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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금미 Jul 23. 2020

I'm twenty four 난 수수께끼

아이유의 나이 타령이 반가운 이유

2020년 7월 23일, 침대 위에서 글을 쓰며 나의 스물넷이 지나가고 있다.


내가 유독 집착하는 게 있다. 날짜와 나이. 추억을 회상할 때 몇 월 며칠이었고 그때 내 나이가 몇 살이었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는 예술 작품을 향유할 때도 마찬가지다. 아, 이 노래는 2012년에 나왔고 이 아티스트는 이때 17살이었구나, 아 이 영화는 2010년에 촬영했고 이때 이 배우는 27살이었구나, 이런 식으로.


'대화의 희열'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김중혁 소설가의 말을 듣고 크게 공감한 적이 있다.


"인간은 연속적인 자아가 아니라 단속적인 자아인 것 같아요."


세상에서 제일 낯선 게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과거의 나라고 답할 것이다. 과거의 나를 떠올리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지금의 가치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서 느껴지는 단절감이 씁쓸할 때도 있지만, 위안을 줄 때도 많다. 인간은 변한다. 지금 내가 굳게 믿고 있는 게 나중에 가서는 아무것도 아닐 때가 많다. 그러니까 아직 재밌는 인생이다. 나에게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가 너무나 중요하다. 그것들은 모두 언제든지 변할 거니까. 오로지 지금을 사는 나만의 것이니까.


그래서일까. 나는 나이 타령하는 작품들이 참 좋다. 아예 올해 자신의 나이를 제목으로 삼는 경우는 더 좋다. 김성규의 솔로 앨범 「27」과 볼 빨간 사춘기의 '25', 키비의 '스물하나'가 그런 예다. 이렇듯 수많은 나이 타령 작품이 있지만, 이 분야의 최고봉은 단연 아이유다. 2015년에 발표한  '스물셋'을 시작으로 2017년 '팔레트',  올해 발표한 '에잇'까지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20대를 눈부시게 기록하는 아이유의 노래는 나에겐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나는 올해 스물네 살이다. 아이유의 나이 시리즈 중 내가 겪은 나이는 스물세 살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오직 '스물셋'에만 공감할 수 있다고 말하면 어딘가 서운하다. 나의 단속적인 자아는 나이만으로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어떤 면모는 스물셋의 아이유와 닮았고 어떤 면모는 스물다섯의 아이유와 닮았으며 어떤 면모는 스물여덟의 아이유와 닮았다. 아이유 역시 수많은 갈래의 자아와 싸웠을 것이며 그들 중 오직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있는 자신을 골라 노래를 만들고 불렀을 것이다.


노래 하나만으로 그 사람을 다 안다고 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일 년을 평가하기엔 3,4분 남짓의 노래는 너무나 짧다. 나는 아이유를 알지만, 인간 이지은은 모른다. 내가 보는 그녀는 그녀가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뿐이다. 그 외의 모습이 궁금한 건 사실이지만, 억지로 캐내거나 제멋대로 단정 짓는 건 폭력이다. 그렇기에 노래 가사만으로는 차마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는 나의 이야기로 대신 채울 것이다.


1. 스물셋


https://youtu.be/42Gtm4-Ax2U


「CHAT-SHIRE」는 여러 의미로 아이유에게 기념비적인 앨범이다. 그녀가 처음으로 프로듀싱을 맡은 앨범이며 전 국민이 합심한 듯 욕했던 앨범이다. 그때 나는 뭐했냐고? 수많은 대중에 섞여 같이 욕을 던졌다. 국민 여동생이라며 환호했던 과거는 완전히 잊어버린 채 말이다.  


아이유는 열여섯에 데뷔해서 열여덟에 탑스타가 되었다. 대중들에게 가장 강하게 각인된 이미지는 단연 '어린 소녀' 이미지다. 그러나 너무나 당연하게도 아이유도 나이를 먹는다. 국민 여동생이라는 타이틀은 절대 영원할 수 없다. 큰 슬럼프를 겪은 끝에 자신이 프로듀싱해야겠다고 다짐하며 발표한 '스물셋'은 국민 여동생 아이유를 종결하는 노래였다.


반응은 기괴했다. 보통 작품의 성공 여부는 흥행했냐, 아니냐로 나뉘는데 이 노래는 온 국민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는 점에서 흥행했지만, 그 관심이 모두 애정이 아니라 비난이라는 점에서 성공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사람들은 아이유답지 않은 영악함에 낯설어했고 모두가 함께 성장한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제제를 건드린 것에 분노했다. '스물셋' 뮤직비디오 곳곳에 숨은 로리타적 요소를 찾는 게 대국민 유행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아직도 이 앨범의 논란을 깔끔하게 종결짓지 못한다. 애초에 나한테 그럴 자격이 없기도 하다. 당시 나왔던 비판의 목소리가 모두 틀린 말이라고 함부로 말할 순 없다. 그렇지만 인정할 건 인정하기로 했다. 그녀를 손가락질하는 내 표정이 분노가 아니라 재미에 젖어있었다는 것을. 로리타 요소에 분노했던 나도 국민 여동생 이미지를 신나게 소비했었다는 사실을.


'스물셋'은 연초가 되면 전국의 스물세 살 덕분에 음원 사이트 상위권에 랭크된다.  '2015년 노래가 갑자기 1위를 한다고?' 싶은 마음에 오랜만에 들은 '스물셋'의 가사에는 대중들을 조련하거나 로리타 요소를 내세운 아이유가 아닌 스물셋, 나이 들어갊에 따라 자신을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는 아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혼란은 그만의 것이 아니었다.


어릴 때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굳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학교, 가정, 친구 등 내가 맺는 관계와 속한 소속이 나를 정의했다. 스물셋부터 견고하다고 믿었던 관계와 소속의 울타리가 깨지기 시작했다. 정신 차리니 어느새 대학교 졸업반이었고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서로 바빠 떨어지는 시간이 많았다. 주어진 과제 외에 내가 할 일을 알아서 찾아야 내 가치를 입증할 수 있는데 그게 뭔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학창 시절 내내 나는 참 말 잘 듣는 아이였다. 혼자 고민할 필요 없이 선생님 말이 다 옳다고 믿고 그대로 따르면 편했기 때문이다. 가정에서도 그랬고 친구 관계에서도 그랬다. 자존감이 몹시 낮았던 나는 내가 어떤 모습을 취해야 할지를 모두 타인의 판단에 맡겼다. 사람들의 호의적인 반응, 그게 내가 제대로 살고 있다는 지표였다. 그런데 스물세 살이 되자 그 지표가 얼마나 빈약한 건지 알게 되었다. 어른은 아닌 것 같은데 마냥 어린아이라고 할 수 없는 나이, 스물셋에 시작된 고민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한 떨기 스물셋 아가씨 태가 나네
다 큰 척해도 적당히 믿어줘요
얄미운 스물셋 아직 한참 멀었다 얘
덜 자란 척해도 대충 속아줘요


내가 아는 사람이어도 나를 함부로 평가하면 반발심이 들게 마련인데 얼굴도 모르는 생판 남이 그러면 얼마나 답답할까. 10대 여자 연예인은 어린 소녀로 대상화될 수밖에 없다. 그를 최정상의 자리에 올려놓은 '좋은 날'의 후렴이 '나는요 오빠가 좋은 걸 어떡해'이다. (이후에 '아이쿠'라고 귀여운 소리까지 낸다) 내가 아는 나와 대중이 바라보는 나의 괴리감은 수많은 연예인을 혼란에 빠트린다. 아이유는 '좋은 날'로 국민 여동생이 됐을 때부터 이와 같은 고민을 예능에서 몇 차례 토로하곤 했지만, 나는 너무나 가볍게 무시했다.


사실 「CHAT-SHIRE」 앨범 발표 전까지 아이유에게 2015년은 눈부시게 활약한 해였다. 드라마 <프로듀사>가 호평을 받았고, 무한도전에서 박명수와 작업한 '레옹'이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겁나는 게 없어요 엉망으로 굴어도 사람들은 내게 매일 친절해요
인사하는 저 여자 모퉁이를 돌고도 아직 웃고 있을까 늘 불안해요  


그렇게 호의적이었던 대중이 어떻게 한순간에 등 돌렸는지 알기에 이 가사가 더욱 씁쓸하게 다가온다.


신나서 아이유를 비난했던 열아홉의 내가 스물셋이 되었을 때 이 노래를 찾게 될 줄은 몰랐다. 그땐 멀게만 느껴졌던 스물셋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대중을 갖고 놀기는커녕 나 자신도 파악하기 힘든 스물셋이 얼마나 어린 나이인지 지금에야 뒤늦게 깨달았다.



*2편에서 '팔레트'와 '에잇'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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