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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tori Apr 04. 2020

기대가 없으면 행복은 두배다

동남아 배낭여행 - 베트남, 달랏 (1)


 달랏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아침 일찍 체크아웃 준비를 하고 로비로 나왔다.

 로비 카페에 앉아서 카페테리아에 있는 직원에게 커피 한 잔을 부탁하니, 아직 오픈 시간이 아니지만 잠시만 기다려보라며 커피 한잔을 금방 내줬다. 카이트서핑이 좋아서 자식들 다 키워놓고 베트남으로 온, 유럽의 이름 모를 곳에서 온 이방인은 구구절절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여행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모르는 사람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듣는 게 상당히 이상하고 불편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재미있는 책을 읽는 기분이었다. 상대가 자기의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나도 내 이야기를 했다. 뭐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냥 이제 여행을 시작했고, 나는 어디에서 지냈고 왜 여행을 하고 있는지 정도였다.

내가 이야기를 시작할 때 그 사람의 눈이 반짝거렸다. 아마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내 눈도 그렇게 반짝거리지 않았을까 싶다. 

 버스 시간이 다 되어서 커피값을 내고 일어나려는데 한사코 커피값을 받지 않았다. 이 호스텔 사람들 왜 이렇게 친절한 거야, 무슨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자꾸 나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커피값을 두고 나오려는데 한사코 쫓아 나와서 커피값을 다시 주고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아프지 말고 여행을 잘하라고 따뜻한 조언까지 해주었다.



 

사람을 아주 빽빽하게 태우고 열심히 달리던 "아주 좋은 버스"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안고 버스를 탔는데 무슨 작은 유치원 버스가 왔다. 맨 뒷자리에 앉는데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큰 버스를 타러 가기 전에 픽업 나온 차 인가보다 싶었는데 아니다.. 그냥 자꾸 달린다.

심지어 나보다 늦게 픽업되어 탄 동행은 차 문 바로 앞자리에 앉았는데 심지어 문이 잘 닫히지도 않았다.

길은 너무 험난하여 엉덩이가 아플 정도로 차가 흔들렸다.

“에이씨.. 속았다”

그렇다 속았다. 더 좋은 버스는 개뿔.. 최악의 버스를 탔다. 옆자리에 앉은 중국 친구에게 버스 상태가 너무 안 좋다고 어떻게 버스를 예약했냐고 하니, 심지어 우리보다 훨씬 싼 가격에 버스를 예매하고 탔다는 것이다.

1,400~1,500m의 고원지대에 위치해 있는 달랏으로 가는 길은 정말 험난했다. 길이라고 부를 수 없는 꼬불꼬불한 길을 달리는데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은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높은 산길을 올라가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싶은 생각에 아름다운 풍경은 무서운 풍경이 되었다.



 한참을 가다 버스가 멈췄다. 휴게소 아니 그냥 산에 위치한 한 산장에서 물을 사 먹으며 동행친구와 사기당해서 탄 이 버스에 대한 원망을 마구 쏟고 있는데 저 멀리에서 꼬물꼬물 한 강아지들이 아장아장 걸어 다니고 있었다.

 분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우리의 정신은 이 귀여운 꼬물이들에게 팔렸다. 한참을 꼬물이들하고 놀다 보니 다시 버스에 올라탈 시간이 되었다.

 제발 무사히 도착만 하게 해 주라는 기도를 읊조리고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한참을 가다 보니 저 멀리에 좋은 버스가 있었다! 우리가 원했던 큰 2층 침대버스! 그러나 가까이에 다가가 보니 2층 침대버스는 위태위태해 보였다. 이 산골짜기에서 크고 높은 버스는 속도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엉금엉금 거북이처럼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그 버스 보란 듯이 이 작고 방정맞은 버스는 좋은 버스를 추월해 신이 나게 달렸다. ‘어떻게 보면 큰 버스를 타고 갔으면 더 벌벌 떨면서 갔을 수도 있겠구나’.. 속으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참 간사하다.


30분 전만 하더라도 이 작은 버스에게 온갖 비난을 던지다가 내가 그렇게 원하던 ‘좋은 버스’를 보자마자 이 작은 버스를 탄 게 다행이라니..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라는 속담은 아마도 나를 두고 한 말 인 게 분명하다. 그래도 어때? 다 그렇게 사는 거지 뭐



 예정보다 달랏에 일찍 도착했다. 고산지대에 위치해 있는 도시라서 그런지 햇볕은 내려쬐는데 바람이 차가웠다. 동행친구와 같은 호스텔로 예약해서 함께 호스텔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려서 처음 본 달랏의 길거리


 달랏의 길들은 평지가 아니라 산을 타듯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즐비한 곳이다. 

 열심히 오르막길을 올라 호스텔에 도착하니, 우리의 숙소는 무려 3층이란다. 짐을 메고 낑낑대고 올라가서 호스텔 문을 열었는데 창문으로 보이는 뷰는 힘든 걸 다 잊게 해주는 뷰였다.


호스텔에서 처음 본 달랏


 달랏 시내가 보이는 호스텔에서 한참을 서서 쳐다봤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는 말이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기대가 없었던 만큼 행복은 두배가 된다’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무언가에 기대가 없다는 말은 사실 참 슬프다. 게다가 실망도 없다니.

 나에게 무언가에 기대를 한다는 건 하얀 도화지에 나만의 그림을 그리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행위다. 문제는 나의 도화지의 그림과 상대방의 도화지의 그림이 같기를 바란다. 

 '같지 않다 = 틀리다'라는 이상한 공식들이 머릿속에 박혀서인지, 그 공식으로 인해 사람들은 속상해하고 오해한다. 같지 않다는 게 틀리다는 게 아니라 다르다는 걸 인지하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 같지 않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에 만약 그 사람과의 나의 그림이 같으면 '우와 나랑 생각이 같군!' 아니면 '아 너는 그런 그림을 그렸구나?'라는 생각으로 바뀌면 사람들은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는 말 대신 '행복은 두 배가 된다’라는 말을 더 쓰지 않을까?


오토바이가 빽빽한 좁은 길에 소음들과 북적북적하고 끈적끈적한 날씨만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던 베트남의 새로운 모습에 나는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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