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꽃송이 Jul 13. 2019

나, 사실 데이트폭력의 피해자였어요

그래서 여행을 갔었어요

지금에서야 내게 그런 일이 있었었다고 조심스럽게 꺼내는 이유는, 단 하나다. 

내가 지금 정말 잘 살고 있다고, 잘 이겨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어서.


스물 일곱 즈음, 만나던 친구가 있었다.

정말 이상하게도 그 애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지만 둘이 있을 땐 화가 나면 본인의 화를 주체하지 못했고 그건 폭력으로 내게 날아들었다.


물론, 맨 정신으로.


나는 그때 돈도 잘 벌었고, 예뻤고,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었지만 사랑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하루 건너 하루에 다가오는 폭력 앞에 삼 년 동안 잔인하게 무너졌다. 


몸에 피멍이 드는 날도 잦았고, 응급실에 실려가는 일도 있었으며, 매일매일 지옥에서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 같았지만 나는 그 때 그 애가 너무 좋아서 그 폭력을 다 견뎌냈다. 서울에서 혼자 오랫동안 살아온 나에게 그땐 사랑이 전부였기 때문에 그 애가 그렇게 내게 손을 댈 때면 소리 한번 지르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한다면 언젠가 그 애도 고쳐질 것이라 생각했다.


죽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내 생활은 점점 피폐해져 갔다. 아니 망가져갔다는 표현이 맞을까?

그 애는 분이 풀리면 그제서야 내 눈물을 닦아주고 미안하다며 사과를 해댔는데, 나는 그걸 보며 일말의 기대를 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폭력의 끝은 여행이었다. 그애와 함께 여행을 참 많이 다녔지만 즐거운 기억이 별로 없다. 온몸이 부서진채로 가는 여행은 여행이 아니라 의무였다. 없던 일로 만들려는 듯 여행에서만큼은 그 애는 내게 잘했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그 일이 내 가슴에 응어리가 되어 쌓여가고 있을 때쯤, 처음으로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그 애와 맞서 싸웠다. 


살고 싶었다.


역부족이었지만 손을 막아내고 발길질에 채이면 나는 그 발을 깨물었다. 

그리고 그러는 순간부터 나는 그 애를 포기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서서히 끝이 났다.


그 이후로 나는 어두운 곳에서 혼자 자지도 못하고 누가 손이라도 올리면 움츠러 든다. 그리고 누군가 내게 적대감을 가지고 다가오면 나는 불같이 폭발해 버리는 일도 잦다. 


그래, 트라우마다.


그 트라우마를 이겨내기까지 무려 5년이 걸렸다. 아니 어쩌면 계속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세계 여행이라는 도전을 하면서 나는 사랑을 하려면 내가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를 지킬 사람은 이 세상에 정말 나 뿐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지옥에서 나는 여행을 통해 빛을 향해 기어나왔다. 

작가의 이전글 나를 태워주세요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