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리처럼 느려도 멈추지 않으면 완주할 수 있다.
물 위에 누워서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을 좋아한다. 땅 위에 누워서는 느낄 수 없는 부드럽고 상쾌한 기분이다. 찰랑이는 수면 위에 몸을 띄우고 발차기를 하고 팔을 돌리며 쭉 나아가면 몸이 한없이 가볍게 느껴지곤 한다. 실제로 물속에서 여자의 평균 무게는 5kg라고 중급반 수영 선생님에게 배웠다. 때때로 오리발(롱핀)을 하고 접영을 할 때 몸이 물 밖으로 쑥 잘 나오면 날치가 된 듯 신이 날 때도 있다.
지난 1년 6개월 간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 순으로 영법을 배우며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만큼이나 자주 느낀 기분은 앞으로 안 나아가는 기분이다. 말 그래도 앞으로 안 나아가는 기분은 삶은 달걀 3개를 연달아 먹고 물 한 모금 못 마신 듯 답답하다. 기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실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저 사람 좀 봐요!”
“아까 출발했는데 계속 제자리에 있어요.”
“어머, 누가요?”
남편과 함께 저녁 9시 초급반 강습을 듣던 때였다. 배영 한 바퀴(25m 풀 기준으로 50m)를 돌고 출발 지점으로 돌아왔는데 제자리에 멈춰 있는 한 남자 때문에 뒷사람들이 앞으로 가지 못한 채 엉거주춤하고 있었다. 대체 누구지? 고개를 쭉 빼서 바라보다가 소리를 빽 지르고 말았다.
“여보! 일어서. 뒷사람들이 못 가고 있어.”
그제야 일어선 남편은 걸어서 출발지점으로 돌아와 내게 말했다.
“어쩐지 천장이 안 바뀌더라.”
배영은 얼굴이 천장을 바라보게 되는 영법이라 천장의 선을 보며 좌우로 몸이 움직이지 않고 일직선으로 가는지 체크해야 할 수 있는데 남편의 경우 제자리배영을 하다 보니 아무리 애를 써도 천장이 그대로였던 것이다.
그동안 제자리 배영까지는 아니더라도, 배영을 어려워하는 남자분들을 꽤 보았다. 키가 크고 근육이 많을수록 몸이 무겁다 보니 하체가 물속에 많이 가라앉은 채 배영을 해 느려지는 듯했다. 하체가 가라앉은 채 배영을 하다 보니 물을 먹게 되고 물을 먹다 보니 물이 먹기 싫어서 머리를 더 들게 되는데, 머리를 들수록 허리는 구부러지고 몸이 가라앉으며 속도가 느려지는 답답한 상황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았다.
제자리 배영 사건 이후 남편은 배포자가 되었다. 잘 안 되는 영법에 대해 자포자기(?)하는 수영인을 0포자라 부른다. 남편에겐 배영이 벽이었다면, 내게는 평영이 벽이었다. 자유형, 배영을 할 땐 힘차게 발차기를 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을 만끽하다가도 평영만 하면 아무리 발차기를 해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아무리 헤엄쳐도 제자리를 맴도는 기분에 빠져 허우적댔다. 그렇다고 후진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속도가 영 나지 않았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이렇게 평포자가 되는구나 싶었다. 큰마음먹고 시작한 새벽수영 초급반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는 어떻게든 나의 이상한 평영을 교정해 주려고 애쓰며 다양한 방법을 알려주었다.
“회원님은 평영을 시작할 때 손등끼리 붙여서 손바닥으로 물을 밀어 보세요.”
“(이런 꿀팁이 있었나 눈을 반짝이며) 평영은 원래 그렇게 시작하는 거예요?”
“아니요. 물을 잡는 감이 전혀 없으니까 그렇게 해보시라는 거예요.”
“아…”
정곡을 찌르는 피드백이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뭐가 문제인지는 조금 알 것 같았다. 평영을 할 때는 팔을 벌렸다 양손으로 물을 잡아당겨야 하는데 나는 물을 전혀 잡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물은 잡아당긴 후엔 팔을 가슴 쪽으로 끌어와야 상체를 띄울 수 있는데 나는 팔을 옆구리 쪽으로 붙이지 않으니 상체도 잘 뜨지 않았다.
게다가 평영 호흡을 할 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자유형 하듯 오른쪽으로 돌리는 특이한 습관이 있었다. 대체 고개를 왜 그렇게 돌리냐는 수영 선생님의 다그침을 들어도 내 고개는 오른쪽으로 돌아가고, 차라리 시선을 왼쪽을 보고 평영을 하라며 왼쪽, 왼쪽, 왼쪽 외침을 들어도 내 고개는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분명 나의 뇌가 자리한 내 머리인데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기이한 현상이었다. 하루는 초급반 선생님이 평영 손동작을 잡아주다가 큰소리로 물었다. "대체, 고개를 왜 그렇게 돌리는 거예요?"
그때 쓰고 있던 책의 마감도 평영만큼이나 속도가 나지 않아 하루하루가 답답했다. 겨우 원고를 마무리해서 보내면 편집자의 피드백에는 질문과 수정 요청 사항이 가득했다. 피드백받은 원고를 수정하느라 써야 할 원고를 못 쓰니 마감은 자꾸 늦어만 갔다. 평영처럼 나의 원고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기분이었다. 내가 내 몸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 글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기분이랄까.
하루는 초급반 수영 선생님도 나만큼 답답했던지 앞에서 머리를 고정할 수 있게 양손으로 잡아 줄 테니 평영을 해보라고 했다. 평영 발차기를 알려주기 위해 발을 잡아주는 경우는 많았지만, 머리를 잡아주는 상황은 선생님도 처음이 아닐까? 어부에게 잡힌 거대한 대왕문어가 된 기분이었다. 자꾸 웃음이 터져서 호흡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이렇게 말하며 일어서고 말았다. “선생님 도저히 웃겨서 수영을 못하겠어요.”
그 후로도 거의 매일 왼쪽, 왼쪽, 왼쪽을 귀에 딱지가 앉게 들으며 평영을 배웠다. 그러던 어느 날 수영 강사님이 평영을 하던 나를 일으켜 세워 말했다. ”지금 고개 안 돌리고 제대로 했어요. 이 감각을 기억해요!" 아, 드디어 하산할 때가 된 것인가. 기쁨도 잠시 중급반에 와서도 평영을 할 때면 고개가 왼쪽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수영선생님이 아니라 같은 중급반 회원들이 내게 물었다. "고개를 왜 그렇게 돌려요?"
그래도 중급반에 온 지 3~4달이 지나자 점점 평영 팔과 다리의 박자를 맞고 속도가 빨라지는 게 느껴졌다. 요즘은 더 이상 평영을 할 때 뒷사람에게 민폐가 될 까봐 "먼저 가세요!"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오리혀 이런 말도 들었다. "아가씨가 평영 빠르니까 먼저 가." (빠르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져서 아가씨가 아니라는 말도 안 하고 냉큼 출발했다.)
최근 중급반에서는 어깨를 동그랗게 마는 자세를 만들기 위해 거의 한 달간 킥판을 이용한 훈련을 한 적이 있다. 한 손으로 킥판으로 누르고 다른 한 손은 뻗은 채 자유형 발차기를 한다거나, 양손으로 어깨 아래 킥판을 누르고 평영 발차기를 하는 드릴을 연습이었다. 하나같이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다들 해파리처럼 느린 속도로 25m를 오갔다. 한 팔로 눌렀던 킥판이 튀어 올라 레인을 넘기도 했다. 한 바퀴 돌 때마다 점점 세차게 헉헉거렸다. 역대급으로 힘들었지만, 정말이지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나지 않았다.
1초라도 늦게 출발하고 싶었던 내가 수영 선생님에게 투덜거렸다.
“이렇게 하니까 앞으로 나가질 않아요.”
돌아온 답은 간단했다.
“왔잖아요.”
“아.”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시고 출발!"
힘차게 출발하며 물속에서 생각했다. 올해는 아무리 일을 해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기분이 들어 자주 낙담했는데, 느려도 계속하고 있었구나. 그토록 끝이 보이지 않던 책 원고도 1교, 2교, 3교를 거쳐 OK교를 확인한 뒤였다.
이제는 안다. 해파리처럼 느려도 멈추지 않으면 완주할 수 있다는 것을.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마음이다. 수영도 일도 계속하면 나아진다. 나아지지 않았다면 나아질 때까지 계속하면 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는 없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진 기분이 든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