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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노을 Jan 28. 2022

여의도에만 가면 심장이 뛰었던 이유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공부했다. 취업을 위해 경영과 경제를 전공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때였지만, 나는 그저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좋았다. 세상을 수학적으로 해석하고 개선해 나아가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현대의 가장 실용적인 학문 중 하나를 지극히 순수한 관점에서 좋아했다.


칠판의 좌측 상단부터 우측 하단까지 수학 계산식으로 가득 차는 모습을 보면서 갖게 된 꿈이 하나 있었는데, 증권사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현실적인 생각에서 나온 꿈은 아니었다. 여의도의 밤을 밝히는 고층빌딩 속 증권사에 취업해 여러 개의 모니터를 통해 세계 각지의 주식 차트를 보며 커피 한 잔을 들이켜는 상상을 했다. 꽤 낭만적이었다. 선배들은 제정신이냐고 했지만, 나는 줄곧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 전문 트레이더가 된 내 모습을 상상했다.


내게 여의도는 꿈을 실현할 공간이었다. 공부가 잘되지 않을 때마다 여의도를 찾았다. 정기적인 동기부여는 도움이 되니까. 여의도역과 여의나루역 사이에 즐비하게 이어져 있는 고층빌딩 숲 사이를 이리저리 거닐었다. 고층빌딩 꼭대기에 붙은 무슨 무슨 증권, 무슨 무슨 투자 회사의 간판을 응시했다. 정장을 빼입고 여의도 곳곳을 빠르게 누비는 직장인들 틈에 섞여보기도 했다.



여의도공원에서 빌딩의 스카이라인을 바라본 적도 많았다. 그러다 해가 저물면, 환한 조명 한가운데서 세계를 상대로 금융 전투를 벌이는 투사 선배들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응원을 날렸다. 나도 언젠가는  선배들과 함께 금융시장의 최전선에 서서, 넥타이를 반쯤 푼 채 야근을 일삼고, 홍콩과 런던, 뉴욕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며, 바쁘고 빠른 나날을 살아갈 테니까. 기다리시라. 내 곧 갈 터이니. 여의도라는 장소가, 단어가, 그 분위기가 내 심장을 뒤흔들어 놓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전의를 불태우던 무렵, 실제로 증권사에서 일하는 선배 하나가 학교로 찾아왔다. 후배들에게 졸업 이후의 진로에 관해 이야기해주기 위해 방문한 것이었다. 교수님의 소개를 받은 그는 교단에 올라가자마자, 동그란 시간표를 하나 그려놓고는 자신의 24시간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하나씩 설명했다. 말투는 무미건조했지만, 그의 오른손이 그리는 선은 섬세하게 시간대를 갈랐다. 그 간격은 촘촘했고 글자는 빼곡했다.


선배의 말을 요약해보자면 이랬다. 선배는 매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났다. 졸린 눈을 비비고는 아파트 헬스장에서 한 시간쯤 운동을 했다. 건실한 외모를 갖추어야 신뢰성이 높다는 이유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자기 관리에 새벽의 한 시간을 투자했다. 출근은 여섯 시까지. 자리에 앉자마자 미국의 증권 시황을 체크하고, 한국 증시를 실시간으로 살핀 뒤 다른 아시아 국가와 유럽까지도 확인했다. 중간에 수십억을 들고 찾아오는 고객들을 상대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야근은 일상, 퇴근은 밤 열한 시. 집에 돌아가면 잠든 아이의 얼굴을 스윽 본 뒤에, 역시 피곤해하는 아내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는 너덧 시간 정도를 기절한 것처럼 잠에 빠진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리고 다시 새벽 네 시에 기상하는 루틴이 기계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졌다. 선배는 이 짓을 몇 년째 하고 있다며 진저리를 쳤다. 아니, 잘 나가는 선배와의 대화라더니. 이쪽 일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만 한 시간에 걸쳐서 하고 있다니.


고급 정장과 시계, 자동차로 한껏 꾸민 것도 사실상 고객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란다. 여기에 쓰는 돈이 상당해서 성과급이 아무리 높아 봐야 나가는 게 많다고도 했다. 선배의 주관적인 의견이었지만, 그의 생활은 내가 꿈꾸었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니다. 원래 내가 꿈꾸었던 게 이런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치기 어린 마음에 좋게만 생각하고 혼자서 환상에 젖어있었던 것은 아닐까. 선배의 모습이 회사의 소모품처럼, 부품처럼 느껴졌다. 콩깍지가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몇 번이나 여의도를 맴돌았다. 겁을 먹은 것이었을까. 결국 증권사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를 포기했다. 집에 쌓아두었던 수험서를 죄다 중고로 팔아치웠다. 책이 꽤 많았기 때문에 돈이 꽤 남았다. 카메라 한 대를 구매할 돈, 그리고 일주일 정도의 여행 경비가 수중에 들어왔다. 여행을 떠났다. 처음으로 혼자서 떠난 여행이자, 두 번째 전국 일주였다.


그 여행은 순조롭지 않았다. 야경을 찍기 위해 세워 둔 삼각대가 바람에 쓰러지면서 카메라가 심하게 부서지고 말았다. 운명이라고는 하지 않겠지만, 여행은 거기서 끝이었다. 나흘 만에 돌아온 집에서 나는 다시 여행을 준비했다. 긴 방황의 시작이 되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 증권사 직원에 관한 묘사는 순전히 선배 개인의 의견이었음을 밝힙니다. 일반적으로 증권사 직원이 전부 그렇다는 뜻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세요.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 실제로 경험한 적이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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