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암이 재발했을 때, 아빠는 불행 중 다행은 없다고 했다. 엄마는 불행이 닥쳐왔음을 부정하고 싶어 했다. 아닐 거라고. 그럴 리가 없다고. 해외에 있는 동생에게는 아직 알리지 말라고 했다.
나는 온 가족이 앞이 안 보이는 터널 같은 시기에 들어섰음을 직감했지만 그 길이를 가늠하지 못해 허둥댔다. 돌이켜보니 그때는 아무리 긴 터널 안에 들어섰다고 해도, 터널에는 입구와 출구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것 같다
짧은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스친 밝은 순간들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그저 다음 터널을 통과할 준비에 몰두한 것이 문제였다. 터널은 불행이 아니라 희망의 상징이라고 믿었더라면 어둠에 익숙해지지 않는 한 터널 밖으로 나왔을 때 빛을 한껏 누릴 수 있지 않았을까.
서울에서 강원도로 향하는 시외버스 안, 수많은 터널을 스치며 나는 다시 생각했다. 이 세상 모든 터널은 밖을 향해 열린 통로다. 다시 긴 터널 같은 시간을 통과한다고 해도 빛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여기며 삶을 여행할 것이라고 그리고 그날 나는 터널 밖으로 나가 눈이 부시게 반짝이는 아침 바다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