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밤을 찾아서

by 피터C

모든 아이들은 적어도 한 번은 잠 잘 시간이 훨씬 지난 뒤에 걸어본 기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 로버트 프로스트 <The Fear> .


내게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를 밤에 일찍 재워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있었다. 아이가 도통 잠을 잘 생각을 하지 않을 때면 나는 괴물까지 동원해 아이를 겁주곤 했다. 아마도 내 강박은 밤늦도록 잠을 자지 않으면 신체 성장 발달에 좋지 않다는 말을 각종 매스컴으로부터 반복적으로 접하는 사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 같다. 아내나 나는 키가 고만고만해서 그것을 뻔한 소리로 흘려버릴 수 없었다. 하지만 1년에 몇 번쯤 늦게 잔다고 결코 문제가 생기진 않는다. 나도 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그동안 아이에게 너무 지나쳤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것일까? 키가 크느냐 마느냐가 걸린 일이라는데 어느 부모인들 다를까?

일찍 재우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밤이 어떤 시간인지 아이에게 알려줄 의무가 내겐 있었다. 공포를 조장함으로써 아이에게서 밤을 밀어냈으니 그걸 다시 되찾아주는 것도 내 몫이었다. 그런데 도시에서는 그게 불가능했다. ‘진짜’ 밤을 보여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와 함께 밤을 찾아 멀리 떠나기로 했다.

사진2.jpg 각자 짐을 나눠 지고 밤의 심장 속으로 걸어가고 있다.

우리는 차근차근 여행을 준비해 나갔다. 베이스캠프로 이용할 자그마한 3인용 돔 텐트와 침낭, 취사도구, 악천후·조난·부상 등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각종 비상용품 등을 최대한 꼼꼼하게 챙겼다. 단지 편안함을 위해 짐의 부피를 키우지는 않기로 원칙을 세웠고 그에 맞춰 모든 게 세팅되었다.

우리는 불빛에 잡아먹히지 않은 깜깜한 밤을 어디로 가서 만날지도 토의 끝에 정했다. 일단 첫 시도이므로 밤을 만나기가 어렵지 않아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그 결과 나온 곳이 해발 980m의 양구두미재였다.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과 평창군 봉평면의 경계에 위치한 태기산 9부 능선의 고개로서 차량 접근이 가능했다. 이곳에는 수십 기의 풍력발전기들이 들어서 있다. 캠핑장으로 공식 운영되는 곳은 아니다. 우리는 낭만적인 밤을 꿈꿨다. 하늘에는 총총 별이 떠 있고, 땅에는 풍력발전기가 느긋하게 도는 고개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밤 여행은 그러나 그리 순탄치가 않았다. 별은 고사하고 비와 바람이 우리의 의지를 시험했다.

아이의 유치원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며칠 후, 우리는 양구두미재를 향해 첫 밤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양구두미재에 도착하자마자 일기예보에도 없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철수와 잔류를 두고 고민했다. 아내는 철수, 아이는 잔류를 원했다. “그래, 이런 것도 다 추억이 되는 법이지.” 나는 아이의 편을 들었다.

결정이 나자 우리는 날씨가 더 나빠질 것을 우려해 서둘러 텐트를 쳤다. 아이가 연결한 폴을 아내가 텐트의 네 귀퉁이에 끼우고 고리를 걸었다. 나는 망치로 팩을 박아 텐트를 단단히 고정했다. 혹시 큰 비라도 내릴까 염려되어 야전삽을 이용해서 텐트 가장자리로 물골도 만들었다. 역할을 나눈 덕분에 오래 걸리지 않아 텐트가 세워졌다. 우리는 그 안으로 들어가서 따끈한 차를 마시며 젖은 몸을 말렸다. 텐트 안에 있으려니 바람이 제법 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밖으로 나가 태풍에도 끄떡없도록 2중 3중으로 텐트 줄을 보강했다. 그러는 사이 슬그머니 밤이 찾아왔다. 머리에 그렸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밤이었다. 비는 한시도 그치지 않았다. 우리는 꼼짝없이 텐트에 갇힌 채 밤을 받아들여야 했다. 우리는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다가 얘깃거리가 바닥을 드러내자 잠자리에 들었다. 텐트를 밝히던 랜턴을 끔과 동시에 어둠이 우리를 순식간에 꿀꺽 삼켰다. 아이와 나는 이날 밤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공포의 본 모습은 때로 시시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겉만 화려한 사람처럼 말이다.

비바람을 피해 텐트 안으로 들어온 여치

풍력발전기로부터 굉장히 멀찌가니 떨어진 공터에 텐트를 설치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바로 머리 위에서 날개가 도는 것처럼 소리가 크게 들렸다. 보통은 대략 3초마다 한 번씩 ‘휘익’ 허공을 가르는 소리를 냈는데, 바람의 세기에 따라서 소리의 간격이 더 짧아지거나 길어졌다. 자정을 넘어서면서부터는 바람이 드세졌다. 날개가 1~2초마다 소리를 냈다. 이러다 날개가 부러져서 텐트를 덮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로 소리가 위협적이었다. 비도 거세졌다. 누군가 노크하듯이 빗방울이 텐트를 때렸다. 아내는 무언가의 기척을 들은 것 같다며 밖을 확인해보라고 자꾸만 채근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정체 모를 무엇이 우리를 관찰하고 있다면 그 자체로 얼마나 오싹한 일인가? 순간적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고, 털이 곤두섰다. 나는 아이와 함께 밖으로 나가서 주변을 자세히 둘러보았다. 안에서 느끼는 것만큼 밖은 요란스럽지 않았다. 비는 그다지 굵지 않았고 바람도 세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조금 허탈한 한편으로 안도감이 들었다.

아이와 나는 텐트 안으로 들어가서 우리가 본 바깥 상황을 있는 그대로 아내에게 설명해주었다. 아내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그런 아내는 날이 밝을 때까지 공포에 떨며 잠을 제대로 자지 못 했다. 반면 아이와 나는 비를 피해 텐트 안으로 기어 들어온 여치의 노래를 들으며 깊은 잠을 잤다. 빗소리도, 바람소리도, 풍력발전기의 날개 회전 소리도 더는 우리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신기하게도 밖에 나갔다 온 후로 그 소리들이 이전보다 훨씬 작게 들렸다. 어쩌면 아내의 귀가 진공청소기처럼 그 소리들을 빨아들여서 우리에게로 올 게 그만큼 줄어들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우리는 첫 밤 여행에서 무사히 귀환했다. 여행에 대한 평은 엇갈렸다. 내게는 비바람을 신경 쓰느라 힘들었던 기억, 아내에게는 잠 못 든 끔찍했던 기억, 아이에게는 밤과 놀았던 역사적인 기억으로 남았다. 아이는 틈만 나면 실제로는 아무 것도 아니었던 그 밤의 공포를 들먹이며 아내 앞에서 으스댔다.

사진4.jpg 두 번째 찾은 양구두미재에서 멋진 은하수를 결국은 만났다.

양구두미재의 밤이 정말로 인상에 남았는지 아이는 다시 한 번 그곳으로 다녀오자고 성화를 부렸다. 그래서 우리는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3주만에 재차 같은 장소로 떠났다. 다행히 이번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그 밤, 별이 그야말로 하늘에서 쏟아졌다.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별들이 하늘을 밝혔다. 쉼 없이 제 할 일을 하는 풍력발전기 날개 위로 은하수가 흘렀다. 우리는 나란히 땅바닥에 누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은하수를 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있는데, 하늘에서 별똥별 하나가 떨어졌다.

“방금 보셨어요? 가느다란 빛 하나가 ‘슝’ 하고 지나갔어요.”

“별똥별이란다. 지구 밖에 있는 돌이나 우주먼지가 지구로 떨어지면서 불에 타는 게 그렇게 보이는 거야.”

아이는 어째서 다른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지 의아해 했다.

“약 137억 년 전 ‘어제가 없는 오늘’이라고 불리는 때에 거대한 폭발과 함께 우주가 태어났단다. 그 폭발로 우주의 별들이 생겼는데, 그 별들이 서로를 끌어당기면서 떠 있도록 돕는 거야.”

나는 별과 우주에 대해 아는 선에서 최대한 쉽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이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기특하게도 아이는 귀를 기울여서 들었다. 은하수를 처음 본 밤 이후로 아이는 별을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하면 알고 싶어지는 법. 그렇게 해서 스스로 알게 되는 것들은 누가 가르치거나 억지로 주입하는 것들과 달리 진짜 자신의 것이 된다. 그런 아이를 위해 나는 아끼던 10×50mm 쌍안경을 아이에게 물려주었다. 육안으로 보는 것보다 집중도가 높고, 망원경으로 보는 것보다 많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쌍안경은 천체 관측 입문자에게 좋은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이후에도 우리는 틈나는 대로 이곳저곳 밤을 찾아 떠났고 아이는 그 때마다 쌍안경을 챙겼다. 남들이 다 자는 밤에 아이는 별의 속삭임을 듣기 위해 외투를 걸쳐 입었다. 별에 대한 아이의 사랑은 갈수록 깊어졌고 우주의 시작과 끝, 별들의 죽음과 탄생, 외계생명체 등 우주에 대한 궁금증도 더 많아졌다. 아이를 가만히 지켜보면서 나는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밤하늘에 빠져드는 이유가 더 잘 보기 위해서라기보다 더 크고 멋진 상상을 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5.jpg 풀벌레들의 음악회로 아름다웠던 비밀의 자작나무숲.

여러 차례의 밤 여행으로 자신감이 붙자 우리는 차를 버리고 떠나기로 했다. 배낭만 짊어지고 걸어서 밤을 만나러 가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자작나무숲을 목적지로 잡았다. 잘 알려진 강원도 인제군의 그 숲이 아니다. 강원도 정선군에 자리한 아는 사람만 아는 고즈넉한 숲이다. 우리는 버너와 같은 화기물을 일체 챙기지 않았다. 아무리 주의한다고 해도 한순간의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는 뜨거운 물을 담은 보온병과 전투식량을 준비했다. 짐은 최소한으로 줄인 뒤 능력치를 고려해 서로의 배낭에 적절히 배분했다. 우리는 마을 끝집에서부터 약 2km쯤 완만한 산길을 걸어서 숲으로 들어갔다.

이미 사전답사를 해두었던 나는 미리 봐두었던 작은 공터로 아내와 아이를 이끌었다. 텐트를 치는 데 이골이 난 우리는 순식간에 보금자리를 완성했다. 그리고 해가 지기 전에 숲 산책에 나섰다. 때는 9월 말로서 단풍이 막 시작되던 참이었다. 하얀 자작나무와 울긋불긋한 단풍잎들이 만들어내는 색의 대비가 강렬했다. 저물녘이 되어 우리는 산책을 마치고 텐트로 돌아와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었다. 부족한 듯 가져와서 깨끗이 먹으니 생길 쓰레기란 게 없었다.

해가 완전히 땅으로 꺼지고 나서 약 30분쯤 지나자 하늘의 잔광마저 사그라졌다. 우리는 숲길을 다시 걸었다. 좀 전과는 느낌이 아주 달랐다. 잘 보이지 않자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하지만 두 눈이 어둠에 순응하게 되면서 사방이 점점 훤해졌고, 이미 한 번 걸었던 길이라 이내 마음이 안정되었다. 그제야 비로소 공포에 지배되어 왜곡됐던 감각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밤의 숲은 아름다웠다. 어디선가 올빼미가 울었다. 여치와 귀뚜라미와 배짱이 따위의 풀벌레들도 가을밤 음악회를 열었다. 나무들은 이따금 바람에 ‘끼걱’ 거리며 잘 듣고 있노라고 호응했다. 나뭇잎은 ‘사르르르’ 박수를 쳤다. 밤은 낮과 다를 게 없었다. 단지 낮에 비해 어두울 뿐.

그 밤에도 예고 없이 비가 제법 내렸다. 아내의 반응이 궁금하다고? 양구두미재 이후로도 두세 번 더 악천후 캠핑을 경험한 아내는 오히려 운치 있다면서 비를 기다리기도 하는 수준이 되었다. 하여간 그 밤에 우리는 나뭇잎과 텐트를 두드리는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서 달콤한 잠을 잤다.

사진6.jpg 자작나무숲의 아침을 카메라에 담는 아이.

밤 여행을 통해 아이가 쓸 데 없이 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별을 사랑하게 되고, 밤이 낮처럼 생기 넘치는 시간임을 알게 된 것은 정말 큰 선물과도 같은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변화가 아이에게만 찾아왔냐면 그렇지 않다. 아내와 내게도 변화는 찾아왔다. 우리의 밤 여행은 스마트폰이라는 문명의 이기와 잠시 강제적으로 분리되는 시간이었다. 돌아보면 우리는 항상 스마트폰을 끼고 살았다. 심지어 손에 쥔 채 잠드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우리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의 뉴스, 클릭을 유도하고 ‘좋아요’를 애걸하는 글, 패스트패션처럼 한순간 소비되고 이내 폐기되는 트랜디 한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댔다. 생각은 자꾸만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서 직진하지 못 하고 흩어졌다. 결국 자신의 생각이란 게 만들어질 틈조차 없고,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의 꽁무니만 좇으며 갈팡질팡했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았을 때, 우리는 밤의 적막에 무척 당황했다. 별을 볼 때, 숲길을 걸을 때, 잠자려고 누웠을 때처럼 가족 간 나누던 대화가 잠시 끊기는 순간이면 밤의 적막이 밀려와 사색을 강요했다. 밤의 적막에 당황했던 이유는 스스로를 위해 사색의 시간을 내준 게 너무나 오래 되어서 낯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밤 여행을 거듭하는 동안 우리는 밤의 적막이 가져다주는 사색의 시간을 진심으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만약 당신도 우리처럼 밤 여행을 계획한다면 부디 스마트폰일랑 꺼두길.


여행 실행을 위한 간단 tip.

여행 목적은?/ 밤에 대한 공포를 떨치고 밤과 친구 되기.

어디로 갈까?/ 캠핑초보라면 오지캠핑보다는 인가된 캠핑장을 먼저 이용하며 분위기를 익히는 게 순서. 한국관광공사 고캠핑(www.gocamping.or.kr)에서 캠핑장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어떻게 할까?/ ‘조용한 밤’을 누리고 싶다면 주말을 피해 작심하고 시간을 내어 주중에 떠나자. 오지캠핑이 아닐지라도 충분히 빛과 소음으로 방해받지 않는 밤을 만날 수 있다. 그렇게 캠핑에 이력이 붙으면 차츰 오지캠핑에도 도전해보자.

필요한 것은?/ 미니멀캠핑을 위한 최소한의 장비와 별관측용 쌍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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