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란 미처 몰랐던 내 취향을 알아가는 시간이다. 일상에서 익숙해서 백지상태로 남겨 두었던 소소한 취향을 문득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어 호텔 조식을 반복해서 먹다 보면 내 입에는 단단하게 삶은 계란 맞는지, 부드러운 스크램블드 에그가 맞는지 그것도 아니면 버섯, 치즈, 각종 야채를 골고루 넣은 오믈렛이 맞는지 나의 달걀 요리 취향을 알아채게 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채고 나면 그것을 어떻게 즐길 것인가 궁리하는 단계에 접어든다. 스크램블드 에그는 식감이 부드럽지만 간이 약하니, 쫄깃한 소시지나 바삭한 베이컨을 곁들여 짠맛과 다른 식감을 함께 느껴볼까 하는 식이다. 그렇게 달걀 요리에 대한 마음의 온도가 달라져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달걀 요리 즐기는 법이 생겨나는 것이다.
새로운 장소를 즐기는 방식 또한 사람마다 제각각일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성큼 목적지로 발을 떼는 사람도 있고, 정해진 식순처럼 그 장소를 배경으로 사진부터 찍고 둘러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그 장소가 잘 보이는 곳에서 커피나 맥주를 한 잔 마시려고 하는 편이다. 오래전 여름 독일에서 만난 베로니카에게서 배운 태도인데, 어느새 나에게 맞는 여행 방식이 되어 버렸다. 시작은 이랬다.
우리 대성당이 잘 보이는 강변 카페에 앉아 커피부터 한 잔 마시자.
당시 여름방학을 틈타 독일어 어학연수 떠난 나는 한 지붕 아래 묵고 있던 친구들과 뒤셀도르프에서 기차를 타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고딕 건축의 장엄한 위용을 뽐내는 쾰른 대성당 앞에 막 당도한 참이었다. 두 친구는 제네바에서 온 26살의 베로니카와 이스탄불에서 온 20살의 바샥. 나는 도착하자마자 성당 안으로 돌진하려다 멈칫한 채, 어안이 벙벙해하며 베로니카의 말을 따랐다. 대성당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지 않고 라인강변 카페로 유유히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이 낯설고도 새로웠다.
막상 라인강변 카페에 앉아서 본 쾰른 성당은 더 아름다웠다. 높은 곳에서 찍어 누르듯 나를 내려다보는 성당이 아니라 풍경과 어우러진 건축물의 모습이었다.
"아무도 우리를 찾지 않고, 아무도 전화하지 않아, 너희들과 커피 그리고 평화, 행복하지 않니"
"그래 참 좋아"
베로니카가 아무런 걱정도 없는 표정으로 말했고, 바샥이 탁구공 받아치듯 얼른 대답했다.
"쾰른 성당은 언제든지 들어가 볼 수 있어. 하지만 급하게 안부터 보고 나면 성당을 제대로 볼 수 없어. 먼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보고 안으로 들어가 보는 거야"
"..."
몇 년이 지나 직장인이 되고 나서야 베로니카 말을 이해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낯선 도시에서 아름다운 장소를 응시하며 누리는 커피 한 잔의 여유가 얼마나 달콤한 지 출근과 퇴근이라는 단조로운 일상에 겪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이런 기쁨을 누리기 위해 더 잘 살고 싶어지는 마음마저 들었다. 그 후로 나는 틈틈이 가 여행을 떠날 때마다 나는 서두르지 않는 여행자가 되어 갔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이라면 일단 카페에서 차를 한잔 마신 후 어디를 어떻게 둘러볼까 살핀다. 멋진 건축물이라면 그곳이 잘 보이는 장소에 앉아 커피나 맥주를 마신다. 세상에는 이런 여행 방식도 있다고 알려준 베로니카를 떠올리며.
사실, 베로니카의 여행 방식은 일상에서도 적용된다. 어떤 사건이 느닷없이 내게 닥쳤을 때 몇 발짝 뒤로 물러서서 바라본다. 그럴 땐 차를 우리거나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며 남의 일 얘기하듯 그 일을 되뇌어 본다. 물러나서 보면 때로 복잡하게 얽혔던 관계가 단순해 보이기도 하고, 고민의 부피가 작아 보이기도 한다. 근사한 여행지도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도 멀리서 바라보면 바로 앞에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