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포르투
‘힐링 플레이스’
많은 여행자들이 포르투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는 이야기였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왜 수많은 여행자들이 포르투라는 그 작디작은 도시를 극찬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가이드북에서도 한 페이지 남짓으로 소개하고 있는 그 곳에서 5일을 머물기로 결정했다.
마드리드에서 9시간가량 버스를 타고 달려 도착한 포르투는 조용한 도시였다. 밤 9시면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아 거리는 어두워졌으며 화려한 클럽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마드리드에서는 흔했던 젊은 여행자들이 술에 취해 시끄럽게 거리를 돌아다니는 모습도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마드리드의 시끄러운 분위기에 적응되어 있던 탓일까. 포르투에 도착한 첫 날, 나는 포르투가 꽤나 심심한 도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바로 이 것이 포르투의 매력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포르투에 머물던 시간 동안 나는 매일같이 도나우 강가로 향했다. 강가에 있는 벤치에 앉아 버스커들의 노래를 들으며 근처 가게에서 5유로에 산 피자 한판을 해치운다. 피자가 충분히 소화되었을 쯤, 동 루이스 다리를 건너 포르투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힐 가든으로 향한다. 힐 가든의 초록빛 잔디밭에 누워 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온다. 나는 그렇게 대부분의 시간을 그 곳에 앉아 멍을 때리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그냥 앉아 있거나 누워있었다.
포르투에서,
나는 아무것도 안 했다.
이는 나뿐만이 아니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자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앉아 있는 모습을 포르투에서는 쉽게 볼 수 있었다.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햇빛에 반짝이는 도나우 강을 바라보며, 소중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때로는 와인 한 잔을 기울이며 그 자리에 그냥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게 바로,
포르투가 사랑스러운 이유였다.
여행을 하다보면 그런 생각이 들때가 있다.
'이왕 온 거 유명하다는 곳은 다 가봐야 하지 않을까? 이 박물관이 정말 유명하다던데.'
이럴 때면 나도 모르게 공원에 앉아 노래를 듣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 채 별로 관심도 없는 박물관으로 향하게 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여행을 하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유명한 박물관을 구경할 때가 아니라 공원에 누워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는 하늘 위 구름을 바라보던 순간이었는데도.
그리고 내가 만난 포르투는 이런 여행자들에게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주고 있었다. 어떠한 의무감도 없이 도나우 강가에 앉아 멍 때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기 충분한 곳.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곳. 포르투는 그런 곳이었다. 어쩌면 '힐링'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 시간과 포르투 와인 한 잔.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