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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쿠키 Jul 03. 2018

Day02. 새벽부터 새벽까지

20180702 M



부상당한 인형 회복실. 대부분 목이 문제다. 

1. 새벽부터 새벽까지 비가 왔다. 오랜만에 새벽부터 새벽까지 깨 있었다. 남은 반년 성실하게 채워야겠다는 다짐에 겹친 일에 대한 부담감이 작용했던 게다. 눈을 뜨자마자 무섭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원고를 읽고 다듬었다. 나름 분주한 아침이었다. "떨어진 인형 목 좀 붙여줘, 아이폰에 음악 넣어줄 수 있어? 커피 마시고 싶은데..." 맥락 없이 이어진 부탁을 웃으며 들어준 브루스에게 감사한 아침이었다. 


1. 비가 와서 그런지,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2. 차례를 기다리며 청취자 모드  3. 수업준비는 공부시간 + 하트


2. 양천향교역. 습관처럼 100원짜리 동전을 커피자판기에 넣었다. 종이컵 안에는 액체라곤 방울도 보이지 않았다. 자판기에 볼드체로 적혀 있는 전화번호가 눈에 뜨였다. 전광판도 지하철이 내 앞에 설 때가지 4분쯤 여유가 있다고 알려줬다. 

용기 내 번호를 눌렀다. 통화 중. 칼을 뽑았으니 문자라도 보내보자. 문자를 보내니, 바로 전화가 왔다. “어디신가요? 죄송합니다. 계좌번호와 금액을 알려주시면 바로 입금하겠습니다.”

이렇게 빠르고 확실한 피드백이라니. 괜찮다고, 고장 난 사실을 알고 계셔야할 것 같아서 전화했다고 좋은 하루 보내시라고 문자를 보냈지만, 꽤나 놀랐다. 인정하고 조치하는 행동력. 지지부진 일을 끝내지 못해 ‘하루만 더’를 외치던 나. 대나무로 시원하게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3. 비를 뚫고 도착한 방송국. 청취자 입장이 되어 시사평론가 김성신 씨 방송을 들었다. 오늘의 주제는 예능테라피. 효리네민박같은 예능에 대한 이야기였다. 고개를 한참 끄덕이다 내 차례를 깜박했다. 이기상 씨와 호흡을 맞춘 지 세 달째. 편해졌다. 능숙한 이기상 씨의 배려 덕분이었다. 오늘 소개한 지역은 부여 궁남지, 송정그림책마을과 창녕 우포늪, 부곡온천. 이야기하다 보니, 초록 융단이 깔린 듯한 우포늪이 그리워졌다. 달력을 좀 봐야겠다. 


4. 방송 후에 산 넘고 물 건너 간 수원. 대중교통으로 삼성디지털미디어시티에 가는 건 오랜만이었다. 비 덕분에 발은 이미 다 젖었다. 장마다웠다. 이름도 생소한 망포역에 내려 베트남 쌀국수 점심을 먹고 눈을 뒤덮을 정도로 무성하게 자란 앞머리를 처치했다. 미용실에서 나오니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맞으면 아플 정도였다. 횡단보도를 걷는데 손바닥만 한 노트로 머리를 감싸고 있는 어린 여학생이 있어, 우산을 얼른 받쳐줬다. 100m쯤 함께 갔을까. 말을 하기도 안 하기도 미묘한 상황이었다. 학생은 고맙다고 했지만 조금 불편해 보였다. 괜한 호의를 보였나 잠깐 고민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학원 입구에 도착했고, 나도 생각을 멈췄다. 상대가 크게 부담스러워하지 않는다면, 호의와 배려는 계속 뿌리기로. 


비 오는 날의 센트럴파크. 회사 안에 있는 고즈넉한 공원, 참 좋죠?


강의 중간 시간에 일정을 체크했다. 노원평생학습관과 강의 날짜를 이야기하고, 장선배와 약속을 잡았다. 홍캠프 단톡방에서 '포인트'를 두고 수다 마당이 한바탕 펼쳐졌다. 함께 일을 하면서 농담을 나눌 수 있는 관계. 오고 가는 대화를 보며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저녁 수업은 6시부터였지만 좀 늦은 5분부터 시작했다. 비와 천둥번개가 난무하는 날씨 속에서 수업에 참석해준 이들이 감사했다. '글쓰기'에 대한 수업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성실하게 쓰고, 바꾸고, 고쳐야지. 


15-1번 버스를 타고 수원역으로 간 후, 용산행 급행열차를 타고 신도림까지, 2호선으로 당산, 그리고 9호선 급행으로 가양, 가양에서 일반으로 갈아 타 양천향교, 마지막 코스인 양천향교에서 마을버스 6번을 타고 집 앞까지. 집에 오는 길 자체가 여행이었다. 


5. 집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30분쯤. 기진맥진이었지만 그냥 잘 순 없었다. 피곤한 저녁일수록 보상심리가 컸다. 무심결에 리모컨을 눌렀더니, 얼마 전에 재미있게 본(다 보진 못했지만) 독전의 이해영 감독 인터뷰가 나왔다. 독전 마지막 장면을 노르웨이에서 찍었다는 사실, 이해영 감독이 시나리오 감독이었다는 점, 주인공 원호가 이선생을 향해 가던 심산한 표정은 조진웅이 자신이 배우 역사를 돌아보며 나온 명장면이라는 내용. 비하인드 이야기가 흥미진진했다. 


비티비 영화 목록을 뒤적이다, 끌리는 영화를 찾았다. 실뱅 쇼메 감독의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가는 폴의 이야기. 사랑스러운 색감과 순순한 폴의 눈망울, 그리고 마담 프루스트가 폴에게 전한 한마디 '네 삶을 살아라(Vis Ta vie)'가 오래 남을 영화.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한참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가, 실뱅 쇼메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뒤적뒤적. 일루셔니스트, 벨빌의 세 쌍둥이를 리스트에 올려놓고야 머리를 베개에 얹었다. 눈 뜬 지 23시간이 지난 새벽 4시. 새벽부터 새벽까지 신나게 달렸다.  




* 작가수업 / 도러시아 브랜디 지음 / 강미경 옮김 / 공존


p62

실제로 글을 쓸 때는 비평가 자아가 곁에 오게 해선 안 된다. 반복을 사용하거나, 너무 장황하게 늘어놓거나, 대화가 옆길로 새는 경향과 같은 문제들에 대해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대기 때문이다. 자아의 이 부분은 나중에 원고가 완성됐을 때 불러내도 늦지 않다. 그때 이 자아의 도움을 받아 원고를 좋은 쪽으로 수정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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