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효임 Jan 31. 2024

prol. 집순이는 집에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아?

집순이가 중앙아시아로 가기까지






처음 자전거 여행을 시작했던 2011년 이후 자주는 아니어도 꾸준히 국내로, 해외로 자전거와 함께 여행을 이어왔다. 이런 이력(?)을 아는 사람들은 내가 엄청나게 활동적인 사람인 줄 안다.


하지만 나는 집순이다.


그냥 집순이도 아니고 '집순이,집돌이 콘테스트가 있다면' 모두를 제치고 당당하게 1위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집순이. 한번 집에 틀어박히면 하루, 이틀은 기본이고 몇 주일이고 몇 달이고 집에서 꼼짝 않고 보낼 수 있다.

대학생 때는 툭하면 주변 사람들과 연락을 끊고 집에 틀어 박혀서 하루 종일 무한도전을 보면서 깔깔거리는 게 유일한 일과였다. 거의 히키코모리 급으로 집 밖을 잘 나가지 않는 내가 우연히 자전거로 제주도 일주를 하게 되면서 '자전거 여행'은 나와 떼놓을 수 없는 단어가 되었다.



나의 첫 자전거 여행, 대한민국 제주, 2011



집에 있는 건 편안했지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진 못했다. 자전거 여행은 태어나 처음으로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준 수단이었다. 자전거 안장에 올라 온몸으로 바람의 감촉이라던가 촉촉이 젖은 흙냄새, 그날의 공기 같은 것들 혹은 며칠 동안 씻지 못해 코를 찌르는 땀 냄새, 터질 것 같은 허벅지의 고통, 살갗이 벗겨질 것처럼 뜨거운 태양 같은 것들을 느끼고 있노라면 나와 세계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 이후로 방학만 되면 국내 곳곳 자전거를 타고 떠나곤 했고, 졸업을 앞둔 해에는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은 마음에 휴학을 하고 자전거와 함께 유럽으로 떠나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일상의 따분함이, 권태로움이 나를 파고든다고 느껴질 때면 언제나 자전거를 가지고 새로운 나라로 떠났다.


그러나 한번 집순이는 영원한 집순이라 집 밖을 나간다고 해도 집순이가 아닌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면, 여행을 떠나서도 얼마든지 집순이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9번째 자전거 여행, 키르기스스탄, 2023


자전거 여행을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텐트를 치고 잠을 자는 캠핑을 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나는 텐트에서도 몇 날 며칠을 꼼짝없이 누워있던 적도 있다.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일을 제외하면 시체처럼 꼼짝없이 누워 핸드폰 영상이나 다운 받아놓은 e북만 들여다보는 것이다.

텐트가 아닌 숙소를 잡기라도 하면 물 만난 물고기 마냥 기존의 집순이 기질이 그대로 나와버린다.

1박만 하기로 했던 계획은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연장의 연장을 거듭해 일주일 가까이 숙소 침대에서만 밍기적거리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출발한 것도 여러 번이다.


집순이는 집만 좋아하는 게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집순이도 여행을 좋아한다.

다만 그 여행지에서도 집순이가 될 수 있을 뿐이다.







코로나로 여행을 떠나지 못하게 된 지 4년이 다 되어갔다.

전 세계적 역병이 시작된 이후로 여행다운 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다.

패니어 가득 짐을 실은 (’가득‘이 중요하다, 나는 언제나 짐이 넘치는 사람이었으니까) 자전거를 타고 그저 발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훌훌 떠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언제나 갇혀있는 것 같았고, 답답함이 가슴을 옥죄었다. 자의로 떠나지 '않‘는 것과 타의로 떠나지 '못'하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처럼 큰 것이었다. 나는 꽤나 자주 여행을 갈망했다.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일상은 집과 회사로 채워졌다. 언제쯤 다시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기약 없는 기다림 끝에 드디어 다시 하늘 길이 열리기 시작하던 날, 나는 주저 없이 다음 여행지를 골랐다.


중앙아시아. 그중에서도 험난하기로 소문이 난 파미르 하이웨이. 그곳을 가보기로 했다.

가보고 싶은 많은 여행지 중 중앙아시아를 선택한 건 오로지 '파미르 고원' 하나 때문이었다. 세계의 지붕이라는 파미르 고원, 자전거 여행자라면 한 번쯤은 도전하고 싶은 길.


이 글은 자전거 여행으로 살아있음을 느끼는 집순이의 9번째 자전거 여행 이야기이자, 사람이 어려운 극 I 내향형 인간의 중앙아시아 여행기이기도 하다.

75일 동안의 중앙아시아 4개국 2000여 km. 자전거 안장에서 바라본 그 길을 느낀 그대로 그려가 보려 한다. 중앙아시아의 자연이, 사람이, 길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혹은 자전거 여행을 꿈꾸는 집순이,집돌이들에게 용기가 되기를 바라며..!



파미르 하이웨이를 달리다, 타지키스탄, 2023


와칸밸리(Wakhan Valley)의 끝, 타지키스탄, 2023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