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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쿠키 Jul 04. 2018

Day03. 95번째 생일

20180703 T

1.  "자연은 위대하네요" 옥가네 단체 카톡방에 올라온 옥부장님의 하늘 사진을 본 상훈이의 한 마디였다. 고개를 끄덕였다. 우르르쾅쾅 내리던 비가 소강상태에 접어들더니, 더 없이 높고 푸른 하늘을 만들어냈다. 뭉게구름은 동남아 어느 섬에 있는 듯한 착각을 안겨줄 정도였다. 지하철보다는 버스에 앉아 하늘을 보고 또 봤다. 그런 날이었다. 


63빌딩 45층에서 내려다 본 풍경. 옥가네 옥부장님이 사무실에서 찍은 하늘이라고 단톡방에 올려준 작품.


옥가네 쉐롱이 올려준 쌍무지개 뜨는 은평구.


그리고 집에서 본 해질녘 하늘. 


2. 머님 생신 주간. 할머니를 위한 여름용 스킨과 순한 소화제, 그리고 달달한 거봉을 손에 들었다. 큼지막한 글씨로 쓴 축하카드와 함께. 95번째 생신. 초는 다섯 개만 꽂았다. 브루스와 어머님, 나, 그리고 할머니는 생일축하 노래를 함께 부르고 앙증맞은 폭죽을 터트렸다. 

할머니의 환한 웃음을 보니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걷기를 힘들어하시지만, 할머니는 정정하셨다. 급식체는 알아듣지 못하시지만, 이야기 맛이 나게 추임새는 기가 막히게 넣으셨다. 약주를 좋아하셔서 매번 막걸리를 한통 사가지고 갔는데, 이번에는 큰 맘을 먹으셨는지 안 드겠단다. 

"한 번 먹으면, 자꾸 먹고 싶어서 안 되겠어. 인제 참아야 쓰겄어."라는 할머니. 그래도 건배는 하셔야죠, 할머니. 와인 한 잔씩 담아 건배!

뚝딱 요리 선수인 어머님은 홍어와 등갈비를 만들어놓으셨다. 할머니는 와인 한 모금에 생일 케잌 한 조각, 거봉 몇 알, 홍어와 등갈비를 맛나게 드셨다. 할머니, 오래오래 지금처럼 건강하게 사세요. 


3. 프데이. 그리 일이 많진 않았지만 어지러운 마음에 계속 쫓기는 기분이었다. 월요일까지 예정된 일을 일단락 끝났다. 상반기 마무리처럼. 얼마만인가, 이렇게 바람이 통하는 마음이. 장기여행을 할 때면 매번 리스트를 작성했다. 집에 가면 먹을 음식들. 떡볶이 일번, 냉면 이번, 회 삼번. 일이 쌓일 때도 끝나면 하고 싶은 일 리스트를 작성하는데, 첫 번째가 냉장고 청소였다. 그래서 드디어, 냉장고 안에 있는 음식을 다 꺼내고 청소를 시작했다. 김치를 나누고 자르고 합치고. 그릇을 씻고 말리고(햇살이 어찌나 감사하던지!). 구석구석 닦고 조였다. 헐렁해진 냉장고 속을 보니 이제야 내 냉장고 같았다. 청소의 기쁨. 


4. 소를 했으니 자랑을 해야지. 브루스에게 오늘의 쾌거를 알렸다. 돌아 온 답신.

"헐. 내부 뜨거운 물로 적셔서 짠 행주로 닦아야하는데..." 

우쭈쭈를 기대했던 나는 당황스러웠다. 따지지 않고 보낸 한 마디. 

"으르렁!" 

앞으로 냉장고 청소는 무조건 브루스가 하는 걸로. 게임 끝. 







* 다케시의 낙서입문 / 기타노 다케시 / 이연식 옮김 / 세미콜론

내가 왜 갑자기 그림을 그렸나면, '하나비'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그림 콘티를 그려 본 게 계기가 됐다. 머릿속에 떠올린 이미지를 아무리 그려 봐도, 실제 촬영 때는 이런저런 제약이 많아서 그대로 나오질 않았다. 결국 이 콘티대로 찍는 건 포기했지만, 모처럼 그린 거니까 콘티에 색을 입혀 볼까 싶었다. 그렇게 시작해서 닥치는 대로 그림을 그리다 보니, 그림이란 게 점점 개그처럼 내달려서 멈출 수가 없었다. 시답잖은 아이디어가 불쑥불쑥 튀어 나왔는데 나 스스로도 '뭐야 이거'하면서 웃게 되는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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