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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금미 Jul 23. 2020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날

아이유의 나이 타령이 반가운 이유 2

2. 팔레트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자주 올린다. 지인들에게 추천하고픈 마음도 크지만, 사실 '이 음악을 좋아하는 나'에 심취해서 올리는 경우가 많다. 홍대 병처럼 독창적인 취향을 과시하고 싶은 욕구냐고 하면 그것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올릴 때 노래의 대중성을 고려해본 적은 없다. 그냥 나는 이 음악을 좋아하는 내가 좋다. 어느 장르든 상관없이 말이다. 노래뿐이랴. 책, 영화, 음식, 계절까지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게 너무 재밌다.


최근 김신회 작가의 <아무튼, 여름>이라는 에세이를 읽었는데, 비주류로 분류되는 여름 좋아 인간이라서 그런지 책을 빼곡하게 채운 여름 찬양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저자와 나 사이에 여름을 좋아한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접점이 없는데 책을 거의 다 읽었을 때는 저자가 마치 나와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책의 내용 대부분이 공감됐지만 유독 너무 내 얘기 같아서 무릎을 탁 칠 뻔한 부분이 있었다.





너무 공감돼서 인스타그램에 장문의 게시물을 올리기까지 했다. (첨부된 사진은 잘린 거다. 뒤에 더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호불호가 아주 불확실한 사람이었다. 음식도, 옷도 주어지는 대로 적당히 만족하면서 따랐다.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언가를 거부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나는 이것저것 만족하니 선택의 폭이 넓어 다행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적당히 만족하는 것과 내 취향이라서 좋아 죽는 것의 차이를 몰랐기 때문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https://youtu.be/d9IxdwEFk1c


2017년, 처음 '팔레트'를 들었을 때 아이유가 '스물셋'을 발표했을 때와 비교해서 많이 차분해졌다고 생각했다. 어떤 창작자든 대중의 취향과 자신의 취향 사이에서 어느 것에 맞춰야 할지 고민한다. '스물셋' 이전의 아이유는 대중의 취향에 맞춰진 가수였다. '스물셋'은 그랬던 아이유가 자신의 취향을 찾는 과정에서 나온 노래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당당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열거하는 스물다섯의 아이유가 흥미로웠다. 이 정도가 17년도 내가 '팔레트'를 듣고 느낀 감상의 전부다.


잊고 지냈던 '팔레트'를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는 몇 개월 전(시국이 멀쩡했을 때.....) 친구와 간 노래방이었다. 스물다섯을 코 앞에 둔 그는 이상하게 '팔레트'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울컥한다고 말한 뒤 곧바로 노래를 불렀다. 친구의 목소리를 통해 노래 가사를 음미하면서 좋아하는 것을 깨닫고 당당하게 말하는 행위에 대해 생각했다. 이 행위를 20대 중반이 되어야 비로소 해낼 수 있다는 게 슬프기도 하면서 이제라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취향이라는 게 참 재밌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누구는 A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누구는 B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취향은 모든 절대적인 기준을 무력화한다. 대다수가 열광하는 작품이라도 누군가에겐 졸작일 수 있고, 대다수가 싫어하는 작품이라도 누군가에겐 명작일 수 있다. 논리적인 설명은 필요 없다. 단지 '내 취향이 이래' 이 한 마디면 모두가 납득할 수 있다.


남의 취향에 맞춰주기만 하다가 내 취향을 찾았을 때, 그것을 당당하게 입에 올리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내 정체성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대 중반의 취준생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 쉽다. 나를 지운 채 회사에 맞는 나를 어필하다 보면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인 거지?' '인생을 잘못 살았나?'라는 회의감이 들어 수시로 괴로워진다. 그럴 때 내 취향의 예술 작품을 향유하거나 좋아하는 공간에서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면 마음이 놓인다. 취향을 즐길 때 내가 가장 나다워지기 때문이다. 그때만큼은 있는 그대로의 내가 존중받는 기분이다.


여름, 독립 영화관, 걷기, 데미안, 잡지, 물, 나무, 아메리카노. 아이유를 따라 나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맥락 없이 열거해보았다. 이제 조금 나를 알 것 같다.


3. 에잇


아이유의 음악을 즐겨 듣긴 하지만, '스물셋' 당시 대중에 섞여 비판했던 것처럼 그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랬던 내가 브런치의 첫 번째 글 소재로 아이유를 택하게 된 것에는 이 영상의 영향이 컸다.


https://www.youtube.com/watch?v=eqvuQ2KlK3w


뮤직비디오를 해석하는 유튜브 채널 '김일오'의 영상을 즐겨 본다. 유튜버의 해석이 정답은 아니지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뮤직비디오에 해석으로써 숨결을 불어넣어주는 행위는 정말 매력적인 것 같다.


'에잇'은 발매한 지 두 달 반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음원차트 상위권에 있다. 아이유와 방탄소년단 슈가가 합작했으니 당연한 결과겠지만, 그런 거 제쳐두고 보더라도 노래가 너무 좋으니 자주 들을 수밖에 없다. 음원이 발매됐을 때 별생각 없이 재생 목록에 담곤 멜로디가 신나다며 흥겹게 즐기기만 했다. (해당 노래가 나이 시리즈에 속한 줄도 몰랐다.) '김일오'의 영상으로 밝은 멜로디 뒤에 숨은 슬픈 가사를 알게 되니 아무 생각 없이 즐기기만 했던 '에잇'이 전혀 다르게 들렸다.


'에잇'의 가사 내용을 짧게 정리하면 무채색의 현재를 견디지 못하고 오렌지빛 과거를 그리워하는 마음일 것이다. 찬란했던 어제는 먹구름 가득한 오늘을 더 비참하게 한다. '에잇'을 이루는 밝은 멜로디, 뮤직비디오 속 아이유의 환한 미소는 모두 과거의 것이다. 최근 내가 느끼는 감정과 너무나 똑같아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석 영상에서 앨범에 대한 아이유의 코멘트를 인용했는데, 그 내용이 제법 흥미로워 개인적으로 더 찾아보았다. '에잇'은 물론 「Love poem」,「Palette」까지 아이유가 곡에 대해 직접 설명한 글을 모두 읽었다. 읽으면서 느낀 감정은 '동질감'이었다. 일상생활에서 온갖 생각이 자꾸 드는 사람, 그 생각 때문에 괴로우면서도 그게 곧 나 자신이라 놓을 수 없는 사람,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밖에 없는 사람. 아이유도 나처럼 그런 부류의 사람이겠구나 싶어 반가웠다.


'에잇'의 해석 영상을 보던 당시 나는 슬럼프에 막 빠진 상태였다. 학생 때부터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숨 가쁘게 달리다 번아웃을 맞고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휴식을 선언했다. 처음 며칠은 달콤했다. 이런 게 여유구나, 싶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니 번아웃이 떠나간 자리를 우울과 무력감이 채우기 시작했다. 휴식 시간을 모두 생각하는 시간으로 쓴  탓이었다. 매일 사색하면서 과거의 상처, 그로 인해 갖게 된 방어기제 등을 떠올리니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언니가 내게 그런 생각은 굳이 왜 하냐고 했다. 나도 그만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나는 원래 생각이 많은 인간이다. 바쁜 일과로 대충 막아두었던 생각들이 휴식 시간을 만나 폭포처럼 쏟아졌을 뿐이다.   


금방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도, 두 달이 지나도 우울은 수시로 파도처럼 나를 덮쳤다. '힘든 일도 없는데 왜 자꾸 우울하지?' '왜 나만 이렇게 가라앉아있지?'라는 생각으로 나를 고립시켰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무력감과 무기력, 그리움을 표현하는 아이유의 '에잇'을 들으면 범접할 수 없는 스타로만 보였던  아이유와 느슨한 연대를 느낄 수 있어 조금이라도 마음이 진정된다.


나는 이 노래가 나이 시리즈에 속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고맙다. '에잇'에 담긴 무력감과 무기력, 과거에 대한 그리움은 스물여덟 살 아이유만의 것이지 영구적인 게 아니다. 지금 나를 괴롭히는 우울감, 무기력, 미래에 대한 불안도 스물네 살인 나만의 것이다. 언젠가는 자취를 감추거나 다른 모습으로 바뀔 것이다. 오렌지빛 석양을 바라보며 '에잇'을 들으면 그 믿음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


 



나는 1997년 2월 23일에 태어났다. 고작 일주일 차이로 3월 이전에 태어나 빠른 제도에 묶여야 했다. 그래서 오랜 시간 내 나이를 말할 때 96년생 나이로 말해야 할지, 97년생 나이로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한 살 높여 말하자니 거짓말하는 것 같고 원래 나이로 말하자니 96년생 동급생들이 눈에 밟혔다. 절충안으로 택한 게 학년이었다. 몇 살이니? 초등학교 3학년이요.


올해 드디어 학생 신분에서 벗어났다. 이제 더 이상 학년으로 나이를 대체할 수 없다. 흔히 말하는 '족보 브레이커'가 되지 않으려면 96년생 나이로 사는 게 편할 수 있지만, 고민 끝에 97년생 나이를 선택하기로 했다. 97년에 태어났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올해 나는 스물네 살이다. 이 사실을 힘주어 말하는 것만으로 나의 정체성이 확고해지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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