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성공적으로 여행을 하기 위한 다섯 가지 조언
내 목적은 뚜렷하다. ‘여행의 정보’를 제공하기보다 ‘여행의 방향’을 제시하자는 것이다. 그 이유로 여행지와 여행방법에 대한 자세한 안내를 과감히 생략(각 여행기의 말미에 약간의 팁을 싣기는 했지만 그야말로 ‘약간’일 뿐이다)했다. 으레 그런 것까지 기대하고 있는 이들로서는 당혹스러운 한편으로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다. 이 ‘여행안내문’을 슬며시 끼워 넣는 이유다. 아이와 여행을 하다보면 필연적으로 갖가지 시행착오를 겪게 되는데, 거기서 깨달은 내용들을 정리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1. 어떤 여행을 할지 먼저 정하고, 장소를 나중에 정하라.
끝이 나서도 평생 계속되는 여행이 있다. 그곳에서의 인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추억의 한 자리를 터줏대감 마냥 차지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여행도 그래야 한다. 그 유효기간이 마치 슈퍼마켓 진열대의 생우유처럼 짧은 여행이어서는 곤란하다. 부모의 과제는 명확하다. 아이 스스로가 여행에 높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여행의 내용이 여행의 성패를 좌우한다.
우리의 경우 아이가 관심을 가지는 것들을 여행의 주제로 삼았다. 그래야 흥미를 느끼고 적극적으로 여행을 주도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일반적으로 어디로 갈지 먼저 정한 후 그곳에서 무엇을 할지 나중에 정하는데, 우리는 그 반대였다. 우리에게는 그곳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을 지녔는지, 얼마나 편안한 잠자리를 보장하는지, 얼마나 맛있는 먹거리가 있는지 보다 그곳에서 아이가 원하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중요했다. 그래서 어떤 여행을 할지 먼저 정한 후, 그에 어울리는 장소를 나중에 찾았다. 여러 후보지를 섭외한 다음에 결격 사유가 있는 곳들을 차례로 지우면서 마지막 하나를 뽑았다. 당연히 아이와 함께 결정했다. 아이는 출발 전부터 항상 의욕이 충만했다.
2. ‘콘트라프리로딩’, 직접 딴 사과가 더 맛있다.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자이자 정치가로 활약했던 프랑수아 르네 드 샤토브리앙(1768~1848)이 충고한 바 있다. “당신이 나쁘게 생각하는 어떤 것들이 당신 아이의 재능을 드러나게 할지도 모른다. 당신이 좋게 생각하는 어떤 것들은 그들을 숨 막히게 할지도 모른다.”
여행을 가서도 혹시 아이가 다칠까 봐, 힘들어할까 봐, 위생적으로 취약해서 이것저것 금지하는 부모들이 있다. 그런데 이런 부모들은 아이에게 도움이 되리라고 판단되는 것이라면 반대로 어떻게 해서든 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런 부모’라고 했는데 사실은 예전에 내가 그랬다. 하지만 이제 나는 선택권을 아이에게 일임하고 있다. 해보고 싶다면 뭐든 실제로 직접 해보라고 허락한다. 만약 해볼까 말까 갈등 중일 때도 되도록 그냥 해보라고 살살 부추긴다. 여행에서 해볼 기회를 잡게 되는 것들은 해서 후회인 쪽보다 안 해서 후회인 쪽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진정 중요한 것은 ‘뭘 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했느냐’이다. 누가 시켜서 한 것, 누가 사사건건 간섭해서 한 것은 내가 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스스로 원해서 한 것, 마음 가는 대로 즐겁게 빠져들어서 한 것이 내가 한 것이다. 동물심리학자 글렌 젠슨이 실험을 통해 입증해낸 ‘콘트라프리로딩’ 개념에 따르면, 같은 것을 하더라도 자기가 주도해서 한 것일수록 그리고 성취의 과정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만족도가 높다. 그런 것에 애착이 더 가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3. 뻔한 소리지만 철저한 준비만이 답이다.
아이에게 믿을 만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철저한 준비만이 당신을 그리 만들어 줄 수 있다.
우리 두뇌의 감성을 담당하는 부위인 편도체(아미그달라)는 원시시대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생존과 관련된 것에 유독 민감하다. 위험한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감지되면 경보를 울려대고 급기야 이성을 마비시키기까지 한다. 어른들은 그것이 정말 위험한지 아닌지 경험으로 알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경보기를 꺼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 일을 할 사람이 부모밖에 없다. 부모가 의연하게 대처하며 “괜찮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안심시키고, 그것이 왜 별 것이 아닌지 또는 별 것일지라도 대처만 잘 하면 그만이라고 설명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부모를 믿고 의지하며 감정을 제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부모마저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아이들의 감정은 통제불능의 상태로 치닫는다. 진정하지 못 하는 아이에게 부모는 결국 소리를 지른다. 아이는 더욱 감정을 폭발시키거나 잠잠해진다. 그러나 잠잠해진다는 것은 또 다른 공포, 즉 엄연히 현실인 부모의 위압감에 억눌린 것이지 폭발된 감정이 진정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침착한 대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돌발상황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는 없다. 내 마음대로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준비하는 수밖에 다른 답이 없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온갖 상황을 가정해서 반복적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봐야 한다. 흔히 ‘맥가이버 칼’이라 부르는 다용도 툴, 손전등, 호루라기, 부상부위를 고정해줄 충분한 길이의 줄(매듭법을 이용해 팔찌로 만들어 착용하면 좋다) 등 기본 생존물품도 당연히 챙겨야 한다. 계절에 따른 적절한 두께의 체온 보호를 위한 옷, 비상식량과 물, 구급약도 마찬가지다. 응급처치 숙지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4.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라.
모든 아이들은 호기심덩어리다. 아이들은 결코 마르지 않을 것 같은 호기심의 샘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 샘은 나이를 먹을수록 급속도로 수량이 줄어들어 결국은 고갈되다시피 한다. 질문을 용인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탓이 크다. 그런데 아이의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하는가도 이 못잖은 영향을 미친다.
자연으로 나가면 아이는 쉼 없이 질문을 해댄다. 새로운 것 천지라서 그렇다. 아이가 “이게 뭐예요?”라고 물으면 보통은 이름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것으로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선 곤란하다. 질문에 질문으로 답함으로써 사물의 본질에 다가서야 한다. 가령 아이가 단풍나무 씨앗을 가리키며 그게 뭐냐고 묻는다고 치자. 이때 “그건 단풍나무 씨앗이야”라고 단지 이름을 가르쳐주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단풍나무 씨앗은 왜 이렇게 생겼을까? 왜 아래쪽에 씨가 있고 위에는 잠자리 날개 같은 게 달려있는 거지?”라고 되물어보자. 서로의 대화가 풍성해진다. 아이는 저 나름대로 그 비밀을 풀려고 골몰한다. 물론 “씨앗이 여행을 하기 위해서”라고 결국 답을 알려주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통해 비행의 원리라든지, 씨앗이 멀리 날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탐구하게 될 것이다.
하나의 질문이 수없이 많은 질문을 낳도록 유도될 때 호기심의 샘은 오히려 수량이 더 늘어난다. 아이에게 사물의 이름을 가르쳐준다고 아이가 그것을 알게 되는 것이 결코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무슨 이름으로 불리는지가 아니라 그것을 이루는 의미들이 훨씬 더 중요하다. 사실 이름이야 우리가 만든 것도 아닌데 무엇인들 무슨 상관일까? 사랑이 사랑이라는 이름이 아닌 다른 이상한 이름으로 불린다한들 그 따뜻함이 어디 갈까?
5. 현장에서 느끼는 감정을 녹음하라.
여행을 반추하거나 글쓰기를 교육하기에 녹음만한 것이 없다. 아이와 여행을 떠날 때 나는 흠집투성이의 자그마한 휴대용 녹음기를 빠뜨리지 않고 챙긴다(스마트폰을 이용해도 되는데 10년도 넘게 써오던 것이라서 고물이나 다름없는 녹음기가 더 편하다). 처음 몇 번 여행을 하다 보니 특별한 순간을 만날 때마다 아이의 감정을 담아두지 않은 게 못내 아쉬웠다. 녹음은 사진과 분명히 다른 매력이 있다. 사진이 표정으로 그 당시 상황을 떠올리게 만든다면, 녹음은 목소리를 통해 보다 직접적으로 그 당시 느낌을 전해준다. 녹음기에는 멋진 장면을 보았을 때, 신기한 소리를 들었을 때, 기분을 전환시키는 향기를 맡았을 때, 가슴 뿌듯한 일을 해냈을 때, 기뻤을 때, 슬펐을 때, 화났을 때, 두려웠을 때 등 변화하는 아이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일반적으로 여행은 집으로 돌아온 순간 마무리 된다. 하지만 우리는 아니다. 집에 온 며칠 안으로 여행지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것까지 해야 비로소 우리의 여행도 마무리 된다. 우리는 탁자에 둘러앉아 녹음기 재생 버튼을 누른다. 생생하게 흘러나오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다시금 행복한 여행을 한다.
녹음은 아이의 글쓰기 훈련 자료로도 아주 좋다. 많은 아이들이 글쓰기를 어려워한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세부적으로 밀고 나가는 힘이 부족해서다. 몇 줄짜리 그림일기 쓰기에 길들여진 탓이다. 그날 있었던 일 한 줄, 느낌 한 줄, 계획이나 반성 한 줄로 이루어지는 그림일기는 너무나 단편적이다. 그림일기를 졸업하고 보다 긴 글을 써야 할 시기가 되면 아이들의 머릿속이 하얘진다. 그렇게 ‘글쓰기 공포증’이 형성된다. 녹음을 이용하면 ‘글쓰기 공포증’을 없애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녹음된 것을 들으며 즐거운 대화를 나눈 후, 아이에게 그 여행과 관련된 것을 글로 써보라고 하면 아이는 별 어려움 없이 제법 재미있는 모험 이야기를 쓱싹 써낸다. 언제 글쓰기를 두려워한 적이나 있었냐는 듯 말이다. 자신이 경험했던 일과 느꼈던 감정이 바로 그 글 안에서 주인공의 경험과 감정으로 표현된다. 묘사가 사실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아이는 글을 어떤 식으로 써야 하는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익히게 된다.
그게 무엇이 됐든 간에 생명체를 키운다는 것은 대단한 도전이다. 하물며 사람은 어떠할까. 단지 신체를 건강하게 발달시키는 게 전부가 아니다. 신체만큼이나 정신의 건강 또한 중요하다. 풍부한 감성이야말로 정신을 깊고 향기롭게 만든다. 감성의 배양처로는 여러 곳이 있겠지만, 자연이라는 토양만큼 훌륭한 양분 공급원이 없다. 자연은 아이의 놀이터이자 친구이자 선생님이다.
나는 참 흥미롭게 내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다. 아이가 어떻게 커갈지, 어떤 어른이 될지, 그리하여 무슨 일을 하며 즐겁게 살아갈지 무척 궁금하다. 내가 아이와 함께 한 여행의 시간들이 사회적 인간으로 성장하는 데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러한 시간들이 살아가는 동안 아이의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줄 것이라는 점만은 확신할 수 있다. 혹시 당신도 내 생각에 동의하는지? 그렇다면 당신의 일은 하나다. 당장 아이를 위한 여행가방을 꾸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