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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임 Jul 10. 2024

자전거여행의 복병은 '비'

부스톤~이스트라브샨 (Buston~Istravshan) | 타지키스탄





2023.07.04~07.06





우즈베키스탄에서 타지키스탄으로 넘어가기 위해 Oybek 국경으로 향했다.

육로로 국경을 넘는 일이 오랜만이라 약간 긴장이 되었다.

국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설 환전상에게 남은 숨(우즈벡 화폐)을 소모니(타지키스타 화폐)로 바꿨다.

소모니를 손에 들고 있으니 타지키스탄에 가는 것이 실감이 났다.

긴장했던 것과 다르게 별 어려움 없이 입국 심사가 끝나고 타지키스탄에 들어섰다.

지척에서 국경 하나 넘었을 뿐인데 분위기가 묘하게 달라졌다.

한산한 국경을 뒤로하고 오늘 목적지인 부스톤으로 향했다.




부스톤은 국경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었다.

얼추 해가 질 시간이기도 했고 원래 오늘 타지키스탄에 들어오려던 계획이 없었기에 조금 일찍 잠자리를 찾기로 했다. 지도에서 살펴보니 마을이 워낙 작아서 호텔이나 숙박 시설이 없는 듯 했다. 캠핑하기 괜찮을 것 같은 공터를 찾아가는 도중 학교 비슷한 건물이 보여서 일단 들어가 벤치에 앉았다.

잠시 숨을 고르는데 지나가던 할아버지께서 날 발견하곤 관심이 있으셨는지 내게로 와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통하지도 않는 서로의 언어로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가다가 이곳에 텐트를 쳐도 되는지 물었다.

할아버지는 잠시 고민하더니 여긴 위험하고 본인을 따라오라고 했다. 무거운 자전거를 이끌며 따라가니 할아버지가 도착한 곳도 학교와 비슷한 곳이었다. 할아버지는 학교의 관리인이셨고 아이들이 사용하는 공간을 하룻밤 제공해주셨다.




해가 질 때까지 할아버지가 주신 사과도 먹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슈퍼에서 저녁으로 간단하게 먹을 요깃거리를 사와서 둘러 앉아 함께 먹었다.

서로 언어가 달랐기에 온전한 대화라곤 이어질리가 없었고, 그럼에도 중간중간 긴 침묵이 어색하게만 느껴지진 않았다. 그건 아마도 낯선 이방인에게 하룻밤의 친절을 베푼 이들의 따스한 마음 덕분일 것이다.



밤새 무척이나 더워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내내 뒤척이다 동 틀 무렵 일어나 빠르게 출발 준비를 마쳤다. 한낮 기온이 너무 높아서 새벽같이 움직이지 않으면 계획한 거리를 하루 내에 갈 수가 없다.

잠 잘 곳을 찾느라 난처해하던 자전거 여행객에게 기꺼이 하룻밤 잘 곳을 내어준 친절함에 감사 인사를 드리고 서둘러 출발.




오전 9시가 넘어가면 슬슬 더워지기 시작하면서 10시만 되어도 참을 수가 없는 불볕더위가 밀려온다.

도로가에 나무 한그루 없는 땡볕을 내내 달리다가 이런 그늘을 만나면 무척이나 반갑다.

작은 간이정류장이 내어준 그늘에 앉아 물도 마시고, 간단한 간식도 먹으며 더위를 식힌다.

한국도 여름엔 덥다 덥다 하지만 여기 오니 그 더위는 더위도 아닌 것 같다.




멋쟁이 타직아저씨

인적이 드문 곳에서 자전거 여행자는 더욱이 눈에 띄게 마련이다.

혼자 조용히 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누군가 내 옆에 와있다.

버스를 기다리시는지 가만히 앉아있다 나를 보곤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역시나 언어는 통하지 않았기에 말을 주고받는다기보다는 웃음소리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희한하면서도 익숙한 대화였다.

나의 행색을 유심히 살피더니 머리에 얹혀진 선글라스에 시선이 멈춘 아저씨가 한번 써보고 싶다기에 기꺼이 선글라스를 내어드렸다. 그 광경이 재밌기도 하고 즐거워서 사진도 한장 찰칵 남겼다.




타지키스탄의 통신사 '메가폰'에서 유심발급

오늘의 목적지는 부스톤에서 50km 떨어진 후잔트(Khujand). 후잔트는 타지키스탄에서 수도 두샨베에 이어 두번째로 큰 도시이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이후로 오랜만에 방문하는 대도시이자 타지키스탄에서 처음으로 방문하는 큰 도시로, 후잔트에서 꼭 해야할 일은 바로 타지키스탄 유심 만들기.

인터넷이 되지 않으니 현지인들과의 소통은 물론 다양한 필수 정보를 찾는 것에 한계가 컸다. 9년전 처음으로 유럽 자전거 여행을 떠났을 때에는 무슨 배짱이었는지 유심(인터넷)없이 세 달내내 여행을 했는데 그 이후로 웬만하면 여행지에서 꼭 유심을 만드는 것이 어떤 하나의 법칙이 되어 버렸다. 인터넷없이 여행 한다는 것은 극심한 고생길이라는 것을 세 달 내내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후잔트 시내에 도착해서 미리 찾아둔 호스텔에 간단하게 짐을 풀고 가장 먼저 유심을 만들기 위해 통신사로 향했다. 타지키스탄의 대표 통신사라면 TCell과 메가폰이 가장 유명하다. 나는 온전히 파미르 여행을 위해 타지키스탄에 방문한 것이기에 웬만하면 파미르에서도 인터넷이 터지는 통신사를 원했다. 나보다 먼저 파미르를 다녀오신 분 말씀에 의하면 beeline 통신사가 괜찮다고 들어서 찾아봤지만 숙소 주변엔 대부분 메가폰 통신사였다. 하는 수 없이 제일 가까운 통신사를 방문해서 유심을 만들었는데 외국인임에도 발급 방법이 무척이나 간편했다. 중앙아시아 직전에 인도를 여행했는데 인도는 외국인이 주요 통신사 유심을 발급받기가 매우 까다로워서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타지키스탄의 유심 발급 시스템에 감동까지 할 지경이었다.




후잔트에서의 첫 식사. 플롭(Plov)

제일 중요한 일이자 걱정거리였던 유심 발급을 마치자 뒤늦게 허기가 몰려왔다. 그제서야 점심시간이 한참이나 지난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후잔트에서의 첫끼를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오는 길에 보았던 레스토랑에 들어가 플롭(Plov)과 논(Non)을 주문했다. 플롭은 타지키스탄을 포함한 중앙아시아의 대표 음식으로 쉽게 말하면 중앙아시아식 볶음밥이라고 할 수 있다. 쌀과 각종 야채, 고기를 넣어 볶아 만든 요리인데 여행오기 전부터 가장 먹고 싶은 음식으로 꼽기도 했다.

후잔트에서 처음 먹어보는 플롭은 이후 여행 내내 샤슬릭과 함께 내 마음속 1,2위를 다투는 음식이 되었다. 기름지면서도 부드럽고 짭쪼롬하면서도 달달한 것이 너무나 내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이었다. 여행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지만 지금까지 먹었던 중앙아시아 음식들이 대체적으로 내 입맛에 맞아서 참 다행이었다. 여행지에서 음식이 입에 안맞는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중앙아시아 여행을 시작한지 이제 겨우 5일째, 여행 정비하느라 머물렀던 타슈켄트에서의 시간을 제외하고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것만 따지면 겨우 3일째인데 벌써 두 다리가 새빨갛게 익었다. 햇볕이 제일 강한 정오를 기준으로 두어시간을 그늘에서 쉬는데도 오전과 오후의 볕이 얼마나 강한지 피부가 금세 익어버린다.

자전거 여행을 할 때에는 노지 캠핑으로 씻을 여건이 안되어도 아침에 일어나 얼굴에 꼭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르는 편이다. 이것 역시 9년 전 첫 자전거 여행에서 몸소 깨달은 사실에 의한 내 여행의 법칙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팔이나 다리에 사용하는 선크림은 극히 아끼곤 했는데 그 이유가 꼭 선크림이 아까워서만은 아니었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빨갛게 익은 팔과 다리의 살갗에 쾌감을 느낀다. 이건 자전거 여행을 하는 이에게 주어지는 훈장같은 거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햇볕에 노출된지 얼마 되지 않아 빨갛게 익은 살은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검게 변해 여행이 끝날 무렵에는 남의 살을 가져다 덧댄 것처럼 새까매지는데 왠지 나는 그 모양새가 무척 그럴싸하고 멋있게 느껴졌다. 하지만 피부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약해지는지 이번 여행에 다녀와서는 이전과 다르게 피부가 뒤집어져서 앞으로는 팔과 다리에도 선크림을 꼼꼼히 바르리라 다짐하게 되었다.




판즈샨베 바자르(Panjshanbe bozor)

점심을 먹고는 후잔트에서 가장 큰 시장인 판즈샨베 바자르(Panjshanbe bozor)에 다녀왔다. 판즈샨베란 이름이 수도인 두샨베와 비슷한데 실제로 두 명칭 모두 타지키스탄어로 요일을 뜻한단다. 두샨베는 월요일, 판즈샨베는 목요일. 예전에는 두샨베에선 월요일에 장을 서고 판즈샨베에서 목요일에 장을 서서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중앙아시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바자르, 즉 시장 구경이다. 바자르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내에서도 각 나라 별, 도시 별 바자르 특징이 조금씩 달라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도 초르수 바자르가 유명한데 타슈켄트에 있는 동안에 자전거 여행 준비에 여념이 없어서 관광은 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나에겐 판즈샨베 바자르가 중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방문하는 시장이 되었다. 첫 바자르라 그런지 규모면에서 굉장히 크게 다가왔다. 실내 외 통들어 시장 규모가 굉장히 컸고 파는 물품도 정말 다양했다.

시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라이딩하다 먹을 간식으로 커피땅콩(단 코팅이 된 땅콩)도 사고 납작복숭아아 오이도 샀다. 전체적으로 과일과 야채값이 무척 저렴했다. 복숭아는 1kg에 13 소모니로 우리돈 1,500원 정도였고 오이는 3개에 1소모니, 우리돈 100원 정도였으니..!




다음날 아침 일찍 호스텔 떠날 준비를 마쳤다. 그래도 타지키스탄 제 2의 도시인데 조금 더 머물며 관광도 하고 여유 부릴 수 있지 않느냐 싶겠지만 마음이 급했다. 실질적으로 이 나라에 온 목적인 파미르는 얼마의 기간이 걸릴지 직접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었고 타지키스탄의 무비자는 30일이었으므로 다른 곳에서 시간을 지체할 심적 여유가 없었다. 나는 얼른 두샨베로 가서 파미르를 위한 준비를 마쳐야했고, 그 길을 기간내에 달려야했다.




타지키스탄에 넘어와서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보지 못했던 바위산이 사방으로 보였다. 나무 한 그루 없이 황량한 바위산을 보니 사진으로만 보던 파미르의 풍경이 겹쳐보여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파미르의 나라 타지키스탄에 있다니, 자전거를 타고 여길 왔다니!




시장에서 산 달달한 땅콩, 그늘에 앉아 먹는 맛이 좋다.

자전거 여행의 가장 큰 복병은 아무래도 '비'라고 생각한다. 출발 전 일기예보를 보니 오후 늦게 비소식이 있다. 하지만 그런 일기예보가 무색하게 오전 내내 해가 쨍하고 숨이 막힐 듯 덥다.

그늘이 나오면 자주 자전거를 멈추고 쉬었다. 쉬는 중에는 어제 시장에서 산 땅콩을 집어 먹으며 팟캐스트를 들었다. 이런 시간엔 가끔 '나는 왜 자전거 여행을 하는가?'와 같은 근원적 물음이 머릿속에 떠다닌다.




드넓게 펼쳐진 들판 앞 한 자그마한 민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나타난 당나귀를 탄 소년.

소년은 짐이 주렁주렁 매달린 자전거가 신기한지 앞서가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 나를 쳐다보다 이내 당나귀의 머리를 돌려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자신의 핸드폰을 들어보이며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당나귀 탄 소년이 신기했고, 그 소년은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를 이상한 자전거를 끌고 다니는 나를 신기해했다. 그렇게 우리는 어떤 희미한 동질감을 서로의 핸드폰에 사진으로 남겨뒀다. 안녕, 당나귀를 탄 소년.




갑자기 쏟아진 거센 비.

오늘따라 유독 축축 쳐지는 몸을 애써 이끌며 페달을 밟는데 어느새 투둑투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빗방울이 굵었다. 아직 잘 곳도 찾지 못했고 주변은 허허벌판, 쭉 뻗은 도로뿐이었다. 급하게 지도를 켜서 가장 가까운 마을을 검색해 무작정 그 쪽으로 페달을 밟았다. 민가가 보이기 시작하자 빗방울이 더욱 굵어졌다. 몸 하나 가릴 지붕을 찾기도 전에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급하게 우비를 꺼내입고, 있으나 마나 한 작은 나무 밑에 서있으려니 가까운 집 대문 앞에 서 있던 한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할아버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이리로 오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위기 상황이면 발휘되는 괴력으로 그 무거운 자전거를 거의 들듯이 밀어 재빠르게 처마 밑으로 달려갔다. 아주 짧은 거리였음에도 나와 자전거는 금세 흠뻑 젖었다.


대문 앞에 할아버지와 나란히 서서 마당의 양철지붕을 내리치는 빗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니 이 빗줄기에 밖에 있었다면 어땠을지 상상도 하기 싫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라 혼자 가만히 몸서리를 쳤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낯선 이방인을 흔쾌히 집으로 들인 할아버지의 인류애에 감사했다. 할아버지는 비를 피할 지붕 뿐만 아니라 멜론 한 통도 내어주셨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이주한 뒤 이곳 타지키스탄에 자리 잡아 직접 농사지은 거라며 건네주신 멜론은 할아버지의 마음만큼이나 달았다. 나의 짧은 우즈벡어에도 크게 기뻐해주신 할아버지를 뒤로하고 비가 잠잠해진 틈을 타 서둘러 페달을 밟았다.

나는 어쩌면 이런 예상치못한 소중한 인연을 만나려고 자전거를 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중앙아시아에서는 결혼이 많은 사람들의 일생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듯 하다. 보통 20대 초 중반이면 애진작 결혼을 하기 때문에 서른을 훌쩍 넘긴 내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하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근처에 호텔이 있는지 물어보기 위해 들어간 주유소에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낯선 이의 등장에 하나둘 모여든 사람들이 열댓명이 되어갈 즈음 여기저기서 궁금증 가득한 질문이 터져나왔고 그 중 누군가가 결혼에 대해 물어왔다. 결혼하지 않았다는 내 대답에 대한 그의 또 다른 질문이 나를 소리내어 웃게 만들었다.

한국에서도 이렇게까지 결혼에 대한 압박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난생 처음 와 본 나라, 난생 처음 방문한 어느 마을에서 이렇게까지 직접적인 결혼에 대한 압박을 받게 되다니. 웃음이 나지 않을 수 없는 재밌는 상황이었다.




비가 오다 말다 반복하여 최대한 가까운 곳에 있는 호텔에 들어왔다. 이스트라브샨 도심을 약 8km 앞둔 어느 조용한 동네의 호텔이었다. 식당 하나 제대로 없는 곳에 호텔이 있는게 의아했지만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 지척에 내 몸 하나 뉘일 방이 있다는 건 크나큰 축복이다. 자전거 여행을 할 때에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큰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이것 역시 내가 자전거 여행을 지속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하며 오늘 하루도 무사히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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