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2017년 덕혜옹주, 동주, 박열과 같은 일제강점기 배경 속 한국의 위인들을 다룬 영화가 많이 상영했다. 민족적 수치가 느껴지는 영화를 보고 상영관을 나올 때마다 감정이 매우 격해지기도 했지만 다음 날이면 무뎌진 기억으로 남기 일쑤였다. 돌이켜보면 오랜 외국 생활을 하다가 귀국한 나에게 있어서 올바른 역사의식보다는 느긋한 일상이 더 중요했던 것 같다. 그런 나에게 있어서 2017년 7월 26일 개봉한 영화 ‘군함도’는 아주 고마운 존재가 되어주었다. 사실 영화 자체로만 봤을 땐 억지 감동을 위한 엉성한 전개의 액션 영화라는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지만 영화를 계기로 부산의 국립 일제 강제동원 역사관을 찾아갔기 때문이다. 함께 기억하고 널리 알리겠다는 목적으로 설립된 이곳에서는 이재갑 사진작가의 군함도 사진전이 열렸고 이것은 역사기행의 출발점이 되어주었다.
숙연한 분위기의 전시관에서는 뼈아픈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볼 수 있었는데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가슴이 괜스레 뭉클해졌다. 평소라면 귀찮아서 쳐다보지도 않을 길고 긴 설명문을 차례차례 읽으며 도착한 기획전시실에서는 이재갑 사진작가가 촬영한 군함도를 만날 수 있었다. 낚시꾼으로 위장해서 찍은 그의 사진들은 ‘강제 징용 현장’을 담고 있었다. 전쟁과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그의 기록물은 바쁘다는 핑계로 한국에서 이냥 저냥 살던 나의 시간보다 과거의 흔적을 세상에 알리고 있는 그의 현재 이 순간이 더욱 가치 있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여러 감정이 뒤섞여있던 찰나 내 눈앞의 작은 탁자에는 방문일지가 있었다.
‘꼭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애틋한 한 마디들이 남겨져있었고 곧장 나는 펜을 들고 이렇게 작성했다.
직접 만나러 가겠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뒤 성질 급한 운전자처럼 여행을 계획했다. 우선 내린 결정은 우리나라의 역사가 응축되어 있는 일본에서 한 달간 머무르는 계획이었다. 사실, 몇 차례의 일본 여행을 오고 간 터라 맛있는 음식이 많은 섬나라로 인식하여 감정적으로 그리 나쁘지 않았다. 자극적인 영화의 장면들과 국립 일제 강제노동 역사관에서 확인한 역사적 사실을 보기 이전까지 말이다. 그런 이유에서 예전의 편안한 일본 여행과는 달리 배움이 기다리는 역사기행을 결심하게 해 준 ‘군함도’가 역설적이게도 고마웠던 것이다. 정치와 경제, 역사, 문화 그리고 음식 거의 모든 분야가 일본과 상호 의존적 관계를 맺고 있지만 그런 배경에 대한 궁금증을 처음으로 심어줬기 때문이었다.
군함도
역사기행을 계획하며 다짐한 결심은 색안경을 끼지 않는 것이었다.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바라보면 ‘그대로’가 아닌 ‘내 마음대로’가 되어 한쪽으로 치우쳐지는 피상적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역사는 역사일 뿐,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제대로 그들을 알아야 한다는 마음가짐 덕분에 모든 영역에 묻어있는 ‘화혼 양재’라는 일본만의 독특한 문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 설레는 여행도 가슴 벅찬 여행도 아닌 견문을 넓히기 위해 떠난 역사기행은 색다른 시선을 가지게 해 줬다.
-매거진 '그 시절의 여행일기'를 통해 백제 무령왕 탄생지와 군함도, 강제징용의 현장, 신사 문화, 식문화를통해 '화혼양재'라는 일본만의 문화를