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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임 Feb 07. 2024

4년 만의 자전거여행, 이번엔 중앙아시아다!

타슈켄트~오이벡 (Tashkent~Oybek) | 우즈베키스탄





2023.07.01~07.04



오랜만에 자전거 패킹하려니 정말 고단했다...


코로나로 여행길이 막혀 근 4년간 해외여행을 갈 수 없었다. 이제나 저제나 여행을 갈 수 있을까 기약 없이 기다리려니 슬슬 코로나도 잠잠해지고 해외여행객이 점점 늘고 있다는 인터넷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역병이 창궐하는 동안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던 나로서는 한국에 콕 박혀 열심히 일만 해댔는데 드디어 움직일 때가 된 것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퇴사를 하고 여행을 떠났다.


원래 처음엔 터키 이스탄불부터 코카서스를 거쳐 중앙아시아 파미르까지 5개월 정도를 자전거로 여행하는 게 계획이었다. 한국에서 근 2년간 좀비처럼 집-회사만 반복했던 나의 육체와 정신은 자전거 여행에서만 충족될 수 있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독을 맹렬히 원했기에 여행을 다니지 못했던 그동안의 시간을 보상받듯 평소보다 조금 긴 장기여행을 계획했다. 하지만 코카서스국의 국경 막힘과 아제르바이잔 해상 닫힘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중앙아시아 4국의 여행으로 계획을 변경하게 되었다. 이 중앙아시아 여행을 계획한 가장 큰 이유는 파미르였기에, 파미르를 여행하기 적합한 7-9월로 기간을 정하고 나니 7월까지 아득히 남은 시간을 도저히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어 2개월간 인도 배낭여행도 다녀왔다.


인도에서 돌아와 1주일 만에 부랴부랴 자전거 여행 준비를 하고 나니 어느새 출국일이었다. 인천에 사는 동생이 차를 끌고 와 수원에서 공항까지 픽업해 줘서 아주 편하게 왔다. 오랜만에 자전거 여행이라 그런지 패킹 감을 잃었던가... 자전거 박스가 5kg 정도 오버가 되어 쌩돈 6만 원을 지불해야 했다...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난 이제 더 이상 돈이 없어 1000원 한 장에도 벌벌 떨던 가난한 대학생 여행자가 아니었기에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쿨하게 지불하고 쿨하게 잊었다. (잊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이번 중앙아시아 여행의 시작지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파미르 고원이 있는 타지키스탄에서 여행을 바로 시작할 수도 있었지만 너무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는지라 우즈벡에서 타지키스탄까지 자전거를 타며 체력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다. 타슈켄트까지 8시간 정도 비행시간 동안 그 맛있다는 아시아나의 기내식을 맥주 한 잔과 함께 꼭꼭 씹어먹으며 한국에서 미리 다운 받아왔던 세계테마기행 중앙아시아 편을 참 열심히도 봤다.





타슈켄트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찾고 나니 밤 9시가 다 된 시각이다. 처음엔 공항에서 자전거를 조립해서 미리 예약해 둔 호스텔까지 가려고 했었지만 막상 도착하고 나니 시간도 너무 늦었고, 꽤나 피곤해서 계획을 변경해 그냥 택시를 잡아 바로 호스텔로 향했다. 최고의 선택이었다. 여행은 역시 돈을 써야 한다.


자전거 조립과 본격 여행 준비를 위해 호스텔에 2박 예약했는데 그 호스텔에서 찍은 사진이라곤 달랑 이 우유죽 하나뿐이다.

이것도 왜 찍었냐면, 조식으로 나온 음식이었는데 처음엔 이게 뭔지도 모르고 직원이 떠주길래 받아왔다. 한입 먹었는데 설탕을 가득 때려 넣은 끓인 우유에 또 밥을 넣고 끓인..... 그런 음식이 아니던가. 개인적으로 우유 특유의 그 향? 냄새?를 안 좋아해서 평소에 우유는 입에도 안대는데 그 싫어하는 우유 냄새가 가득한 데다가 밥이 달아버리니... 정말 먹기 힘들었다... '도대체 단 밥을 왜 먹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꾸역꾸역 음식을 입으로 밀어 넣고 있는 나.

음식을 남기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억지로 다 먹긴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저 많은 걸 다 먹었는지 모르겠다....




폼클렌징을 사고 싶었는데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우즈벡에서 처음 먹어본 양고기 샤슬릭


우즈벡 간식 솜사


다음날 자전거 조립을 마치니 브레이크와 구동계에 약간의 문제가 생겨 자전거 샵에 가서 정비도 받고, 본격 출발 전 필요한 물품들도 사서 정리하고, 우즈벡 음식이라면 가장 유명한 샤슬릭도 먹어봤다. 한국에서도 양꼬치나 양고기는 거부감 없이 먹는 편이라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우즈벡 국민 간식인 솜사는 겹겹 페스츄리 빵 안에 양고기나 닭고기 등 고기소가 들어있는 음식인데 이것도 정말 맛있었다. 여행에서 음식은 꽤나 중요한데 먹었던 모든 음식이 입에 잘 맞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외식 물가가 비싸지 않아서 직접 해 먹기보다는 식당이 있으면 사 먹으면 되겠다 싶어 무척 좋았다. 캠핑하는 게 좋긴 하지만, 음식 해 먹는 거 은근 귀찮... 해 먹는 거보다 뒷정리하는 건 더 귀찮... 역시 음식은 남이 해주는 거 먹는 게 짱이다.





호스텔 앞에서 곧잘 누워있던 고양이.

길고양이 었는데 항상 호스텔 입구 쪽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입구 앞에 떡하니 누워버려서 문 열고 나오다가 놀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쪼꼬맣긴 얼마나 쪼꼬맣고 귀엽던지. 요 작은 애가 배는 볼록해서 임신했나? 싶었는데 만져도 반응이 없길래 아파서 배가 나왔나 싶어 걱정이 되었다. 우즈벡 오자마자 고양이를 만나다니 기분이 좋다.





출발 전 준비를 위해 2박을 묵었던 타슈켄트 Topchan호스텔.

여행지로써 '중앙아시아'는 웬만한 곳은 거의 다 가본 여행 고인물들의 집합소 같은 느낌이라 호스텔에 머무는 동안 꽤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중에서도 특히 내 여행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던 일본인 한 분이 계셨는데 내향적이고 소극적인 성격 탓에 더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여행할 땐 한국에서와는 조금 다르게 행동해 보자고 언제나 다짐하지만 매번 다짐으로만 끝내는 내가 한심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출발 당일 아침, 꼼꼼히 자전거 패킹을 하고 출발 전 인증샷도 잊지 않고 찍는다. 현재 계획으론 오늘부터 2-3일 내에 타슈켄트에서 약 120km 떨어진 타지키스탄 Buston으로 가는 것. 원체 여행 중 하루에 자전거를 많이 타는 편이 아니기도 하고 오랜만에 타기 때문에 천천히 체력을 끌어올리고 싶어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4년 만에 해외 자전거여행이라 막상 출발하려니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조금 더 앞섰다. 역시나 안장에 올라 페달질을 하자마자 자전거가 휘청-하고 흔들린다. 무거운 짐을 가득 패킹한 자전거를 오랜만에 타면 적응이 안 돼서 이렇게 한 번씩 흔들리곤 한다. 그래도 페달질 몇 번에 무거운 자전거는 금세 적응할 수 있었지만 우즈벡의 지옥불 같은 한낮의 온도는 정말이지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지금껏 자전거 여행을 하며 이러다가 정말 쓰러질 수도 있겠다 싶어 급하게 멈추고 쉬어보긴 처음이었다. 기온을 확인해 보니 44도였다.




우즈베키스탄 음식 국시(Kuksi)


게다가 타슈켄트 외곽으로 나오는 게 정말 힘들었다. 어찌나 대형 화물차가 많던지. 날은 덥지, 차는 빵빵 거리지, 지도는 이상한 길을 알려주지. 다시 자전거를 타고 길 위에 있음이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그래 이게 자전거 여행이지. 이 개고생을 내가 돈을 써가면서 하러 왔지.

....................왜 그랬지...?

하하.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뜨거운 날씨와 대형 화물차의 클락션, 이상한 길까지 정신없이 쏟아지는 3단 콤보에 울화통이 터질 때쯤 냉국수를 파는 식당이 보여 잽싸게 들어갔다. 평소 좋아하던 자전거 여행자 '코나쿨라'님의 여행기에서 봤던 음식이다. 우리나라 국수와 비슷한 이름의 면요리인 국시는 고려인 분들이 이주해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만들어 먹었다는 음식이란다. 고기, 토마토, 계란지단뿐만 아니라 김치 비슷한 것도 고명으로 올라온다. 심지어 냉국수라 더위에 쓰러질 것 같은 지금의 나에게 딱인 음식이었다.


음식이 나오자마자 시원한 국물 먼저 연신 떠먹으니 눈이 번쩍 뜨인다. 새콤하고 시원한 게 한여름에 먹는 김치말이 국수의 맛이 났다. 불볕더위에 배가 고픈 줄도 몰랐는데 일단 음식이 입에 들어가고 나니 그 이후부턴 정신없이 흡입하기 시작했다. 불과 5분 10분 만에 다 먹어버렸다.




하룻밤 공간을 내어준 친절한 우즈벡인들.


배부르게 점심을 먹고 출발하고 나서도 몇 번이고 멈춰서 휴식을 취해야 했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더위다. 호주의 한여름도 이렇게까지 덥진 않았다. 눌라보(Nullarbor)를 달릴 때도 40도가 넘어가는 더위였지만 이 정도로 힘들진 않았다. 결국 타슈켄트에서 45km 떨어진 이름 모를 마을에 멈춰 서야 했다. 더 이상은 못 가겠다. 지도를 살펴보니 근처에 캠핑스팟이 있어서 가봤다. 공원 비슷한 공터였다. 캠핑하기에 나쁘진 않은데 주변이 다 민가라 혹시 몰라 물어보기로 했다. 마침 근처에 있던 주민분께 여기에 텐트를 쳐도 되냐고 물으니 말이 도통 통하지 않는다. 나는 우즈벡어를 전혀 할 줄 몰랐고 중앙아시아에서 공공연히 통한다는 러시아어 역시 한마디도 할 줄 몰랐다. 우즈벡에서 이틀 내에 타지키스탄으로 넘어갈 예정이었으므로 유심도 따로 만들지 않아 인터넷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한마디로 난감한 상황.


몇 번이고 손짓, 발짓, 통하지 않는 영어로 설명하니 '텐트'라는 단어를 알아들으시곤 여기선 잘 수 없고 따라오라고 하셨다. 자전거 여행을 오래 하다 보면 '촉' 혹은 '육감'이라는 것이 고도로 발달하게 된다. 아마 대부분의 시간을(심지어 취침까지도) 길에서 보내야 하기 때문에 위험에 노출될 일이 비교적 많아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어떠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머릿속에서 아주 빠르게 신호등이 켜진다. 안전한 것 같으면 초록불이, 위험하다 싶으면 빨간불이, 아직 잘 모르겠을 땐 주황불이. 주민 분의 따라오라는 말에 주황불이 켜졌다.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일단은 어떤 말을 할지 들어나보자.


무거운 자전거를 이끌고 쫄래쫄래 뒤를 쫓았다. 공터 바로 앞 건물을 가리키며 여기서 자면 된다고 하는 것 같았다. 큰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철도길이 보이고 운행하지 않는 기차도 보였다. 추측건대 철도 관리소인 듯했다. 날 데리고 오신 분은 이곳 직원인지 자연스럽게 나를 안내했다. 덕분에 건물 구석 한 공간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날이 무척 더웠는데 무려 에어컨이 딸린 방이었다. 숙박을 위한 방은 아니어서 쇼파에 침낭을 깔고 자야 했지만 이 더운 날 에어컨이 어디인지. 몇 번이고 고개 숙여 감사인사를 전했다.





밤새 에어컨을 켜고 잘 수 없어 중간에 껐는데 거의 한숨도 못 잤다. 얼마나 덥던지, 땀이 많은 편도 아닌데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이래서 캠핑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런지 걱정...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동이 트자마자 출발 준비를 하고 나섰다. 너무 일찍 움직인 탓에 인사도 못하고 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직원분들이 보였다.

감사인사를 전하고 사진도 한 장 찍고 출발~


새벽 5시에 출발해서인지 선선한 날씨에 서너 시간은 쭉쭉 달렸다. 하지만 오전 9-10시만 되어도 해가 거의 중천이라 라이딩하기가 쉽지가 않다. 물을 자주 먹어도 자꾸만 힘이 빠지고 지쳐서 한 마을 입구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그늘 밑에 앉아 간식을 꺼내먹으며 쉬었다.

어느 나라를 가건 자전거여행자는 눈에 띄게 마련인데 관광객이 방문할 일이 거의 없는 시골 마을에선 훨씬 더 관심이 집중된다. 캠핑의자 펼 힘도 없어서 텐트 방수포를 대충 깔고 꼬불치고 앉아 간식을 먹고 있는 나를 한 할아버지가 무심한 표정으로 유심히 바라보시더니 이내 다가와 나를 집으로 초대해 주셨다.

내가 꽤나 힘들어 보였나 보다ㅎㅎㅎ





예상치 못한 초대에 얼떨떨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할아버지가 끌고 온 갑작스런 손님에 할머니 역시 꽤나 당황스러운 표정. 거실 다이닝룸에 앉아 할머니께 뭐라고 얘기하시니 금세 테이블 위로 음식이 한가득 차려졌다. 처음 할머니의 표정을 본 나로서는 음식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괜히 안절부절ㅋㅋ. 이..이제 그만 주셔도 돼요..

게다가 손님 대접이 극진한 이슬람 문화에서는 권유한 음식을 거절하는 것이 큰 실례라고 들어서 음식이 나올 때마다 감사하면서도 동공이 흔들렸다.

과일이며, 쿠키며 끝에는 양고기 조림과 빵까지 거한 한상을 만들어주셔서 의도치 않게 식사자리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할아버지, 할머니는 드시지 않으시고 나에게 계속 권유하셔서 주신대로 열심히 받아먹었다.





배가 터지도록 음식을 먹고, 전화기 너머 할아버지 따님을 통해 어렵게나마 대화를 이어가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1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오늘 가야 할 거리도 있고 더 있는 건 실례인 것 같아 출발하기로 했다.

땡볕에 자전거를 탄다고 하니 걱정이 되셨는지 물도 한병 챙겨주셨다.


처음 본 여행객을 흔쾌히 초대해 주신 것도 모자라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배려를 해주셔서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의 문화와 정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갑작스러운 만남이었지만 그들의 친절에 몸도 마음도 충전되는 기분이다.





이른 시간에 할아버지 댁에서 거나하게 먹어서 점심을 거르고 계속 달렸더니 무척 배가 고팠다.

생각보다 빠르게 국경에 도착해서 타지키스탄 넘어가기 전에 남은 숨(우즈베키스탄 화폐)도 사용할 겸 국경에서 제일 가까운 음식점으로 들어왔다. 날이 더워 어제처럼 국시를 먹고 싶었으나 팔지 않는다고 하여 샤슬릭으로 주문. 우즈벡에서는 빵과 쌀, 면을 주식으로 먹지만 샤슬릭을 먹을 땐 보통 '논'이라는 빵과 함께 먹는다.

아무리 맛있는 양고기라도 고기만 먹다 보면 왠지 뻑뻑한데 빵과 함께 먹으니 제대로 식사를 하는 느낌이 난다.

일반적으로 샤슬릭을 주문하면 양파채를 함께 주는데 테이블에 비치된 식초를 뿌려 먹으면 새콤한 것이 맛이 좋다. 마치 한국 밥상으로 치면 김치와 같은 역할이라고나 할까.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니 식당 주인 분들이 같이 사진을 찍자며 다가왔다.

어딜 가나 친절하고 따뜻한 우즈베키스탄인들이다.

우즈베키스탄은 4일 만에 떠나지만 동선상 파미르 이후 다시 오게 될 것 같으므로 그때 더 구석구석 달려봐야겠다. 그때는 더위가 조금이라도 수그러들었으면 좋겠다. 제발..!


다음으로 갈 곳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파미르의 나라 '타지키스탄'이다.

언젠가는 꼭 한번 자전거로 달려보고 싶던 길.

딱 기다려 파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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