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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동환 Feb 12. 2022

우린 언제나 친구야

친구라는 건 -박효신(feat. 김범수)


“오늘 시간 돼?”


목소리에서부터 기운이 넘치는 광민이의 목소리였다. 학생가요제부터 학교 축제까지 다양한 활동을 했던 그 역시 나와 노래로 맺어진 인연이다. 광민이와 함께 얼마나 노래방을 다녔는지 셀 수도 없다. 아마 수 백번, 수 천 번은 될 것이다. 암울한 미래의 유일한 탈출구가 노래뿐이었기 때문이다. 딱히,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들도 아니었지만 열정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그가 노래 부르기를 그만두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너무 이른 나이의 결혼이었다.      


‘25살’     


그는 책임감 있는 남자였다. 자신의 유일한 취미를 접어두고 가정을 돌보기 위해 참 많은 노력을 했다. 왜냐하면 이 녀석은 딸바보니까.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항상 자신보다는 가족을 생각하며 살아갔다. 친구들도 그런 그의 삶에 대한 자세에 대해 존중했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유치원생이 되었을 무렵부터

다시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지금부터 이야기할 시점이 딱 그 순간부터다.     

     





“응. 무슨 일이야?”

“오늘 좀 놀자고~”

신이 난 그의 목소리는 전화기 너머까지 전달되었다.

“알았어. 우리 집 앞으로 와.”          

얼마 지나지 않아, 광민이는 집 앞에서 경적소리로 자신의 등장을 알렸다.

문을 열고 나가니 실실 웃고 있는 그가 보였다.

“무슨 기쁜 일 있어? 왜 이렇게 바보처럼 웃고 있어?”

“일단, 차에 타봐.”

고개가 갸우뚱했지만 그의 말을 듣고 차에 탔다. 하지만, 별 다른 게 없었다.

“세차했어?”

“아니.”

자꾸 실실 웃는 광민이를 꼬집었다.

“아앗. 아파.”

“더 아프기 싫으면 말해. 뭐 때문에 웃는지 말해줘.”

“알겠어. 잠시만 기다려봐”     

그는 차량 뒤 자리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챙겼다. 차량에 케이블을 열고 하고 블루투스를 연결하더니 수납함에서 마이크 두 개를 꺼냈다.

“이게 뭐야?”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에게 물어보았다.     

“이게 바로 앞으로의 우리 노래방이야. 애들 때문에 몇 시간씩 노래방 가기도 부담스럽고, 너랑 같이 노래는 부르고 싶어서 큰마음먹고 구입했어. 이게 20만 원씩이나 하더라니까.”

“우리 그럼 여기서 노래 20시간 부르면 값어치 하는 거네?”

“이야. 발상의 전환이네. 그렇게 생각하니까 돈이 별로 안 아깝네? 흐흐”

“야. 빨리 연결해봐. 마이크 성능 빨리 테스트하고 싶어.”

“잠시만 기다려봐. 내가 또 하나 준비한 게 있지.”

“뭔데?”

“‘매직씽’이라는 애플리케이션, 결제했어. 웬만한 반주곡은 전부 있더라고. 음정, 박자 전부 이걸로 조절이 가능해.”

“진짜 신기하네. 이제 노래방 갈 이유가 없네.”

잠시 뒤, 마이크의 전원을 켜고 소리를 냈다.

“응? 이거 왜 이렇게 좋아? 노래방 마이크보다 성능 좋은 것 같은데?”

“맞지? 어제 택배 받은 뒤에 성능 검사해봤는데 진짜 너무 좋더라고. 입이 정말 근질근질했어. 너한테 1분이라도 빨리 말해주고 싶었거든. 흐흐”

정말 어린 시절처럼 해맑게 웃는 광민이를 보니 철없던 시절로 잠시나마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빨리 노래 한 번 해보자. 어떤 노래해볼까?”

한 참을 고민하던 와중, 그가 제안을 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같이 노래 부르는데, 함께 불렀던 노래로 불러보자. 어차피 마이크는 두 개니까 듀엣곡도 가능하잖아.”

“오! 좋은 생각인 것 같아. 그럼 박효신의 ‘친구라는 건’ 어때?”

한국 4대 보컬로 유명한 박효신과 김범수의 보기 힘든 듀엣곡은 어릴 적 함께 우리가 부르던 노래였다. 과거를 함께 회상할 수 있는 절친한 친구가 비록, 바빠서 예전처럼 자주 보지 못하더라도 변치 않는 우정을 다짐하는 곡이다. 딱 우리의 상황과 어울리는 곡이었다.

“오랜만에 부르는 노래인데 과연, 우리가 그 노래를 소화할 수 있을까? 마지막 부분에 애드리브가 예술인데, 우리가 부르면 똥인데? 안 부르고 싶어.”

“크크. 그 맛에 노래 연습하는 거 아니야? 감 잃었지?” 하면 지. 누가 들을 것도 아닌데. “

“아.. 삑사리 날 것 같은데.. 좋다! 한 번 도전해보자! 근데 반주에 놀라지 마. 이것도 차량 스피커로 나와서 소리가 웅장해.”

곧이어 나오는 반주음은 풍성함 그 자체였다. 정말 노래를 부르고 싶게 만들었다.

하지만, 놀라움은 잠시 뒤에 숨겨두고 감정 조절을 했다.

오랜만에 함께 부르는 곡에 최선을 다 하고 싶었다.           




친구라는 건


                           박효신(feat. 김범수)


학교를 졸업하고 넥타일 처음 매고
우리 학교 앞 그 골목 주점에 앉았지
한잔씩 채워 가는 술잔에 담긴 얘기
우리 지난날 꾸었던 꿈들을 꺼냈지
정말 얼마만인 거니 알게 모르게 변한 너
하나 시간이 우릴 데려가면
우리는 예전의 우리가 되지 언제나 널 생각했어
힘에 겨운 세상을 만날 때
떠 오른 건 처음이 너였어
십 년 후에 십 년을 얹어 간데도
우리 마음은 이대로 변하지 마
사랑에 빠졌다고 사진을 꺼내는 너
그녀 말하며 웃는 널 보니 나도 설레
이별을 마시면서 눈물을 쏟지 않길
이젠 그녀와 행복한 사랑을 바랄게
나의 세상과 시간에 항상 들어와 있는 너
혼자 있어도 가슴 뜨거운 건
언제나 함께인 친구란 말뿐 언제나 널 생각했어
힘에 겨운 세상을 만날 때 떠오른 건 처음이 너였어
십 년 후에 십 년을 얹어 간데도
우리 마음은 이대로 변하지 마

네가 있어서 좋은 걸 우린 언제나 친구야
서로 같은 꿈으로 뭉쳤던 우리
다른 세상을 가지만 함께 인걸







광민이의 예상대로 후렴 부분은 완전히 똥이었다.

엉망진창인 화음과 음이탈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정신이 맑아지고 신이 났다.

완성도가 낮은 노래를 불렀음에도 함께 예전처럼 노래를 부르는 일은 신선하고 즐거웠다.

사실,

매일 만나던 친구가 결혼을 하고 나이가 들수록 연락도 만남도 드문드문해지는 게 현실이다.

그렇지만, 때론 친구로서

서운할 때도 보고 싶을 때도 있다.

광민이 역시 나의 인생에서는 소중한 친구이니까 말이다.     

“야! 내가 이 노래 안 부른다고 했잖아. 완전히 음이탈 수치스럽네. 예전에 불렀을 때도 이렇게 높았던 노래인가?”

광민이가 귀여운 신경질을 부렸다.

“뭐~열심히 끝까지 불러놓고. 네가 애들 키운다고 바빠서 노래 연습 안 해서 높게 느껴지는 거지. 20시간 채우면 다시 잘 부를 거야.”

“그렇겠지? 정말 다시 노래 좀 잘 부르고 싶다. 연습을 몇 년 동안 안 했더니, 나 노래 진짜 못 부르네. 너랑 같이 매주 차에서 노래 연습하면 괜찮아지겠지?”

“물론이지. 어릴 때처럼 노래 자주 부르자. 오늘 너 집에 빨리 가야 해? 몇 곡정도 부를 수 있어?”

저녁 9시 통금시간이 있는 광민이에게 물어봤다.

“오늘 우리 와이프, 아파트 단지 엄마들이랑 애들이랑 놀러 가서 늦게 올 거야. 느긋하게 노래 부르다가 가면 돼. 오늘은 시간제한이 없어!”

“오! 좋네! 그럼.. 다음 누가 먼저 하는데? 내가 먼저 할게!”

“먼저 부르려고 하는 노래 욕심은 여전하네! 옛날 생각나고 좋다! 너부터 불러! 흐흐”

그날, 광민이의 차에서 목이 쉬도록 노래를 불렀다. 20대 초반, 함께 슈퍼스타 K 같은 오디션을 돌아다니면서 노래에 대한 열정을 함께 쏟았던 그와 함께 다시 노래를 한다는 사실에 지치지 않았다.

비록, 화려한 무대가 아닌 자동차에서 노래를 불렀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노래가 아니더라도 그와 함께 하는 시간 자체가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박효신의 ‘친구라는 건’ 속 노랫말처럼 서로 같은 꿈으로 뭉쳤던 우리, 다른 세상을 가지만 함께라는 사실이 그날의 우리를 뜨겁게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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