말 맛있게도 구워와서 그렇게 발라먹는 걸 보고 따라 해서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어서 나도 여행지에 올 때에는 꼭 그렇게 먹는다. 사실 평상시에는 집에서 빵을 잘 먹는 스타일이 아니지만 여행 나와서 먹는 식빵과 버터 잼의 조합은 정말 최고다. (식빵을 무조건 바싹 구워야 한다)



베트남의 골목은 좁디좁지만 그 나름의 운치가 있다


체크아웃을 마치고 나가니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비옷도 없는데 다행이다 싶어서 모자를 쓰고 버스 터미널까지 걸어갔다. 아직 배낭을 메고 다니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배낭의 무게가 조금은 버겁지만 그래도 혼자가 아닌 듯한 이 느낌이 좋다.


베트남에는 많은 버스회사들이 있지만 내가 이용한 곳은 탐한 버스


나의 목적지는 무이네

호치민에서 버스로 4시간 정도 달려가면 도착하는 곳이다. 베트남에서 사막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길래 전 날 티켓을 미리 예매해 두었다.

좌석 번호 같은 건 없다. 있어도 다 무시하고 타는 곳이라 맹꽁이처럼 “어.. 여기 내 자린데..” 해도 가볍게 무시하니, 내 자리 한 번 찾아가 보고 자리가 찾으면 그냥 다른 자리 앉아 버리면 된다.


이 때는 몰랐지, 이 버스는 다른 동남아 버스에 비하면 리무진 버스라는 걸


버스에 올라타니 드디어 말로만 듣던 2층 침대 버스가 내 눈앞에 있었다.

싱가포르에서 맨 처음 2층 버스 탔을 때에도 신기했는데 2층 “침대버스”라니!

무이네에 가는 버스가 자주 있어서 인지 내가 버스에 탔을 때에는 자리가 여유롭게 남아서 스리슬쩍 2층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180도로 눕혀지진 않지만 편하게 의자를 눕힐 수 있고 키가 작은 나에게는 다리도 쭉 필만큼 공간도 충분했다. 그리고 공짜 물까지, 이거 서비스 너무 좋은 거 아니요?



길이 좋지 않아 버스가 덜컹덜컹했지만 그래도 버스는 잘 굴러갔다. 안전벨트를 꽉 조여매고 호치민 떠나는 창밖을 보는데, 창문에 비가 온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버스가 달리니, 방울들도 쉴 새 없이 달려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어렸을 적, 창밖에 맺힌 빗방울들이 달려가는 모습이 꼭 올챙이들이 꼬물꼬물 거리는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사회생활에 찌들어서인지, 이 올챙이들의 모습이 꼬물꼬물 거리는 게 아니라 쉴 새 없이 바쁘게 어디론가 달려가는 모습으로 보이는 게 씁쓸하기도 했다.



한참을 달리다 내려준 휴게소(라고 부르겠다..^^)에서 화장실에 얼른 다녀오고 뭐 맛있는 거 파나 기웃기웃 거리다가 반미를 하나 샀다.

베트남 음식은 정말 다 맛있지만 그중에서도 반미는 나의 최애 음식 중 하나이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베트남에서 쉽게 찾을 수 있고 맛도 좋은 바게트 빵에 각종 햄들과 어묵, 야채들 그리고 소스를 샤샤샥 뿌려서 종이에 무심하게 돌돌돌 말아서 주는데, 한 입 베어 물면 정말 콧노래가 절로 나올 정도로 맛있다. 여기에 매운 걸 좋아하면 베트남 고추를 추가해서 먹으면 중간중간 씹히는 매운맛이 더해 한층 더 맛있는 반미를 즐길 수 있다. 금액은 1,000원 내외다. 길거리에서 먹으면 1,000원도 안 하는 금액으로 사 먹을 수 있다. 배탈도 잘 안 나고 물갈이도 잘 안 하는 나로서는 싸고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어서 너무나 행운이다.



반미를 우적우적 먹으면서 노래를 한참 듣다가 보니 2차선 도로와 함께 바닷가가 나온다.

그러더니 덩그러니 길가에 세워줬다. 비가 오던 호치민과는 다르게 해양이 내리쬐는 무이네에서 배낭을 들쳐 메고 숙소까지 무작정 걸었다.

이곳은 그랩 바이크도, 택시도 잘 보이지 않았다. (이런 곳 택시는 사실 바가지라 잘 안 탄다)



구글맵에서는 호스텔까지 20분 정도라고 해서 호기롭게 걷기 시작했는데, 걷기 시작한 지 5분 정도가 지났을까? 등에서는 땀이 줄줄.. 머리에서도 땀이 줄줄.. 어깨는 빠질 것 같고.. 날씨는 너무 덥고.. 옆에는 차가 쌩쌩 달리고.. 아휴.. 가방 정말 던져버리고 싶은 걸 한 10번 참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초록색으로 상큼하게 무장된 호스텔에 들어서니, 귀여운 베트남 아가씨가 나를 맞아주었다. 다 죽어가는 내 꼴을 보더니 얼른 여권을 받아 들고 서류를 막 작성해주더니 에어컨 리모컨과 열쇠를 들고 방으로 데려갔다.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는데 너무 더워서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저기 미안한데.. 나 우선 맥주 한 병 줄 수 있겠니?”


“물론이지!!” 라며 나를 얼른 선풍기 앞으로 데려가더니 여기 앉아있으라고 하고 맥주 한 병을 가져다주었다.


잊지 못할 사이공 비어와 먼지가 가득 낀 선풍기


하.. 정말 살 것 같다. 한 30분은 바닥에 그냥 철퍼덕 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더위를 식히고 나서 계산을 하러 갔더니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한다.


그래도 금액을 지불하겠다는 나한테 활짝 웃어주면서 요즘 날씨가 참 덥다며 이것저것 조잘조잘 얘기를 시작했다. 결국 공짜 맥주만 얻어먹고 여기저기 정보만 얻어갔다.



날씨가 너무 덥기 때문에 찬물로 후다닥 샤워를 하고 다음날 갈 사막투어 예약을 하고 나니 딱히 할 게 없어서 또 리셉션으로 기웃기웃 거리며 나갔다.

귀여운 아가씨가 알려준 고급 정보에 의하면 리조트에 가서 수영장만 이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짐을 챙겨서 리조트로 갔다.


공짜로 이용할 수는 없고, 이용비를 내던지 아니면 일정 금액 이상의 음식을 주문하면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간단한 음료와 음식을 주문하고 수영장으로 들어갔는데, 돈 쓴 보람이 있었다.


아무도 없는 깔끔한 야외수영장에 바로 앞에 있는 프라이빗 비치도 이용 가능했다.

수영장에 뛰어들어서 더위를 식히고 한참을 물속에서 기웃거리다가 해변으로 나갔다.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 혼자 앉아있었던 시간은 무이네에서 제일 좋았던 시간 중에 하나였다


바닷가를 마지막으로 가본 게 언제였을까?

혼자서 바닷가를 가본 적은 아마도 내 인생에는 없었고 이 여행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내 인생에서는 아마도 영원히 없었을 것이다.


아무도 쳐다보지도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혼자 괜히 어색하게 쭈뼛쭈뼛 파라솔 아래 자리를 잡고 누웠다. 두리번두리번 둘러보다가 책을 펴서 읽기 시작했다. 친구에게 선물 받은 ‘1그램의 용기’를 읽다가 보니 저 멀리서 카이트서핑을 하는 사람들과 모래사장에 누워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래 나도 못할게 뭐 있어?


이어폰을 꽂고 모래사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예전에는 해를 피해 다니기에 바빴는데, 내리쬐는 태양이 싫지 않았고, 까슬까슬한 모래의 느낌도 좋았다.



해가 저물 때쯤에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비를 많이 맞지는 않고 숙소에 도착했고, 샤워를 마치고 어디를 가서 밥을 먹을까 구글맵을 찾아보니 숙소 바로 옆에 무이네에서 유명하다는 케밥집이 있었다.


비도 오는데 하필 찾은 곳이 무이네 맛집이라니, 정말 럭키한 하루다.


은근히 많은 양의 케밥이라서 숙소 돌아갈 때는 뒤뚱거리며 들어갔다



사람이 없는 케밥집에 앉아서 빗소리를 들으며 먹는 케밥은 맛집답게 정말 맛있었다.

사실 이런 스타일의 케밥은 처음 봤는데, 최근 유럽을 다녀오면서 자주 먹는 케밥이 다 이런 스타일의 케밥이었다. 그동안 내가 먹은 케밥은 뭐지?



4인실 숙소였지만 오늘 머무르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1인실 금액에 4인실 숙소를 나 혼자 쓰다니! 이건 뭐 하루 종일 좋은 일만 생기잖아?


아니면 내가 받은, 아니 내가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예전에는 그냥 감사한 줄 모르고 무심코 무시하고 넘어가지 않았을까? 아님 그냥 당연시 여기고 지나쳐버리지는 않았을까?


여행 이틀 차 나는 하루하루, 하나하나가 감사하다.


오늘 밤은 알람 소리 걱정 없이 푹 잘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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