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포르투
“소매치기는 그냥 진짜 운인 것 같아요.”
그래, 분명 이 말은 3시간 전 내가 내뱉은 것이렸다. 소매치기는 조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운이 더 중요한 것 같다고 말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아무리 핸드폰 계산기를 두드리며 계산해보아도 200유로가 비었다. ‘설마’하는 마음으로 배낭 구석구석을 다 뒤져본들, 사라진 200유로가 갑자기 나타날 리 만무했다. 10유로, 20유로도 아니고 200유로라니…. 한화로는 30만원에 육박하는 돈이다. 한 푼 한 푼이 소중한 소전여행자에겐 정말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도대체 언제 사라진 거지.’
진정하고 생각해보자. 설마 그땐가. 포르투에 온 둘째 날, 백팩을 메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동 루이스 다리를 건너다가 문득 등을 보니 가방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그때는 '내가 바보같이 지퍼를 안 잠갔나보다' 하고 화들짝 놀라며 가방 문을 닫았었는데…. 만약 그때 누군가가 내 가방을 열고 200유로를 가져간 거였다면? 그게 소매치기였다면? 이렇게 바보 같을 수가. 이번이 세 번째 유럽여행이라고 방심하고 있던게 잘못이었나 보다. 파리에서 안 털렸다고, 포르투에서도 안 털리란 법은 없는데. 방심할 때 털린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하늘을 날 듯 좋았던 기분이 순식간에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이건 방심의 대가치곤 너무 크잖아.'
10유로를 아끼기 위해 도나우 강에서 30분은 떨어진 곳에 숙소를 잡고 비싼 레스토랑 대신 1유로짜리 빵이나 직접 만든 파스타로 끼니를 해결했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200유로면 도나우 강가가 바로 보이는 숙소에서 호캉스를 즐길 수도 있었을 텐데.
‘나 털렸나봐.’
허탈한 마음에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괜히 카톡을 보냈다. 사라진 돈을 찾겠다고 헤집어놓은 배낭을 정리하며 혹시나 200유로가 갑자기 나타나진 않을까 기대했으나 역시나, 헛된 기대였다. 배낭에는 200유로는커녕 굴러다니는 동전 하나 없었다. 바닥으로 치달은 기분을 다시 끌어올리는 방법은 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며 애써 위안하는 법 뿐이었다.
‘그래, 그깟 200유로로 내 기분을 망치지 말자. 카드와 여권은 무사하잖아. 여권이나 카드를 털렸다면 나는 정작 이번 여행의 목적인 모로코에는 가보지도 못 했을 거야.’
200유로는 잊자.
하지만 안타깝게도, 가난한 소전여행자에게 200유로는 쉽게 잊을 수 있을만한 금액이 아니었다. 그 날 이후로 한동안 나는 ‘200유로만 있었더라면’하는 생각을 쉽게 떨쳐낼 수 없었으며 배낭 한 쪽에 팽개쳐두었던 여행용 복대는 나의 소중한 여행메이트가 되었다.
"소매치기는, 방심하면 털리더라구요."
그리고 또 다시 누군가와 '소매치기'에 대해 이야기할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소매치기는 운'이라는 말 대신 '방심하면 털려요'라고 말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