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을 위한 에워싸인 공간’. ……아이들은 이 에워싸인 공간을 본능적으로 만들 줄 안다. 그 속에는 어른들이 경계 지어놓은 복잡한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 김종진 『공간공감』.
누구나 자신을 위한 비밀공간이 하나쯤 있었으면 한다.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나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곳. 내 아이에게는 그런 장소가 있다. 여섯 살 겨울 무렵부터 만들기 시작해 이듬해 봄에 완성한 숲 속의 비밀기지. 자랑하고픈 마음이 컸던 아이가 여기저기 떠벌리는 바람에 그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주변에 없지만, 거기가 어딘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우리 외에 아무도 없다. 설령 우연히 지나다가 그것을 발견한 사람이 있다손 치더라도 용도를 알 턱이 없으니 비밀기지로서의 자격은 여전히 유효하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모든 것을 다 알려고 한다. 집밖에서 있었던 일을 아이가 얘기하지 않으면 조바심을 내며 캐묻는다. 그리고는 “엄마 아빠에게는 절대 숨기는 게 있어선 안 돼!”라고 주입시킨다. 그런 부모를 볼 때면 진심으로 궁금하다. 그 자신이 어렸을 때도 비밀이라고는 전혀 없는 투명한 존재였을까? 내 생각에는 서로 비밀을 적당히 가지고 있는 게 좋다. 모든 걸 공개하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의지하고 개입하게 된다. 반면, 비밀이 있다는 자체로 아이는 뿌듯함을 느낀다. 부모는 아이를 더 자세히 살피고 이해하려 노력하게 된다. 단, 비밀을 인정하는 데 조건이 하나 있다. 둘 사이가 애정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아이가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것에 대해서는 비밀로 쌓아두지 않는다.
아이는 옷장을 사랑했다. 무더운 한여름에도 수시로 컴컴한 옷장 안에 들어가서 시간을 보냈다. 더위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엄마의 자궁에서 아홉 달 동안 머물렀던 기억이 무의식 속에 남아 있었던 걸까? 아이는 비좁은 그곳을 편안해했다. 그렇지만 지켜보는 사람으로서는 조금 안쓰러웠다. 그래서 아이에게 비밀기지를 직접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수많은 장소를 답사했다. 여러 사항이 고려된 끝에 비밀기지를 지을 만한 최적의 장소는 시청 뒤편의 산으로 결정이 났다. 그 때가 벌써 2년 전 봄이었다. 그곳은 가까웠고, 숲이 우거졌으며, 약수를 뜨러 자주 다녔던 덕에 익숙했다. 대강의 장소를 선정한 후 나는 아이와 함께 다섯 번, 그리고 혼자서도 여섯 번이나 꼼꼼히 현장을 살폈다. 비밀기지를 어느 자리에 어떻게 지을 것인지 구상하기 위해서였다. 그 사이 나는 아이에게 미리 생각해 둔 비밀기지가 있다면 설계도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는 지하로 땅을 파고 들어가는 비밀기지를 고안했다. 아이의 상상대로 만들 수 있다면 완벽히 은폐되는 진짜 비밀기지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나무들의 뿌리가 다칠 수 있다는 말에 아이는 아쉽지만 꿈을 포기했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어 설계에 들어갔다. 우리가 마음에 둔 곳은 ‘나무들의 무덤’이었다. ‘V’자로 팬 골짜기인데, 센 바람들이 거기로만 모여들었는지 여기저기 뿌리 뽑혀 나뒹구는 나무가 허다했다. 우리는 그곳에 있는 누운 나무 중에서 가장 큰 것을 척추로 활용해 사다리꼴 형태의 비밀기지를 만들기로 했다.
화려하게 가을을 수놓았던 단풍이 다 떨어지고 겨울이 오자 우리는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척추에 붙일 갈비뼈들을 부지런히 모아야 했다. 나무들의 무덤에는 흩어진 뼛조각이 무수히 많았다. 물론 갈비뼈도 충분했다. 우린 그걸 줍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산비탈을 오르내리는 일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단번에 끝내기보다 시간을 쪼개어 자주 그곳에 갔다. 그러는 사이 겨울이 훌쩍 지나갔다. 숲이 여린 나뭇잎으로 싱그럽게 빛날 때, 우리는 밀린 숙제를 드디어 마쳤다. 혹시라도 비밀기지를 우연히 발견한 사람들이 무서워서 발길을 돌리도록 주변에 한 가지 장치를 해두는 것으로 모든 일을 끝냈다. 실제로 그 장치는 제몫을 톡톡히 했다.
비밀기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아이의 손이나 얼굴에는 자잘한 상처가 예사로 생겼다. 비밀기지와 맞바꾼 영광의 상처였다. 아이는 그 상처를 대단히 자랑스러워했다. 마냥 보듬어 키우는 건 내가 추구하는 보육방식이 아니다. 나는 아이가 자립심이 강한 사람이 되길 원한다. 큰 나무 바로 아래 떨어진 씨앗은 싹을 틔우더라도 제대로 된 꼴을 갖춰 자라지 못 한다. 대개 얼마 못 가 말라죽는데, 겨우 살아남는다고 한들 나무로서 구실을 하기는 어렵다. 씨앗이 어엿한 나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모체의 뿌리가 미치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뿌리를 펼쳐야 한다. 또한 모체의 그늘이 덮치지 않는 곳에서 햇빛을 양껏 받으며 줄기를 살찌워야 한다. 모체를 떠나는 순간부터 시련은 시작될 것이다. 거센 눈과 바람과 비로부터 모진 매질을 당하고 갖은 짐승벌레에게 찢기고 꺾인다. 그러나 꾹 참고 지켜보아야 한다. 그래야 그 여리기만 하던 녀석에게도 자신의 튼튼한 뿌리와 줄기로 우뚝 서서 드넓은 그늘을 드리우며 탐스럽고 달콤한 열매를 한가득 맺을 기회가 생긴다. 안쓰러운 마음에 당장 달려가서 어르고 달래는 건 엄밀히 따지면 진정으로 아이를 위하는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기회의 싹을 자름으로써 결과적으로 고통을 주는 그 어리석음을 어찌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아이는 틈만 나면 비밀기지를 찾아갔다. 뭔가를 가져가면 가져간 대로 그것을 활용해 재미있게 놀았다. 아무 것도 준비해가지 않은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숲을 헤집으며 곤충과 꽃 따위를 관찰하거나 버찌, 보리수열매, 오디 등을 따먹으며 놀았다. 아이의 온 마음을 빼앗아 갔던 비밀기지는 그러나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잊혔다. 여름휴가차 닷새간 가족여행을 다녀온 이후 아이는 더 이상 비밀기지에 가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완전히 잊은 줄 알았던 아이가 문득 비밀기지에 다시 가보고 싶다고 한 것은 가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우리는 거의 세 달 만에 비밀기지를 다시 찾았다. 그곳으로 가기 전, 나는 아이에게 비밀기지가 파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미리 언질을 해두었다. 다람쥐나 청서가 배를 곯든 말든 도토리라면 눈에 불을 켜고 주워야 직성이 풀리는 숲의 약탈자들이 기지를 그냥 두었을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내 걱정과 달리 비밀기지는 온전했다. 위장용으로 덮어두었던 나뭇잎과 풀이 바싹 마르고 삭아서 뼈대가 훤히 드러나 있었지만 어디 한 군데 무너져 내린 곳 없었다. 약탈자들이 이리 저리 헤집으며 다닌 흔적이 주위에 무수한데, 왜 우리 비밀기지만 멀쩡할까? 그 이유를 곰곰이 따져보는데, 아이가 팻말을 가리켰다. ‘조심, 뱀 소굴.’ 아, 그렇지. 혹시라도 누군가 침입할까봐 팻말을 여러 개 박아뒀었다. 앞서 사람들이 발길을 돌리도록 설치했다고 언급한 장치가 바로 이 팻말이었다. 그게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작전이 멋지게 들어맞았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사실, 전혀 무섭지 않게 그려진 뱀과 어설프게 지은 움막 같은 것을 보면서 무서운 뱀소굴이라고 움찔했을 사람은 없었을 것 같다. 아마도 아이들끼리 혹은 어느 가족이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소중한 장소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우리의 비밀기지가 무사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날 우리는 다시금 비밀기지에 낙엽을 충분히 덮어서 위장한 후, 그 내부도 말끔히 정리했다.
그 며칠 후 가을이 완전히 그림자를 거둬들였음을 알리는 눈이 새벽을 기해 내렸다. 아이는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 겨울이 시작됐어. 눈이 내렸다고. 비밀기지는 괜찮은 걸까? 궁금하지 않니? 가보자.”
눈을 좋아하는 아이는 꿀 같은 새벽잠을 마다하고 군소리 없이 일어났다. 우리는 완전히 중무장을 한 후 숲으로 향했다. 거리는 고요했다. 하얀 외투를 두껍게 껴입은 나무들이 포근해 보였다. 함박눈이 흩날리다 멈췄다를 반복했다. 아이가 말했다.
“벌써 봄이 왔나 봐요. 벚나무 가지마다 하얗게 꽃이 폈어요. 그리고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이 흩날려요. 아름다워요.”
잘 정비해둔 덕에 비밀기지는 우리의 완벽한 보금자리가 되어 주었다. 우리는 옷과 털모자에 묻은 눈을 탈탈 털고 기지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제법 따뜻했다. 언 몸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아이는 추위에 볼이 빨개져 있었지만, 좀이 쑤신지 곧 비밀기지 밖으로 나가 놀았다. 나무를 흔들어 그 가지에 묻은 눈을 쏟아져 내리게 하거나, 쓰러져 누운 나무 위에 올라가 눕거나, 두 손으로 눈을 한껏 모아서 공중으로 흩뿌리는 등 아이는 혼자놀기의 진정한 달인이었다.
그런데 잠시 딴 생각을 하는 사이에 아이가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아이가 또 제 마음대로 숨바꼭질을 시작했을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싱겁게도 숨바꼭질은 시작된 지 채 2분도 지나지 않아 아이가 스스로 나타면서 끝났다. 아이는 보리수나무가 있던 자리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지난 늦봄에 따먹었던 새콤달콤한 열매 생각이 났다고 했다. 하지만 열매는커녕 나무조차 찾을 수 없었다고 아이는 하소연을 했다. 이파리가 다 떨어지고 없으니 이 나무가 이 나무 저 나무가 저 나무 같았을 것이다. 게다가 봄의 열매가 겨울까지 남아 있을 턱이 있나. 허탕을 치는 게 당연했다. 나는 나무가 왜 입었던 옷을 벗을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조근조근 설명해 주었다. 사람은 겨울에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세 겹 네 겹 껴입어야 하지만, 나무는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나뭇잎이라는 옷을 다 벗어버려야 한다고. 진짜 소중한 걸 지키기 위해 당장은 아픔을 견뎌야 한다고, 그게 버림의 지혜라고. 어쩌고저쩌고…….
아이가 이해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니 이해와는 별개로 아이의 실망감은 사라지지 않는 듯했다. 이럴 때는 얼른 화제를 전환하는 게 상책이다. 나는 ‘마녀의 독버섯’을 만들어 줄 수 없냐고 아이에게 부탁했다. 아이가 그제야 배시시 웃었다. 우리는 아무도 비밀기지를 발견하지 못하도록 겨울에게 눈 좀 펑펑 내려달라고 부탁하면서 숲을 빠져나왔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 책장에서 모서리가 닳고 헤어진 책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22페이지를 펼쳤다. 거기에 독버섯 레시피가 있었다. 마녀가 되기 위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이 들어있는 책(말콤 버드, 『마녀백과사전』, 청어람미디어, 정지인 옮김(2007))이었다. 나는 거기에 나온 대로 계란, 토마토, 마요네즈 등을 준비해 꼬마 마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그 재료로 정성껏 먹어도 죽지 않는 독버섯을 만들었다. 나를 위해 흔쾌히 독버섯을 요리해준 꼬마 마녀에게 무엇으로 보답할까? 나는 두 팔을 벌려 그녀를 꼬옥 안았다. 그리고 마법 같은 말로 내 마음을 전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 흔하디흔해서 전혀 새로울 게 없는 말, 그러나 듣고 또 들어도 다시 듣고 싶은 그 말.
“사랑해.”
우리는 그 겨울에 비밀기지를 다시 가보지 못했다. 아이는 부비동염으로 겨우 내내 누런 콧물을 달고 살았다. 툭 하면 목이 부어 체온이 예사로 38~39도를 오르내렸다. 아이에게는 찬바람이 제 집으로 돌아가면 그 때 가보자고 약속했다. 그러나 봄에는 또 미세먼지가 어느 해보다 극심했고, 아이의 부비동염은 나아지지 않았다. 여름이 얼굴을 빼꼼 내밀고 나서야 우리는 마침내 그곳에 가볼 수 있었다. 갈비뼈들이 대부분 삭아 있었다. 대대적인 보수가 필요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사용할 수 있는 한 사용하다가 자연스럽게 비밀기지와 작별하기로 했다. 아마도 1년은 더 추억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내년이면 아홉 살. 비밀기지와 함께 한 지 4년. 그쯤이면 적당하다 싶었다. 그때면 분명 절대 허물어지지 않을 비밀기지를 자기 마음속에 만들 테니까.
여행 실행을 위한 간단 tip.
여행 목적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아이만을 위한 공간 선물하기. 비밀기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느끼는 설렘과 즐거움은 덤.
어디로 갈까?/ 짓다만 건물이나 폐가 같은 곳은 별 노력 없이도 당장 비밀기지로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우범지대로서의 가능성이 있는 그런 곳은 절대 사절. 역시 가까운 동네숲이 최고. 비록 코딱지만 할지언정 어느 동네나 숲을 끼고 있다. 그 숲을 자세히 탐사해보면 반드시 비밀기지로 삼기 적합한 곳이 있다.
어떻게 할까?/ 설계와 시공의 주체는 아이. 부모는 단순 노무자. 모든 과정이 행복한 놀이. 그렇게 놀면서 만든 비밀기지가 어찌 소중하지 않을까?
필요한 것은?/ 손발 보호용 목이 긴 신발과 장갑, 비밀기지 뼈대를 단단히 고정하기 위한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