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수영 후 개운하게 시작하는 하루가 좋아서
나에게는 새벽 6시가 좀 넘으면 울리는 카톡방이 있다. 함께 7시 새벽 수영 강습을 받는 친구(일명 수친)들이 모여 있는 방이다. 새벽마다 누가 먼저 말을 시작하든 하는 말은 비슷하다. “수영 가자!” 이거나 “굿모닝, 수영 가야지.”
“지금 일어났어. 엄청 갈게.”
잠이 덜 깬 내가 이상하게 대답해 수친들을 알쏭달쏭하게 한 적도 있지만, 이 추운 겨울 우리는 서로의 아침을 깨우며 아무리 추워도 수영장에 갈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운다. 그리고는 수영장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위치에서 수영을 한다. ‘엄청 갈게.’는 ‘얼른 갈게.’라고 쓰려다 생긴 오타였다.
체감 온도 영하 18도라는 날 새벽에도 수친들과 카톡을 주고받으며 밖으로 나섰다.
“너무 춥다고 하니 이불에서 나가기가 겁나네.”
“모스크바 사람처럼 입고 나와.”
롱 패딩에 털모자 장갑까지 완전 무장을 했지만 해뜨기 전 새벽은 정말 추웠다. 어찌나 추웠던지 그날따라 29.4도의 수온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다행히 얼어 죽어도 수영할 각오로 나섰더니, 아주 개운한 기분으로 살아서 집에 돌아왔다. 한 겨울에도 새벽수영으로 시작하는 하루가 얼마나 상쾌한가 생각하며.
어느덧 새벽수영을 한 지 9개월 차에 접어들었지만, 처음부터 새벽수영을 할 생각은 아니었다. 재작년 봄 수영을 시작할 때 내 선택은 저녁형 인간답게 저녁 수영이었다. (수영강습 시간은 대게 새벽수영, 오전수영, 오후수영, 저녁수영으로 나뉜다.) 저녁 중에서도 가장 늦은 시간에 시작하는 9시 수업을 들었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가뿐한 마음으로 수영을 하고 싶어서였다. 약속이 있는 날엔 하루 이틀 빠지더라도 수영 후 샤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밤은 꽤나 뿌듯했다. 하루의 끝에 느끼는 작은 성취감이랄까. 성취감을 느낀 후 맛보는 캔맥주 한 잔은 또 얼마나 시원하던지. 안주를 불렀다. 마구마구.
그런데 작년 3월에 한 달간 여행을 다녀오느라 수영 등록 기간을 놓쳐 버렸다. 뒤늦게 수영장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새벽수영 7시 월수금에 딱 1자리가 남아 있었다. ‘7시까지 수영을 가려면 늦어도 6시 반에는 일어나야 할 텐데, 과연? 내가?’하는 생각에 몇 초간 망설였다. ‘과연? 내가?’를 돌림노래처럼 몇 초 더 반복하다가 접수하기 버튼을 눌렀다. 망설임은 등록을 놓칠 뿐. (신규 수영강습 등록 광탈 당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새벽수영을 다녀보고 영 못 하겠다 싶으면 6월엔 저녁수영을 등록하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결제까지 마쳤다. 애써 접수 버튼을 눌러 놓고 정해진 시간까지 결제하지 않으면 등록은 자동 취소된다. 결석 좀 하더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싶었다. 한 달이나 수영을 못 배웠는데, 어서 수영을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컸다. 저녁 9시에 수영을 다닐 땐 약속이 생기면 빠지곤 했는데, 아침 7시에는 약속이 있을 일이 없으니 일어나기만 하면 갈 수 있다. 야, 나도 일어날 수 있어. 라며 속으로 큰 소리를 쳤다.
문득, 묘안이 떠올랐다. 이름하여 시차적응부적응 전략. 미국·멕시코 여행을 다녀온 직후라 한동안 시차 적응을 못해 새벽에 눈을 뜰 테니, 그때 재빨리 수영장으로 나가는 게 전술이었다. 예상대로 일주일은 새벽 5시에도 눈이 저절로 떠졌다. 모닝커피를 마시고 수영 가방을 챙겨 나가도 여유로운 아침이었다. 새벽수영을 처음 간 날 깜짝 놀랐다. 아침 7시 수영장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니. 초급, 중급, 상급 너 나 할 것 없이 레인마다 활기가 넘쳤다. 완전 새로운 세상이었다.
자, 이제 우리 새벽수영을 하며 아침형 인간이 되자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저녁수영형보다 새벽수영이 좋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새벽수영이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하기 좋다면 저녁수영은 개운하게 하루를 마무리하기 좋다. 둘 다 해보니 ‘나는 저녁형 인간이니까, 새벽 수영은 못해. 미라클 모닝은 다음생에…’라고 생각했던 게 아쉽다. 저녁형이 혈액형처럼 타고나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한계를 지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요즘은 새벽수영덕에 아침형 인간으로 사는 게 즐겁다. 대게 내가 수영장에 도착하는 시각은 6시 55분에서 7시 사이지만 올빼미처럼 살던 내가 그 시간에 수영장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견하다. 새벽수영을 그만두면 다시 하루아침에 저녁형 인간으로 돌아갈지 몰라도,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어서 수영을 가고 싶어 하는 지금의 내가 좋다. 수영이 내가 나를 좋아하게 돕는다는 생각을 하면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어서 수영장에 가고 싶어 진다. 밤늦게 자고 8~9시 사이에 일어나 침대에서 책상으로 출근할 땐 샤워도 하지 않고 일을 했는데, 새벽에 수영 전후로 샤워를 하니 매일 보송보송한 상태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좋다. 저녁형으로는 오래 살아봤으니, 앞으로는 오래오래 새벽수영을 하며 아침형 인간으로 살고 싶다. 상급반에서 멋지게 접영 하는 할머니가 될 때까지.
혹시라도 저녁형에서 아침형으로 라이프 스타일을 바꿔 보고 싶다면, 아침에 좋아하는 일을 시작해 보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 운동도 좋고, 공부도 좋고 먹고 싶은 아침 메뉴를 정해두는 것도 좋다. 무슨 일이든 눈 뜨자마자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일찍 일어나는 방법을 찾게 될 것이다. ‘하기 싫은 일에는 핑계가 생기고, 하고 싶은 일에는 방법이 생긴다’는 필리핀 속담처럼.
방법을 못 찾겠다면, 샤워를 하러 수영장에 간다거나, 모닝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것처럼 어차피 해야 할 일에 하고 싶은 일을 결합시키는 1+1 전략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