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우지경 Jun 22. 2021

결혼하면 아파트에 살 줄 알았지

어쩌다 내 집

“넌 사랑해서 결혼했잖아.”

하하. 한 친구에게 칭찬인 듯 칭찬 아닌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땐 웃어넘겼다. 사랑에 빠진 나는 조건 따위 따지지 않고 결혼을 했다는 숨은 뜻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또 다른 친구에게 비슷한 말을 들었을 땐, 사랑 안 해서 결혼한 사람도 있나?라고 괜한 트집을 잡으려다가 나의 신혼집을 떠올리며 맞장구를 치고 말았다. 그러게 말이다. 나도 결혼하면 다 아파트에 사는 줄 알았어. 거실에는 하루의 끝 지친 몸을 감싸 안아줄 푹신한 소파를 둔 20평 대 아파트 말이야. 결혼 준비를 하기 전까지는.


눈을 감고 남자 친구의 손을 꼭 잡고 신혼집을 처음 보러 간 날이 떠올려 본다. 뙤약볕이 정수리에 쏟아지는 한 여름이었다. 그 집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첫눈에 실망했다. 겉보기에는 제법 큰 규모의 신축 빌라였는데, 생각보다 방이 작아서 놀랐다. 동생과 살고 있는 투룸 빌라의 방 보다 훨씬 좁아 보였다. 현관 옆 작은 방과 안쪽 큰 방 사이에는 식탁을 겨우 놓을 수 있을 만한 주방이 있을 뿐, 눈을 씻고 봐도 소파를 둘 자리는 없어 보였다. 반면 남자 친구는 마냥 들떠 있었다. 그는 당장 이불을 들고 들어와 이 집에 살겠다고 했다.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는 텅 빈 집에.


해맑게 웃는 남자 친구를 뒤로 한 채 손바닥으로 작은 방 벽을 한 뼘 두 뼘 재었던가. 줄자로 일일이 재었던가. 그 기억은 흐릿한데 이마에 땀이 맺혔던 기억은 선명하다. 덜컥 겁이 났다. 이번 생에 나는 영원히 거실이 없는 투룸 빌라에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동안 내가 서울에서 세입자로 산 집의 규모가 투룸을 넘지 않아서였다. 친척 언니와 함께 살았던 투 룸 빌라. 혼자 지냈던 원룸. 동생이 대학을 오며 함께 살게 된 집도 거실이 없는 투룸 아파트와 빌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혼하면 아파트에 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러려면 남자 친구와 나의 예산으로 어느 동네 어떤 아파트를 전세로 구할 수 있을지, 혹시 돈을 더 보태면 매매도 가능할지. 대출을 얼마나 어떻게 받아야 할지 생각도 해보지 않은 채. 그때의 나는 직장 생활 3년 차 부동산 문맹이었다  



다행히 어떤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다. 사랑과 믿음과 소망보다 유머가 넘치는 사람. 비슷한 업계에 일하며 서로의 성장을 응원하고 지켜볼 수 있는 사람. 무엇보다 가부장적이지 않으며 밥 타령을 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내 곁에 이미 그런 사람이 있었다. 이 풍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는 광고대행사에서, 나는 네이밍 회사에서 모진 직장생활을 하며 ‘을’의 연애를 이어갔다. 야근을 숨 쉬듯이 하던 남자 친구는 퇴근길에 잠깐 내 집에 들러 얼굴을 보고 가곤 했다. 여자 친구의 생일에도 야근을 거르지 않는다고 불평을 했더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래도 결혼을 하면 아내 생일에는 일찍 퇴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핑크빛 미래를 제시했다. “여자 친구 생일이라 퇴근하겠습니다.”라곤 못해도 “오늘이 아내 생일이라 일찍 가보겠습니다.”라고는 할 수 있다나 뭐라나.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매일 같은 집에서 살면 약속을 잡을 필요도 없고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보겠지. 적어도 생일과 결혼기념일에는 오붓한 저녁 시간을 보내고 말이지. 멋진 레스토랑이 아니면 어때. 우리 집 식탁에 앉아 파티를 하면 되지. 그래 어차피 둘이 결혼할 거라면 미루지 말고 지금 하자고 화끈하게 결론을 내려 버렸다. 결혼 자금에 대해 제대로 고민도 하지 않은 채.


신혼집을 구하는 돈은 남자 친구와 그의 부모님 그리고 내 부모님이 함께 준비했는데, 남자 친구의 부모님은 어느 동네에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 지 의견은 묻지 않고 계약을 했으니 가서 한 번 보라고 했다. 아마도 잘 아는 동네의 깨끗한 집을 구해주고 싶은 마음이 반, 아들이 아파트에 살겠다고 무리하게 대출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반이 아니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둘이서 살고 싶은 집을 찾아보라고 했으면 다른 선택지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도 들지만.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 게 감사했고, 나와 남자 친구는 대출을 받아서 내 집을 장만한다는 개념조차 없었다. 그때만 해도 내가 아는 대출은 신용 대출, 마이너스 통장뿐이었으며 대출의 ‘ㄷ’ 자만 들어도 인생이 꼬일 것 같아 겁이 났다  


내 집(자가)이 아니라고 내 집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전세든 월세든 내가 사는 곳이 내 집 아니던가. 고로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처음 함께 살 집 꾸미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포기는 배추 셀 때 쓰는 단어라고 배웠다. 게다가 혼수는 내가 모은 돈으로 내 마음에 드는 가구와 가전을 장만할 터이니.


그해 여름 성산동 투룸 빌라를 나서며 이 좁은 공간을 반드시 소파가 있은 스위트홈으로 변신시키리라 맹렬히 다짐했다. 앞으로 어떤 복병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 채.

매거진의 이전글 청파동 자취러의 사주는 부동산 큰 손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시작하기

카카오계정으로 간편하게 가입하고
좋은 글과 작가를 만나보세요

카카오계정으로 시작하기
페이스북·트위터로 가입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